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척 건조 LSM 사업에 'LST-100' 낙점… '가성비·속도' 잡는 상용 기술 도입
한화오션·HD현대, 미 함정 시장 진입 '청신호'… MRO 넘어 건조 수주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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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미 해군과 해병대는 차세대 중형 상륙함(LSM) 프로그램의 설계 모델로 네덜란드 다멘(Damen)사의 'LST-100'을 최종 선정했다고 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미군이 신속한 전력화를 위해 리스크가 높은 신규 개발 대신 검증된 '상용 기성품(COTS)' 설계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방산 업계에 새로운 도전 기회를 제공한다.
검증된 상용 플랫폼 선택… "시행착오 없는 실리적 결단"
존 C. 펠란(John C. Phelan) 미 해군장관은 이날 에릭 스미스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식화했다. 이번 결정은 미 해병대가 요구하는 연안 수송 능력을 가장 빠르고 경제적으로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이자 실용주의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선정된 'LST-100'은 배수량 4000톤급으로, 길이 100미터, 폭 16미터의 덩치를 자랑한다. 특히 수심이 얕은 연안에서 전차나 장갑차 등 500톤 규모의 화물을 싣고 약 6300km 이상을 이동해 해안에 직접 상륙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스미스 사령관은 "화물과 헬리콥터 수용 능력, 정박 효율성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군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는 신규 개발 대신,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기성품(Off-the-shelf)' 설계를 택함으로써 건조 비용을 낮추고 양산 리스크를 최소화했다고 분석한다.
미 전역 조선소에서 35척 건조… 동맹국과 ‘표준’ 공유
미 해병대는 총 35척의 LSM을 도입할 계획이다. 핵심 설계는 네덜란드 것을 쓰지만, 실제 건조는 '존스법(Jones Act)' 등 미 국내법에 따라 미국 내 여러 조선소에서 이뤄진다. 각 조선소는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자사의 생산 환경에 맞춰 미세 조정을 거친 뒤 건조에 착수한다.
주목할 점은 이 설계가 이미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해군 역시 최근 8척의 중형 상륙정 프로그램에 다멘의 설계를 채택했고, 나이지리아 해군은 이미 4년 전인 2021년 동형 함정을 인도받아 운용 중이다.
이는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과 호주군 간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호주에서 건조되는 첫 번째 함정은 내년(2026년)부터 건조에 들어간다.
컨테이너 하나면 일반 선박도 '핵잠수함 킬러'로
한편, 해상 전투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모듈형 무기 체계도 등장했다. 캐나다 방산기업 울트라 마리타임(Ultra Maritime)은 같은 날 20피트 표준 컨테이너에 쏙 들어가는 대잠전(ASW) 시스템 '씨 트래커(Sea Tracker)'를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소나(음파 탐지기) 배열, 어뢰 방어 장치, 감시 센서를 컨테이너 하나에 통합한 것이 특징이다. 별도의 대잠 전용 함정이 없더라도, 이 컨테이너만 실으면 일반 화물선이나 소형 경비정, 심지어 무인 선박(USV)까지도 즉시 고성능 대잠함으로 변신할 수 있다.
울트라 마리타임 측은 "적성국의 고속 핵잠수함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군에 필요한 것은 고가의 전용 함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민첩성"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지 확대보기'가성비'와 '모듈화'… 급변하는 해전 트렌드
이번 미 해병대의 결정과 신기술 공개는 현대 해전의 트렌드가 '소수 정예의 고가 플랫폼'에서 '다수의 저비용·고효율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중국의 해양 팽창에 맞서 광활한 태평양 도서 지역 곳곳에 병력을 분산 배치하고 보급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했다. 4000톤급 LSM 35척은 이러한 '분산 치명성(Distributed Lethality)' 전략의 핵심 핏줄 역할을 할 것이다. 아울러 컨테이너형 대잠 시스템의 등장은 유사시 징발한 민간 선박이나 저가형 무인 선박을 대규모 대잠 감시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美 ‘외산 설계’ 수용, K-조선에 ‘기회의 창’ 열리나
미국이 해병대 핵심 전력인 중형 상륙함(LSM)의 밑그림으로 자국 기술이 아닌 네덜란드 설계를 채택한 것은 한국 조선업계에 상당한 전략적 함의를 갖는다. 미 해군이 시급한 전력 보강을 위해 '순혈주의'를 버리고 '검증된 외산 모델'에 문을 열었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미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등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번 LSM 건조 방식이 한국 기업의 대미 진출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 해군은 다멘의 설계도를 사들여 실제 건조는 미국 내 여러 조선소에 분산 발주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존스법(Jones Act·미국 내 건조 선박만 미 연안 운항 허용)' 규제를 준수하면서도, 외부의 우수한 기술을 수혈받는 실용적 모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 인수를 확정한 한화오션이 이번 프로젝트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필리조선소는 존스법을 충족하는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이기 때문에, 다멘의 설계를 바탕으로 한 LSM 건조 입찰에 참여하는 데 아무런 법적 제약이 없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장관이 수차례 한국 조선소의 '납기 준수'와 '건조 역량'을 극찬해온 점도 긍정적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유럽의 상업용 선박 기반 설계를 군함에 적용했다는 것은, 가격 경쟁력과 건조 속도를 최우선 순위에 뒀다는 의미"라며 "상선과 특수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가성비'와 기술력을 가진 한국 조선사들이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넘어, 미군 함정 건조 시장에 직접 진입할 명분이 더욱 확실해졌다"고 평가했다.
다멘의 LST-100 선정은 단순한 설계 도입을 넘어, 미 해군이 동맹국의 조선 역량을 자국 공급망으로 깊숙이 편입시키려는 거대한 흐름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