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장기화 속 '美 우선주의' 회귀…흔들리는 자유주의 동맹 신뢰
유럽선 재무장·징병제 논의 본격화…韓도 '미국 없는 안보' 대비해야
유럽선 재무장·징병제 논의 본격화…韓도 '미국 없는 안보' 대비해야
이미지 확대보기영국 매체 스카이뉴스가 12월10일 보도한 분석이 보여주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사 동원, 재정 지출, 산업 기반을 모두 전시 체제로 고정해놓은 채, 평화가 아니라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자유주의 진영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힘을 온전히 쓰지도 못하면서, 동시에 전쟁의 비용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 구조는 단지 유럽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이 “국익에 부합할 때만 개입한다”는 새로운 원칙을 사실상 천명한 순간, 자유주의 국제질서 전체가 조건부 시스템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드러난 균열은 곧바로 한반도와 대만, 인도·태평양으로 번져온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포함한 새로운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너지는 자유주의 전제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자유주의 질서가 그토록 자신 있게 주장해 온 세 가지 전제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첫 번째 전제는 규범과 제재, 동맹의 결속만으로도 침략을 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경제 제재와 외교적 고립을 감수하면서도 군사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 경제를 통해 내부 통제와 장기전을 결합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전제는 미국이 결국에는 동맹을 위해 ‘결정적 순간에 개입할 것’이라는 신뢰가 조건부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 전략은 유럽 방위조차 “미국의 이해와 비용 대비 이익”이라는 계산 속에 집어넣었다. 나토의 집단방위 조항은 조문 그대로 남아 있지만, 적용 여부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 상징적 위력은 급격히 퇴색한다.
세 번째 전제는 자유주의 진영 내부의 정치 체제가 전쟁과 평화의 리듬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은 일방통행식 전시 체제를 구축했지만, 유럽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선거, 재정 제약, 사회적 피로감에 발이 묶여 있다. 전쟁을 끝낼 만큼의 힘을 쓰려면 정치적 정당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다시 국민에게 “피와 돈, 시간을 얼마나 쓸 각오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과신해온 것들,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이 경고해온 것들이 한꺼번에 충돌한 시험장이 되었다. 전쟁은 이념이 아니라 힘과 시간, 지리와 산업 기반이 결정을 내리는 영역이라는, 냉혹한 진실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美 ‘동맹 재설계’ 전략 가시화
첫째는 유럽 방위를 축소하고 중국 견제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형적인 오프로딩 전략이다. 둘째는 유럽과 인도·태평양 두 전선을 동시에 관리하는 고비용 패권 전략을 유지하는 길이다. 셋째는 동맹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전략이다.
지금 트럼프식 국가안보 전략과 나토 내부의 논쟁은, 사실상 세 번째 선택지로 기울어지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최종 보증인이지만, 각 지역 동맹국에게 “스스로 지킬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이는 유럽에겐 재무장과 일부 국가의 핵 옵션 논의를 부활시키고, 아시아에는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자체 핵무장 논쟁을 불러온다.
유럽의 재무장, 한국에 던지는 경고
프랑스는 이미 “부모들이 자녀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독일은 사실상의 징병제 복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정부만 아직 ‘정치적 솔직함’을 주저하고 있을 뿐, 나토 핵심 국가들의 안보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미국 없는 유럽 방위”라는 불편한 질문이 이미 공개 의제가 되었다.
유럽의 재무장 논쟁이 한국에 주는 신호는 분명하다.
첫째,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는 더 이상 절대적인 전제가 아니다. 미국이 유럽에 대해 “국익에 부합할 때만 개입한다”고 말하는 순간, 한국과 일본, 대만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 대상이 된다.
둘째, 지역 방위의 1차 책임은 결국 해당 지역 국가가 진다. 유럽이 자체 재래식 전력과 산업 기반을 복원해야 하듯, 한국 역시 미군의 지원을 ‘결정적 지원’으로만 간주하고, 초기 국지전과 전면전에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전쟁에 대비한다는 것은 국방비 몇 퍼센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전시 인식과 동원 체제를 재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유럽은 지금 이 불편한 질문을 국민에게 던지고 있다. 한국은 아직 그 질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자체 핵무장’은 필연적 선택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동안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고, 북한은 러시아에 탄약과 포탄을 공급하며 전후 보상을 약속받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미국이 유럽과 인도·태평양 두 전선을 동시에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순간, 한반도는 다음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가장 큰 위험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의 개입이 늦게, 적게, 조건부로 이뤄지는 시나리오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중국 견제에 자원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위기를 “부분적으로 관리 가능한 지역 분쟁”으로 취급하는 시나리오다.
이 두 위험을 동시에 줄이기 위한 전략이 바로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에 기초한 자율 억제력, 즉 자체 핵무장과 전략 자율성 강화의 논리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억제 구조는 ‘확장억제 현실화’, ‘전술핵 재배치’, ‘조건부 독자 핵무장’의 세 단계로 나뉜다. 특히 최악의 경우, 미국이 유럽에 대해 그러하듯 한국에 대해서도 “국익이 안 맞으면 개입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던지는 순간, 한국은 이미 준비해 놓은 기술·산업 기반을 토대로 단기간 내 독자 핵무장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의 질문은 곧 한국의 질문
자체 핵무장을 논의한다고 해서 한미동맹을 약화시키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동맹을 “의존의 구조”에서 “상호 이해와 교환의 구조”로 재구성하자는 요구에 가깝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독자 억제력은 역설적으로 인도·태평양 방위 비용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초기 대응과 지역 균형의 상당 부분을 자력으로 부담한다면, 미국은 전략 자산과 핵 억제의 최상위 보증인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스카이뉴스의 분석은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푸틴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고, 미국과 유럽은 아직 전쟁을 막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이 질문은 유럽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 역시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어디까지 준비할 것인가. 우리는 미국의 조건부 방위와 세계 질서의 균열 속에서, 언제까지 “남이 설계한 억제 구조” 안에 머물 것인가. 유럽은 지금 국민에게 “당신의 자녀가 전쟁터에 나갈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제 국민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때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실험장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자체 핵무장은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일 뿐이다. 그러나 최소한, 그 질문을 더 이상 피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한국에 남기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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