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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가 이끈 에너지 수요, 3년 침체 기후 기술 투자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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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가 이끈 에너지 수요, 3년 침체 기후 기술 투자 되살렸다

올 3분기까지 560억 달러 투자 유치…2024년 전체 규모 이미 추월
기관 투자 자금 몰리고 원자력도 주목…거래 건수 줄고 대형 투자 집중
이미지=오픈AI의 챗GPT-5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오픈AI의 챗GPT-5
지난 3년간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세계 기후 기술 투자 시장에 마침내 훈풍이 불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폭발적인 에너지 수요가 데이터센터 증설로 이어지면서, 청정에너지와 관련 기술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 9개월간 집계된 투자액은 이미 2024년 전체 규모를 넘어서며 회복세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15일(현지시각) 블룸버그NEF(BNEF)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전 세계에서 녹색 사업에 투입된 민간과 공공 투자 자금은 최대 560억 달러(약 79조 원)에 이르러, 2024년 한 해 동안 기후 기술 산업이 유치했던 510억 달러(약 72조 원) 미만 자금을 3분기 만에 넘어섰다. 이 자금은 주로 청정에너지, 전기차(EV), 에너지 저장 기술을 비롯해 친환경 인프라 개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갔다.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 정책 후퇴라는 악재에도 청정에너지와 전력 저장 분야에서 대규모 거래가 연이어 이뤄지면서 시장 회복을 이끌었다. 실제로 중국의 배터리 대기업 CATL은 지난 5월 홍콩 증시 기업공개(IPO)로 약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조달했다. 중국의 대표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 역시 3월 주식 매각으로 52억 달러(약 7조3900억 원) 자금을 확보했으며,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거인 이베르드롤라 SA는 7월 59억 달러(약 8조3800억 원) 규모 주식 매각을 마쳐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AI 열풍이 되살린 투심…기관도 '에너지 안보'에 주목


블룸버그NEF의 무스피카 미시 분석가는 "원자력 에너지가 전체 기후 벤처캐피털 펀딩의 5분의 1을 유치했으며, 이는 상당 부분 AI 열풍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AI 반도체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의 벤처 부문이 참여한 커먼웰스 퓨전의 8억 6300만 달러(약 1조 2200억 원) 규모 자금 조달이 대표 사례다. 실제로 AI 기반 기후 기술 해법은 전체 기후 투자액의 약 20%를 차지했으며, 특히 북미에서 높은 투자 비중을 보였다.

이런 흐름에 사모펀드, 벤처캐피털과 함께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 투자자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기후 기술을 단순한 성장 동력을 넘어 에너지 자립과 국가 안보를 강화할 핵심 요소로 보기 시작했다. 10월 초 브룩필드 자산운용은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200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 펀드를 조성했으며, JP모건 체이스 역시 이번 주 핵심 산업 육성을 위한 1조5000억 달러(약 2132조 원) 규모 이니셔티브의 하나로 최대 100억 달러(약 14조 원)를 직접 지분과 벤처캐피털 형태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배터리, 원자력, 태양광 기술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꼽았다.

JP모건의 추카 우무나 지속가능 해법 부문 세계 총괄은 미국의 기술 산업 성장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4일 블룸버그 텔레비전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기술 산업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풍력과 태양광 같은 에너지원을 활용할 필요가 없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은 풍력과 태양광 없이는 기술 산업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미국 내 투자 전문가들의 분석과 같은 맥락이며, 재생에너지를 전략으로 삼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선택과 집중' 투자로 전환…정책 변수는 여전


다만 투자 전략의 무게중심은 점차 초기 단계의 광범위한 투자에서 벗어나, 시장 성숙에 따라 더 큰 규모의 선별 투자로 옮겨가고 있다. 실제로 전체 투자금액은 늘어나는 반면 거래 건수는 오히려 줄어, 소수 유망 기업에 자금이 몰린다. 부채나 공공 보조금 같은 비지분 자금 비중이 늘어난 점도 인프라 중심의 기후 기술 성장을 이끄는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투자 자금 유입은 청정에너지 관련 기업 주가가 주요 주가 지수를 웃도는 호실적을 보이는 것과 맞물려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후퇴 가능성은 여전히 투자 심리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하지만 이런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국 내 기업 사이 기술과 시장 협력은 오히려 늘고 있어 시장의 자체 동력은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상승세가 2026년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시 분석가는 트럼프의 재생에너지 사업 공격이 투자자 신뢰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자금난을 겪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넘어서는 문제가 여전히 과제다. BNEF는 전체 기후 자금의 일부를 차지하는 벤처캐피털(VC) 투자액이 2025년 말 약 250억 달러(약 35조 원)로 마감해, 지난해 317억 달러(약 45조 원)를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2025년 하반기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투자가 다시 회복될 조짐을 보여, 멀리 보면 기후 기술 시장은 도전과 기회가 함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