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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나토 동부전선 "푸틴의 평화 공세는 시간끌기용 위장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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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나토 동부전선 "푸틴의 평화 공세는 시간끌기용 위장술"

리투아니아 국방장관 "대화 내세우며 전선 확대…서방, 말 아닌 행동 봐야"
트럼프, 휴전 조건 없이 협상 선회…제재·관세로 러시아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만나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위해 만났으며, 이날 미군 전투기들이 상공을 비행하며 군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만나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위해 만났으며, 이날 미군 전투기들이 상공을 비행하며 군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진=AP/연합뉴스
평화 협상 막후에서 포성은 멈추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화를 내세우며 전선을 밀어붙이는 이중 행보를 보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힘을 통한 평화' 구상도 중대 시험대에 올랐다고 ABC 뉴스가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소련 점령의 기억을 가진 러시아의 위협을 피부로 느껴온 나토(NATO) 동부전선 회원국들은, 푸틴의 '위장 평화 공세'가 서방 지원을 늦추려는 시간 끌기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모스크바가 믿을 수 없는 동반자라는 발트해 국가들의 오랜 경고는 현실로 드러났다. 리투아니아의 도빌레 사칼리에네 국방장관은 지난 주말 키이우에서 ABC 뉴스와 만나 "우리는 러시아가 계속 전진하리라는 점을 안다"며 "우리 리투아니아는 이를 아주 잘 기억하기에 스스로 대비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위협을 "우리가 필요한 부분의 근육을 키울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칼리에네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평화 협상 국면을 심각한 우려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푸틴이 계속해서 폭격하고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는 탓에 국면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평화 제안을 일축했다. "그가 평화를 이야기할 때, 이는 우스꽝스러운 수준을 넘어 터무니없다"고 직격한 그는 "푸틴이 협상에 참여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폭격과 드론 공격을 이어가는 것은 조롱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고위 관리들은 협상 뜻을 내비치면서도, 현재 점령지에 대한 '현상 동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영구 봉쇄, 서방군 배치 금지, 대러시아 제재 전면 해제 등 사실상 서방의 전략적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 트럼프의 압박과 대화, '힘을 통한 평화' 시험대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15일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과거 "휴전 없이는 협상도 없다"는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 휴전 없이도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미군 파병은 안 된다는 선을 명확히 긋고, 대신 경제 제재와 관세 압박으로 러시아를 다루려 한다. 백악관은 이미 러시아산 에너지와 군사 장비를 사는 인도를 겨냥해 25% 추가 관세를 물리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사칼리에네 장관은 이러한 미국의 '지렛대'가 푸틴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는 "미국은 매우 강력한 지렛대를 갖고 있다"며 추가 제재와 2차 제재가 "핵폭탄급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한을 완전히 풀어 "필요한 무기를, 필요한 목표물에 자유롭게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두 가지 실질 압박이 "푸틴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유일한 동기"라는 판단이다.

◇ "유럽 안보, 아시아와 연결"…신냉전 구도 부상

이런 공방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유럽 동맹국들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스스로 안보에 더 많은 돈과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해왔고, 나토는 최근 공동 방위비 지출 목표를 GDP의 5%로 높이며 응했다.

하지만 사칼리에네 장관은 유럽이 스스로 강해지려는 노력과 별개로 미국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 특정 분야에서는 적어도 10년 동안 미국이 '영향력 있는 나라'이자 핵심 능력 보증국으로 남을 것"이라며 "미국의 명확한 지배력이 없다면 우리는 난투극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7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과 만난 일을 언급하며 "'미국이 우선이지만,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미국의 지도력이 유럽 안보에 꼭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발언이다.

사칼리에네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세계 차원의 신냉전 구도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연결해 바라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 자신 또한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해 중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된 인물이다. 그는 "때로는 지도에 붉은 선을 그어 이곳은 인도-태평양, 저곳은 유럽이라고 나누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그들의 더 작은 악의 동맹들의 공동 행동이 우리가 마주한 이 10년간의 주요 도전 과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발트해에서 러시아가 저지르는 GPS 전파 교란과 조작, 수중 기반 시설 공격, 사이버 공격 등은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이 마주한 '공유 위협'과 본질이 같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안정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할 서방 단일 대오의 전제 조건인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속도를 내야 한다"는 그의 마지막 말에는 단순한 경고를 넘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