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쿠스토가 세상에 알린 지 반세기…최첨단 기술로 내부 첫 3D 지도 완성
해저 퇴적물은 '타임캡슐', 1900년 기점 '수스 효과'로 산업혁명 영향 입증
해저 퇴적물은 '타임캡슐', 1900년 기점 '수스 효과'로 산업혁명 영향 입증

중미 벨리즈 연안에 자리한 그레이트 블루홀은 직경 318m, 깊이 124m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싱크홀(함몰공, 돌리네라고도 부른다)이다. 이 거대한 구멍은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마지막 빙하기 시절, 지상에 있던 석회암 동굴이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면서 오늘날의 카르스트 지형을 이뤘다.
이곳이 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71년 프랑스의 전설적인 해양 탐험가 자크 쿠스토의 탐사 덕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탐사선 '칼립소호'를 타고 벨리즈 산호초 지대인 '라이트하우스 리프'에 위치한 이곳을 찾아 TV 시리즈 『쿠스토의 해저 세계』를 통해 그 신비로운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쿠스토 팀은 물에 잠긴 종유석을 촬영해 이곳이 과거 지상의 동굴이었다는 지질학적 가설을 처음으로 입증했고, 훗날 '세계 5대 스쿠버다이빙 명소' 중 하나로 꼽을 만큼 그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었다.
◇ 반세기 만의 잠수, 첨단기술로 드러난 '죽음의 지대'
이곳에는 레몬상어와 거대 어종인 그루퍼 등 다양한 해양 생물도 서식한다. 쿠스토의 탐사 이후 약 50년이 흐른 2018년, 유인 잠수정 제조사 아쿠아티카 서브마린스가 주도한 탐사팀이 최첨단 음파탐지(소나) 기술을 이용해 블루홀 내부의 완벽한 3차원 디지털 지도를 제작했다. 이 탐사팀에는 쿠스토의 손자인 파비앙 쿠스토,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 잠수 전문가 에리카 버그먼 등이 참여했다. 탐사팀은 수심 91m 부근에서 산소와 빛을 차단하는 두꺼운 황화수소층을 발견했고, 그 아래가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지대'임을 확인했다. 산소가 전혀 없는 이 무산소 환경은 역설적으로 블루홀에 떨어진 모든 것을 부패 없이 그대로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탐사팀은 싱크홀 벽을 따라 모래가 계속 흘러내리는 모습을 관측하며, 블루홀이 아주 서서히 메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 해저 퇴적물, 2000년 기후 변화 담은 '타임캡슐'
하지만 그레이트 블루홀이 품고 있던 가장 큰 비밀은 바닥의 퇴적물에 있었다. 2020년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과학자들은 블루홀 바닥에서 약 9m 길이의 퇴적물 코어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 1885년간 카리브해의 기후 변화 기록이 층층이 쌓여 있음이 드러났다.
퇴적물은 거의 2000년에 걸쳐 해수 온도가 꾸준히 상승했음을 보여줬으며, '엘니뇨'나 '대서양 수십 년 주기 진동(AMO)' 같은 거대 기후 패턴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연구팀은 서기 900년에서 1300년 사이, 즉 '중세 온난기' 동안 허리케인 활동이 정점에 달했던 사실도 확인했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인류가 남긴 명백한 흔적이었다. 퇴적물 분석 결과, 1900년을 기점으로 탄소 동위원소 구성이 급격히 변하는 '수스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현상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막대한 양의 화석 연료를 태우면서 배출한 탄소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바다 깊은 곳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명백한 증거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만 여겼던 그레이트 블루홀이 이제는 인류세(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지질과 생태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와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의 도래를 증언하는 엄중한 과학 기록 보관소로 자리매김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