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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장비, 인니 시위 현장서 '인권 탄압' 논란…수출 중단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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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장비, 인니 시위 현장서 '인권 탄압' 논란…수출 중단 압박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장갑차에 시민 희생…'전쟁 없는 세상' 수출 중단 촉구
물대포·최루탄 등 '비살상무기' 규제 사각지대…"경제 이익보다 인권"
인도네시아 시위 현장에 투입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바라쿠다 장갑차. 이 장갑차는 지난 8월 28일 자카르타에서 발생한 시위에서 시민 사망 사건에 연루되어 인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이미지 확대보기
인도네시아 시위 현장에 투입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바라쿠다 장갑차. 이 장갑차는 지난 8월 28일 자카르타에서 발생한 시위에서 시민 사망 사건에 연루되어 인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한국산 방산 장비가 인도네시아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시민 사망 사건에 연루되면서, 군중 통제 장비를 둘러싼 인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고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 IDN 타임스가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현지 시민단체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인도네시아에 대한 모든 시위 진압용 장비 수출을 즉각 중단하고, 인권 영향 평가를 포함한 강력한 수출 통제 체계를 마련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사건은 지난 8월 28일 수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비롯됐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운용하던 장갑차가 군중 속으로 돌진해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 아판 쿠르니아완 씨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목격자들은 해당 장갑차가 의도적으로 군중을 향해 돌진했다고 증언했으며, 현장에서는 한국산 최루탄과 물대포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돼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시민단체 '전쟁 없는 세상(World Without War)'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이 비극의 배경에 한국 방산업체가 있음을 명확히 지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쿠르니아완 씨를 들이받은 장갑차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한 '바라쿠다(Barracuda)' 기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04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바라쿠다 장갑차 총 45대를 인도네시아 경찰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지난 9월 2일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데 쓰이는 군중 통제 무기 수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억압의 상징'이 된 K-방산 장비들


바라쿠다 장갑차는 도입 당시 '대폭동 진압차량'으로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기관총과 돌격소총까지 장착할 수 있는 다목적 전술 차량이다. 이 때문에 분리 독립 요구가 거센 서파푸아 지역을 포함한 인도네시아 전역의 시위 현장에서 억압과 폭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장갑차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사용한 물대포 역시 한국 기업 '대지정공(주)'이 생산한 제품이다. 한국의 무기 수출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관리되지만, 물대포나 최루탄 같은 비살상 진압 장비는 군수품이 아니라는 까닭에 규제에서 제외되는 때가 많다. 이런 제도의 허점 때문에 인권 침해 가능성이 높은 장비들이 별다른 제약 없이 수출길에 오를 수 있었다고 '전쟁 없는 세상'은 분석했다.

수출 기록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부터 2024년 6월까지 9년 남짓 동안 최루탄 총 144만 개 이상을 인도네시아에 수출했다. '휴먼스 파이로(Humans Pyro)', '한국씨오앤테크', '(주)대광화학' 등 국내 업체들이 생산한 이 최루탄들이 이번 자카르타 시위에서도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물대포 수출 기업인 대지정공(주)의 행보는 논란을 더욱 키운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 인권 상황이 열악한 알제리 등 전 세계 20여 개국에 물대포 약 2700대를 판매한 이력이 있다.

'민주주의 수출국'의 딜레마…경제 이익인가, 도의적 책임인가


'전쟁 없는 세상'은 한국이 과거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제는 나라 밖 민간인을 향한 폭력에 자국산 무기가 쓰이는 현실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단체는 한국 정부에 ▲인도네시아로의 모든 군중 통제 장비 수출 즉각 중단 ▲현지에서 한국산 장비 사용 실태와 인권 침해 영향 전면 조사 ▲수출 허가 과정에 인권 영향 평가 의무화와 위반 시 강력한 제재 부과를 포함해 수출 통제 체계를 전면 개혁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한국 방위산업이 마주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한국 방산 장비 수출이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참여국으로서의 도의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한국 정부를 향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고, 국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수출 제한 법안이나 인권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