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컬럼비아대 "미국 경제 위협은 관세 아닌 '기업 압박'"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컬럼비아대 "미국 경제 위협은 관세 아닌 '기업 압박'"

관세 영향, 환율·내수 비중 탓에 제한적…진짜 위협은 대통령의 '초법적 거래'
애플·엔비디아 사례는 '중앙집권적 통제'…의회 무시한 행정명령, 민주주의 근간 흔들어
아마르 비데 컬럼비아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보다 애플, 엔비디아 등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이 미국 경제에 더 큰 위협이라고 분석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아마르 비데 컬럼비아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보다 애플, 엔비디아 등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이 미국 경제에 더 큰 위협이라고 분석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가 1930년대 '스무트-홀리 관세' 수준에 가까워지며 경제계의 거센 경고를 불렀다. 그런데도 미국 경제는 여전히 굳건하다. 경제는 더디게나마 성장과 고용을 이어가고 주가지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해, 전통 경제학의 경고와 실제 시장 흐름 사이에 뚜렷한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이 시장의 통념을 압도하고 있는가.

컬럼비아대의 아마르 비데 교수는 지난 22일(현지시각) 배런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모든 논쟁이 관세의 경제적 중요성을 과장하고, 정작 더 심각하고 근본이 되는 위협을 못 보게 만든다고 꼬집는다. 그가 지목한 진짜 위험은 무역 그 자체가 아니다. 바로 '즉흥적인 기업 흔들기'로 대표되는 행정부의 초법적 압박과 이것이 불러올 미국 경제의 역동성과 법치주의 훼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질서한 정책 변화와 기업에 대한 임기응변식 압박이 미국 기업의 자율성과 혁신 역량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 관세 공포 속 숨은 '환율'과 '내수'의 힘


시장이 못 보는 첫 번째 변수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환율이다. 2025년 들어 달러 가치는 이미 10% 가까이 떨어져 수입품 가격을 올리는 등 사실상 관세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더욱이 미국이 거대하고 여러 갈래로 뻗은 내수 중심 경제라는 점도 짚을 대목이다. 미국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수출과 수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관세는 이론적으로 시장을 왜곡하지만, 과거에는 중요한 국가 재원이었다. 18~19세기 미국 연방정부 수입의 90% 이상을 관세로 채웠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경제 구조에서 관세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경제에 미치는 힘은 국내 조세, 정부 지출, 노동 정책 같은 내부 요인이 훨씬 크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 때의 인플레이션은 대규모 재정지출과 느슨한 통화정책 탓이 컸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역시 그 시작은 국내 주택과 담보대출 시장의 붕괴였다. 역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대공황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스무트-홀리 법안'조차 당시 GDP의 1.4%에 불과했던 과세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40%에서 47%로 올렸을 뿐, 미국 내 수요의 파국적 붕괴를 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것 역시 저임금 국가로부터의 수입보다는 서비스업 중심의 구조 변화와 기술 발전이 핵심 원인이다.

◇ 법치 흔드는 '즉흥적 거래'…애플·엔비디아도 압박


대통령의 무역 전쟁 선언이 단순한 정치적 연극을 넘어 심각한 문제로 바뀌는 지점은 따로 있다. 외국 정부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자국 기업과 경영진을 상대로 벌이는 노골적인 '길들이기'다. 이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미국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미국의 역동성은 혁신을 주도하는 주요 기업들의 자유로운 활동에 기댄다. 그런데 행정부가 첨단 컴퓨터 칩에 대한 높은 관세를 없애주는 대가로 애플에 1000억 달러가 넘는 미국 내 시설 투자를 하라고 다그치는 식의 거래는 유럽과 일본 대기업들의 활력을 앗아간 중앙집권적이고 고압적인 통제 방식의 전형이다. 엔비디아를 압박해 중국에 파는 칩의 15%를 특정 조건으로 묶는 거래 역시 기업 운영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사례다.

이러한 즉흥적인 기업 압박은 국가의 헌법 구조 자체를 무너뜨린다. 헌법 제정자 제임스 매디슨은 지주 계급과 제조업 계급이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각기 다른 관세 정책을 주장하리라 내다봤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특정 이익 집단의 정치 공세를 억누르는 대신, 법률 제정 권한은 의회에, 집행 책임은 대통령에게 나누는 '어수선하지만 효과적인' 견제와 균형 장치를 고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양당의 수많은 대통령들은 행정명령을 남발하며 입법부를 무력화하고 만들어진 법에 대한 존중을 무너뜨렸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임기 첫해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8년 임기 동안 서명한 것보다 많은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다. 그는 '긴급 관세 명령' 같은 행정 권한을 휘둘러 기업과 다른 나라 정부를 힘으로 누르고 있다.

올리버 웬델 홈스 대법관은 "세금은 우리가 문명사회를 위해 치르는 대가"라고 말했다. 이처럼 입법을 둘러싼 의회의 시끄럽고 어수선한 타협 과정은 독단과 전제정치를 피하고자 치러야 할 민주주의의 대가다. 정부가 짧은 생각으로 기업에 특정 조건을 내걸며 법과 제도의 원칙을 무시하는 태도는 반드시 오랜 후유증을 낳는다. 시장 자유와 법치주의 존중이 경제 발전과 사회 안정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 원칙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