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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中 윙텍, '자회사 넥스페리아' 경영난…280% 순익에도 '현금흐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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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中 윙텍, '자회사 넥스페리아' 경영난…280% 순익에도 '현금흐름 위기'

네덜란드 정부, 국가 안보 내세워 경영 개입…英 이어 두 번째
폭스바겐 등 車업계 '셧다운' 준비…"2~3주 내 공급 차질 현실화"
중국 윙텍의 자회사인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가 경영권 분쟁과 정부 개입으로 심각한 현금 흐름 위기에 직면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넥스페리아 경영에 직접 개입하면서, 280% 순이익 급증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차질로 인한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생산 중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윙텍의 자회사인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가 경영권 분쟁과 정부 개입으로 심각한 현금 흐름 위기에 직면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넥스페리아 경영에 직접 개입하면서, 280% 순이익 급증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차질로 인한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생산 중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로이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칩 제조사 넥스페리아(Nexperia)의 중국 모회사인 윙텍(Wingtech)이 2025년 3분기 순이익 280%라는 경이적인 급증세에도 심각한 '현금 흐름 위기' 가능성을 공식 경고하고 나섰다고 IT전문 매체 톰스 하드웨어가 지난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2019년 약 33억 유로(약 5조 5000억 원)를 들여 넥스페리아 지분 100%를 인수한 윙텍은, 유럽 자회사인 넥스페리아에 대한 경영권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2026년 수익과 이익, 현금흐름에 심각한 압박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車업계, '반도체 공급난' 재연 공포…공장 셧다운 준비


윙텍의 경영난과 공급 차질 우려는 이미 전 세계 자동차 업계로 확산하고 있다. 넥스페리아는 폭스바겐(Volkswagen)을 비롯한 유럽 및 일본의 주요 완성차 업체에 필수 칩을 공급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반도체 공급이 줄어들면서, 다수의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 일본과 유럽의 일부 자동차 회사들은 넥스페리아의 공급 중단 불확실성에 대비해 일부 조립 공장의 가동 중단(셧다운)을 사전에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윙텍의 이번 경고는 지난 24일 발표된 실적 공시를 통해 드러났다. 윙텍은 해당 공시에서 "넥스페리아가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매출, 이익, 현금 흐름에 일시적인 하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 성명은 사실상 네덜란드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넥스페리아는 전압 조정 모듈(VRM)이나 정전기 방전(ESD) 보호 장치 등 광범위한 전자기기에 쓰는 다이오드, 모스펫(MOSFET), 소신호 로직과 같은 범용 반도체 분야의 최대 생산업체 중 하나다.

윙텍이 지적한 '지배구조 문제'란 최근 네덜란드 정부가 넥스페리아에 대한 감독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조치를 의미한다. 만약 이러한 지정학 갈등이 윙텍의 주문 이행이나 설비 확장 투자를 가로막기 시작하면, 부품 조달 기간 연장과 상류(업스트림) 부품 가격 상승 압력이라는 연쇄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 사태가 지속된다면, 2~3주 내에 수주 지연, 조달 기간 증가, 가격 인상 등 공급 차질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네덜란드, '안보' 명분으로 경영권 직접 통제


윙텍이 실적 발표에서 네덜란드 정부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그 배경은 명확하다. 2025년 9월, 네덜란드 정부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상품가용성법(Goods Availability Act)'을 적용해 넥스페리아를 직접 감독하기로 결정한 조치가 발단이 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 조치로 넥스페리아의 주요 의사결정에 개입·거부·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으며, 앞으로 1년간 넥스페리아의 자산, IP, 인사 및 운영에 대한 중요한 변경을 금지했다.

이 결정은 2024년 영국 정부가 넥스페리아의 뉴포트 웨이퍼 팹(Newport Wafer Fab) 인수를 무산시키고 강제 매각을 명령한 이후, 서방 정부가 단행한 두 번째 중대한 경영 개입이다. 배경에는 넥스페리아의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미국과 유럽의 공동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윙텍 측에 중국인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등 직접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의 보도에 따르면, 양측의 긴장은 이미 현실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 현지 넥스페리아 직원 일부의 급여 지급이 중단되고 내부 시스템 접근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지배구조 분쟁이 일상적인 기업 운영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나아가 내부에서는 네덜란드 임원진과 장쉐펑(張學豐) CEO를 위시한 중국 측 경영진 간의 갈등이 격화하며, 최근 CEO를 해임하고 이사회를 재편하는 등 심각한 경영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PC 및 부품 제조 업계에 또다시 '익숙하지만 불편한'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은 공급망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넥스페리아의 기술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처럼 화려하게 주목을 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시생산(just-in-time)' 시스템에 아슬아슬하게 의존하는 오늘날의 세계 제조업 생태계에서 넥스페리아의 범용 반도체는 그에 못지않은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만약 윙텍이 유럽 자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거나, 네덜란드 정부의 과도한 감독 때문에 신속한 의사 결정이 마비된다면, 조만간 산업 전반의 '물류 대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후방 산업(downstream)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심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번 사태는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기조에 동참하며 기술 통제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발생했다. 중국 역시 이에 맞서 희귀 광물 수출 통제와 라이선스 심사 강화로 맞대응하고 있다. 넥스페리아 사태는 단순한 기업 지배구조 갈등을 넘어, 미·중과 유럽 간의 반도체 공급망과 기술 주권을 둘러싼 지정학 논쟁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