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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탈엔비디아' 가속…화웨이 앞세워 AI칩 자립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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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탈엔비디아' 가속…화웨이 앞세워 AI칩 자립 박차

미·중 기술 전쟁 속 'AI+' 정책 발표…"미국에 보내는 전략적 메시지"
SMIC, 7나노 생산 두 배 확대…나우라·이노밴스 등 장비·로봇도 국산화
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국과 기술 전쟁 속에서 '엔비디아 없이도 괜찮다'는 중국의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 협상 뒤 중국 기술 대기업들이 잇따라 AI 기술 성과를 발표하며 주가가 급등했고, 정부는 자국 기업의 엔비디아 칩 구매를 막아서는 등 '탈 엔비디아'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화웨이가 자체 개발 AI 칩을 전면에 내세우고 SMIC 같은 파운드리 역량을 빠르게 키우는 흐름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무역 전쟁 협상에서 미국의 힘을 빼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21일(현지시각) 중국 규제 당국이 자국 빅테크 기업들에 엔비디아 칩 구매를 권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기관과 보안 관련 사업에서는 이미 중국산 칩 사용을 늘리는 추세다. 이런 배경 아래 알리바바와 바이두는 지난주 AI 기술 발전과 새 사업 계약 소식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했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가 엔비디아를 조사하는 것과 때를 맞춰 엔비디아 제품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자체 AI 칩 '아틀라스 950, 960 시리즈'를 공개해 기술 독립 의지를 보였다. 알리바바와 바이두 역시 AI 훈련용 칩에 자국 기술을 더 많이 쓰며 독자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치밀하게 계획한 전략의 일부라고 분석한다. 스탠스베리 리서치의 브라이언 티캉코 애널리스트는 "지금 당장 중국 기업들이 외국 칩을 완전히 쓰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중국에서 나오는 이런 소식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 무역 전쟁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무역 전쟁이 결국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중국의 칩 생태계가 빠르게 크고 있지만, 자본을 구하기 힘든 작은 기업에는 큰 위험이 따르므로 당분간은 SMIC, 알리바바, 바이두 같은 업계 대표 기업에 집중하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중국의 주요 AI 기업들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지금까지 생존력을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국외에서 엔비디아 기반 컴퓨팅 파워를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미국에 상장된 알리바바와 홍콩 증시의 텐센트에 대해 '비중 확대' 등급을 유지하며 "전술적으로 2025년 2분기는 시장이 중국의 AI 주도 성장을 알아차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중국이 엔비디아 칩 구매를 막는다는 소식은 단기적으로 AI 개발에 도움이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국 안의 칩 대안들이 최소한 '쓸 만한' 수준에는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中, 반도체 제조부터 AI칩 설계까지 '기술 자립' 박차


중국의 기술 자립은 반도체 제조부터 AI 칩 설계, 응용 분야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화웨이를 가장 큰 고객사로 삼아 AI 칩 수요에 맞추고자 7나노 공정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AI 칩 설계 대표 주자인 캠브리콘은 2025년 상반기 수익이 40배 넘게 급증했으며, 최신 AI 칩은 중국 AI 모델 개발사 딥시크에 최적화했다. 딥시크는 FP8 데이터 포맷 같은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며 중국산 AI 칩 생태계의 기술 기반을 다지고 있다.

중국산 칩 생산 확대는 '기술 자급자족'을 위한 중국 정부 장기 계획의 핵심이다. 모건 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기술 자립 전략이 "센서, 모터, 감속기,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앞당길 것"이라며 "중국 공급업체들이 국제 비용 곡선을 쥐고 기존 시장 선도 기업을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 분야의 나우라 테크놀로지, 자동화 로봇 분야의 이노밴스 테크놀로지, 자율주행 기술을 이끄는 샤오펑 등 관련 산업망 전체에서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AI+' 정책으로 기술 패권 노려…국제 공급망 재편 예고


이런 움직임은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AI+' 정책과 뜻을 같이한다. 중국은 지난 8월 말 AI 기술을 산업 전체에 녹여내는 세부 계획을 발표했으며, 오는 10월 고위급 회의에서 앞으로 5년 동안의 개발 목표를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의 수출 규제에 맞서 기술 자립을 이루기 위해, 2025년까지 자국 내 AI 칩 생산 능력을 세 배 넘게 키운다는 뚜렷한 목표도 세웠다.

중국의 AI 반도체 육성은 국제 공급망 재편과 기술 주도권 경쟁의 가장 큰 변수가 됐다. 중국의 큰 투자와 정부 지원은 미국, 대만 같은 기존 반도체 강국과의 경쟁을 한층 더 심화시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술력이 아직 뒤처져 있다고 보면서도, 거대한 내수 시장을 디딤돌 삼아 빠른 속도로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넘어 자체 기술 생태계를 만들려는 중국의 도전이 세계 반도체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