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트럼프 '21조 달러 투자' 주장은 대국민 사기극?"…블룸버그, 백악관 '투자 부풀리기' 직격탄

글로벌이코노믹

"트럼프 '21조 달러 투자' 주장은 대국민 사기극?"…블룸버그, 백악관 '투자 부풀리기' 직격탄

블룸버그, 백악관 홍보 137개 프로젝트 전수 조사…"실체는 7조 달러, 3배 뻥튀기"
AI·데이터센터만 '북적', 제조업 일자리는 '썰렁'… 가전 관세 인하 혜택 고작 '5만 원'
韓 기업 '3500억 달러 청구서' 날아오나… "약속 이행하라" 트럼프 압박 거세질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장벽으로 역사적인 투자 붐을 일으켰다"고 자화자찬했으나, 실제 기업과 국가들이 약속한 투자 규모는 대통령이 공언한 수치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블룸버그통신은 26(현지시각) 발간한 뉴스레터 서플라이 라인(Supply Lines)’을 통해 백악관 웹사이트에 게시된 투자 프로젝트를 전수 분석한 결과를 보도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투자 부풀리기' 의혹을 제기했다.

백악관 리스트 137개 뜯어보니… "21조 달러? 실제는 7조 달러"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백악관 웹사이트에 공개된 137개 투자 프로젝트를 전수 조사해 분석한 결과, 실질적인 투자로 간주할 수 있는 금액은 총 7조 달러(1262조 원)로 집계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생산을 위해 기업과 각국이 약속한 금액"이라며 공언한 21조 달러(3788조 원)와 비교하면 3배가량 부풀려진 수치다.

물론 블룸버그가 확인한 7조 달러라는 규모 자체도 통계 작성 이래 미국에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액을 웃도는 막대한 금액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 성과로 내세운 '21조 달러'라는 숫자가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구속력 없는 '종이 호랑이' 공약… 제조업 부활 대신 'AI 로봇'만 온다


블룸버그는 이번 분석을 통해 기업들의 자본 투자 약속이 가진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백악관 주인이 누구든 상관없이 진행했을 '잘 포장된 홍보성 계약'이거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레임덕 기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는 구속력 없는 자본 공약(Non-binding capital commitments)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투자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문제는 남는다. 투자 계획 상당수가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구축 등 자본 집약적 산업에 쏠려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 기간 약속했던 '블루칼라 제조업의 지속적인 부활'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공장 자동화와 AI 도입은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트럼프 지지층이 기대하는 대규모 현장 고용 창출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가전 관세 인하 생색냈지만… 가구당 혜택은 연 '5만 원'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고물가에 따른 유권자들의 불만에 직면해 있다. 관세 정책이 소상공인에게 타격을 주고 물가를 자극한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커피, 과일, 채소, 소고기 등 일상용품에 대한 수입 관세를 인하했지만, 이 조치로 얻는 가구당 연간 혜택은 평균 35달러(5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조치는 관세 비용을 결국 소비자가 떠안는다는 경제학자들의 오랜 주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기업 현장의 혼선과 과장된 수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하이얼 그룹이 소유한 가전업체 GE어플라이언스(GE Appliances)는 지난주 15000만 달러(2190억 원) 규모의 지역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 8월 발표한 30억 달러(43900억 원) 규모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복귀) 및 일자리 창출 계획의 하나다. 하지만 현재 백악관 웹사이트에는 이 회사의 투자 약속이 실제 발표보다 5억 달러(7300억 원) 부풀려진 35억 달러(51300억 원)로 기재돼 있다.

블룸버그는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은 선거 일정보다 경기 순환(Business Cycle)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자본 지출이 실제 경제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수' 드러난 트럼프노믹스… 韓 기업에 '진짜 돈' 내라 압박할까


블룸버그의 이번 보도로 트럼프 행정부의 '투자 유치 성과 부풀리기'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한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장된 수치를 만회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한국 기업들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바이든 전 행정부와 트럼프 대통령 취임 11개월을 거치며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1400억 달러(205조 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거품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 계획을 실제 집행으로 옮기라고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의 통상 전문가들은 "백악관이 중간선거 등을 앞두고 가시적인 일자리 데이터를 원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에 공장 조기 착공이나 현지 채용 확대를 요구하는 청구서가 날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축소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전제로 투자를 결정했는데, 혜택은 줄어들고 투자 이행 압박만 거세지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특히 투자 금액이 백악관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된 후, 실제 혜택 제공 단계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말을 바꿀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단순한 투자 금액 나열이 아니라, '미국 경제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수치화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 투자 금액보다 '미국 내 고용 창출 인원', '지역사회 경제 유발 효과' 등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 데이터를 제공하며 반대급부(보조금 유지, 관세 예외)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무리한 조기 투자는 지양하되,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에 대비해 투자 시점과 규모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가동해야 하고, 투자 계약 시 보조금 지급 보증 등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항을 강화하여, 정권 기조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