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앞세워 유럽 방산시장 재도전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앞세워 유럽 방산시장 재도전

지난해 英 수주 실패 딛고 '틈새 공략' 맞춤형 전략 선언
차륜형 K9 첫선… 레드백·천무로 포트폴리오 다각화
훈련에 참가한 K-9 자주포의 모습.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미지 확대보기
훈련에 참가한 K-9 자주포의 모습.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해 영국 육군 차세대 자주포 사업에서 고배를 마셨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럽 최대 방산 전시회 'DSEI'를 발판으로 영국과 유럽 시장을 다시 공략한다. 한화는 지난해 영국 국방부가 별도의 경쟁 평가 없이 독일 KMW의 RCH-155 차륜형 자주포를 선택하면서, K9A2 모델의 성능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에 기존 방산 생태계의 '공백'을 정밀하게 파고드는 맞춤형 전략으로 반전을 모색한다.

사이먼 험프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UK 전략·사업개발 부사장은 4일(현지시각) 언론 브리핑을 열고 DSEI에서 선보일 유럽 시장 전략을 공개했다. 그는 "우리의 유럽과 영국 활동 방식은 기존 방산 생태계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공백은 어디에 있는가?', '그 요구에 즉시 공급할 수 있는 기성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전략 방향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현지 국방 기반시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협력자로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다.

◇ 英 육군 전력 교체기…레드백으로 '기회 탐색'


현재 영국 육군은 군사 장비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 5월 마리아 이글 국방조달산업부 장관이 워리어 장갑차 등 주요 기갑차량의 퇴역 일정을 공식 발표하면서 전력 공백이 뚜렷해졌다. 험프리 부사장은 워리어 장갑차의 퇴역 시점을 거론하며, 호주 육군이 129대 도입을 결정한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IFV)가 "성숙한 역량을 바탕으로 그 수요를 채울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한 영국은 '지상기동성 프로그램(LMP)'을 통해 수천 대의 경·중형 다목적 차량을 교체할 예정이며, 관련 입찰 제안서는 오는 11월 나올 전망이다. 다만 한화는 이 사업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험프리 부사장은 "LMP를 검토했지만, 우리의 강점 분야와 자연스럽게 맞지는 않는다"며 "시장에 이미 좋은 위치를 차지한 경쟁사들이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공격적으로 참여하기보다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포병 중시 유럽…K9·천무 앞세워 '정조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재래식 포병의 가치가 다시 부각되면서 유럽은 세계 최대 포병 시장으로 떠올랐다. 정보 자문 회사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13억 달러(약 15조 원) 규모의 세계 포병 시스템 시장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이를 전망이다.

한화는 이런 시장 변화를 기회로 삼아 K9 자주포의 유럽 영토 확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노르웨이, 핀란드, 폴란드 등 나토(NATO) 회원 5개국을 포함한 모두 7개국이 K9을 운용한다. 험프리 부사장은 "K9을 운용하는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경험을 보면 도입 과정과 한화의 꾸준한 군수 지원에 대해 전적으로 긍정적"이라며 성능과 지원 체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화는 이번 DSEI에서 K9 A1·A2 모델과 함께, 영국이 선택한 RCH-155에 맞서기 위해 개발 중인 신형 52구경장 차륜형 자주포 모형을 처음 공개한다.

장거리 타격 능력 확보 또한 유럽의 주요 과제다. 한화는 K239 천무 다연장로켓(MLRS)을 '딥 스트라이크(Deep Strik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이며 유럽의 종심 타격 능력 공백을 메우겠다고 밝혔다. 험프리 부사장은 "현재 80~150km인 천무의 사거리를 500km까지 늘리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정적인 군수품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영국이 최근 50일 동안 우크라이나에 6만 발의 포탄과 로켓을 지원한 사실은 전시 탄약 소모량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에 한화는 영국 안에서 포탄의 핵심인 에너지 물질(폭약, 추진제 등)을 직접 생산하는 현지화 전략을 추진한다. 험프리 부사장은 "영국 기업통상부와 초기 단계 논의에 들어갔으며, 과거 국방부 터를 생산 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영국 국방부가 수요에 대한 뚜렷한 계획을 내놓아야 기업 처지에서 사업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다"며 "이 점이 현재 우리를 포함한 잠재 공급업체들이 사업 추진을 망설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하며, 영국 정부의 명확한 정책 신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9 수주 실패를 교훈 삼아 한화는 DSEI 2025를 계기로 '기존 방산 체계 보완'이라는 현실에 맞는 다각화 전략에 집중할 예정이다. 신형 차륜형 자주포와 '딥 스트라이크' MLRS, 레드백 IFV, 그리고 탄약 현지 생산 제안은 이런 전략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뒤 유럽 각국에서 무기 물량 확보와 공급망 안정화, 현지화 요구가 커져, 한화의 틈새시장 공략과 협력 관계 구축 노력은 앞으로 외연을 넓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영국 정부의 불확실한 수요 예측과 기존 유럽 방산 강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