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투자 위축·정치 규제·기상 재해까지 맞물린 ‘전기요금 폭탄’ 현실

지난 29일(현지시각) 악시오스는 전기료 상승이 단순히 AI 붐 영향만이 아니라, 낡은 전력 인프라, 발전 용량 부족, 정치권 규제, 자연재해 등 여러 요인이 복합 작용한 일종의 ‘퍼펙트 스톰’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 낡은 전력망과 발전 설비 부족 문제
미국 전력망 설비는 수십 년 전 지어진 2차선 도로에 비유된다. 최신 전력 수요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 보니 송전용량이 제한돼 자주 과부하가 발생하고 전선 과열 위험으로 효율이 낮은 발전 설비에 의존하는 일이 잦다는 경고다. 상원 에너지·자원위원회 마이크 리(Mike Lee) 위원장은 “지금 미국 송전 상태는 도로가 전혀 확대되지 않고 교통량만 크게 늘어 항상 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발전 시설을 새로 짓고 송전 설비를 늘리기 위해 드는 비용이 전기료에 반영된다. 그러나 사업 허가 등이 늦어져 인프라 확충이 뒤처지면서 공급 부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전 용량 한계가 뚜렷해져 요금 불안 요소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허리케인, 산불 같은 자연재해가 잦아지면서, 내구성 높은 전력 시설을 지으려는 비용 부담도 커졌다. 미국 에너지부 통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 재생에너지 분야 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36% 줄었다. 연방 정부가 추진해 온 해상풍력 사업도 상당수가 중단돼 전력 공급 다변화가 지체되고 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전기차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지원이 크게 줄고 화석연료 중심 정책을 펴 온 영향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
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전체의 4% 수준을 차지한다. 미국 에너지부는 2028년이면 이 비중이 12%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노스캐롤라이나주 연구와 카네기멜론대 분석에서 AI 데이터센터 증가가 2030년까지 미국 전력 요금을 8%가량 추가로 올릴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버지니아주는 전력소비가 25%까지도 오를 수 있어 지역 주민들의 전기료 부담이 더 클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데이터센터들의 송전 요청이 기존 전력 용량을 크게 넘어 인프라 확대 비용이 결국 가계와 소상공인 전기료에 반영되는 격이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IT 기업도 데이터센터 확장을 계속한다.
미국에서 AI가 크게 늘면서 데이터센터가 많아져 전기 사용이 급증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에서 쓴 전기가 그대로 모두 효율적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일부 데이터센터는 본래 전기를 많이 쓰지만, 실제로는 전체 장비 가운데 20~30%만 가동한다. 나머지 장비는 가끔 켜지거나 대기 상태로 전기를 쓰기만 할 뿐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많은 전기가 필요 이상으로 낭비된다. 전력 낭비가 심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데이터센터 기계가 계속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고, 서버나 저장 장치, 네트워크 장비들이 끊임없이 전력을 소비한다. 그런데 많은 기기를 항상 다 쓸 필요가 없어 일부 장비는 대기 상태로 놓이는 경우가 많다. 둘째, 데이터센터에서 일어나는 연산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셋째, 데이터센터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고장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냉각 시설도 24시간 전력으로 가동한다. 이 냉각 시설이 사실상 전체 전력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데이터센터는 늘어난 전력 수요를 효율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전력망은 이미 노후화해 전력 수송 용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지역은 송전용량이 빠듯해 전력 인프라 보강이 시급하다. 낡은 송전시설 탓에 기계 작동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전력 수요가 기존 전력망 운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전력 사용률이 낮다는 점과 전력망 부족 문제는 각각 다른 문제이지만, 두 가지 모두 미국 전기 요금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데이터센터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향후 전기 소비와 전기료 부담도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속 가능한 운영과 경제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IT 및 에너지 전문가들이 분석한다.
◇ 정치 쟁점과 소비자 부담 현실
전기료 인상은 미국 정치권에서 뜨거운 쟁점이다. 민주당은 관련 광고를 통해 공화당 정책과 트럼프 행정부 재생에너지 후퇴 때문에 전기료가 오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화당 측은 규제 완화와 화석연료 정책으로 전력 공급을 안정시키고 있다고 맞선다. 민주당 출신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공화당이 부당하게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해상풍력 사업 중단 등 정부 정책이 전기료 인상에 영향을 준 점을 인정했다. 전기료는 기름값처럼 매일 체감되지 않으나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러시아산 천연가스 문제, 기상이변, 석탄 가격 급등 등이 겹쳐 전기료가 크게 상승한 상태다. 복잡한 에너지 위기 앞에서 AI 시대에 맞는 전력망 현대화, 재생에너지 확대, 규제 개선 같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악시오스는 미국 전기료 상승이 단순한 전력 수요 증가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 급증과 노후 전력망 한계, 그리고 정치·기후 환경이 맞물려 나타난 복합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각국도 인공지능 등 신기술 확산에 따른 전력 인프라 관리와 재생에너지 투자 필요성을 깊이 살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