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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핵항모 트루먼호의 '대굴욕'…아군기 향해 미사일 쏘고 갑판서 미끄러져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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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핵항모 트루먼호의 '대굴욕'…아군기 향해 미사일 쏘고 갑판서 미끄러져 '풍덩'

홍해 작전서 전투기 3대 손실·상선 충돌…미 해군 "훈련 부족과 장비 결함이 빚은 참사"
함장 보직 해임에도 '안보 공백' 우려…"세계 최강 미 해군, 기본기부터 무너졌다" 비판
작전을 수행하는 미 항공모함 모습. 사진=미 해군이미지 확대보기
작전을 수행하는 미 항공모함 모습. 사진=미 해군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미국 해군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다. 핵추진 항공모함 USS 해리 S. 트루먼(CVN-75)이 홍해 배치 기간 중 적군이 아닌 내부 시스템 결함과 승무원 숙련도 미달로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군사 전문 매체 조나 밀리타르(Zona Militar)5(현지시각), 미 해군이 최근 공개한 조사 보고서를 인용해 USS 해리 S. 트루먼 항모타격단이 홍해 배치 기간 중 겪은 일련의 사고가 승무원 훈련 부족과 장비 성능 결함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F/A-18 슈퍼 호넷 전투기 3대가 손실되고 함장 데이브 스노든 대령이 지휘권 박탈을 당하는 등 미 해군 전력 운용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항공모함 제원과 손실. 제작=글로벌이코노믹/제공=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항공모함 제원과 손실. 제작=글로벌이코노믹/제공=제미나이3


피아식별 실패…아군 전투기에 미사일 겨눈 이지스함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지난해 1222일 발생했다. 호위함인 순양함 USS 게티스버그가 착함을 위해 접근하던 자국 항모 소속 F/A-18 전투기 두 대를 적기로 오인, 요격을 위해 SM-2 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 해군은 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휘 통제 시스템의 난맥상을 꼽았다. 당시 USS 게티스버그는 항모타격단 본대와 떨어져 별도 작전을 수행 중이었으며, 지휘관들이 주요 작전 회의에 불참해 항모의 비행 계획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후티 반군의 드론 공격이 잦은 상황에서 피아식별장치(IFF)마저 오작동을 일으켰다.

긴장 상태에 있던 함정 지휘부는 접근하는 항공기를 적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교전 수칙에 따라 대응에 나섰고, 결국 아군 전투기 한 대가 손실되는 결과를 낳았다.

"브레이크 밀리고, 케이블 풀리고"…정비 불량이 부른 참사


올해 들어서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212일에는 항모 트루먼호가 상선 MV 베식타스-M(Besiktas-M)과 충돌했다. 당시 항모는 19노트(약 시속 35km)로 항해 중이었으나, 인근 선박 탐지 시스템의 기술적 결함과 승무원들의 통신 미숙으로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이 사고로 선미가 파손되어 68만 달러(10억 원)가 넘는 수리비가 발생했다. 같은 달, 후티 반군의 미사일 회피 기동 중 격납고 내에 있던 슈퍼 호넷 전투기가 고정 장치 불량으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어 지난 428일에는 또 다른 F/A-18 전투기가 회피 기동 중 바다로 추락했다.
조사 결과 갑판의 미끄럼 방지 코팅이 벗겨져 있었고, 항공기 제동 시스템마저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기체와 함께 견인 트랙터까지 바다에 빠지며 3600만 달러(53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조종사는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56일 사고는 정비 불량의 결정판이었다. 착륙하던 F/A-18 전투기의 꼬리 날개 갈고리(테일훅)가 갑판의 제동 케이블(어레스팅 와이어)에 제대로 걸리지 않아 기체가 바다로 추락했다. 며칠 전 점검을 마쳤음에도 케이블 도르래 댐퍼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기본이 무너졌다"…전력 공백 우려


미 해군은 이번 일련의 사태가 '피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고 결론 내렸다. 스노든 함장과 관련 승무원들에 대한 보직 해임과 자격 박탈 등 징계 조치가 내려졌으나, 군사 전문가들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보도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군사 전문가는 "장기간의 해상 작전과 인력 부족이 겹치면서 정비와 훈련이라는 기본이 무너진 사례"라며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도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인 인적 자원의 숙련도가 떨어지면 무용지물임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 해군의 전력 유지 태세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홍해와 같이 긴장감이 높은 분쟁 지역에서 기계적 결함과 소통 부재가 겹칠 경우, 적의 공격 없이도 스스로 전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향후 미 해군이 무너진 기강을 어떻게 바로세울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린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