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추구하는 대중 군사적 다층 억지 능력의 정체와 이로 인한 동아시아 전장의 변화 그리고 한국이 읽어야 할 신호
이미지 확대보기패권 경쟁은 더 이상 선언이 아니라 체계의 충돌이다
오늘날 미중 패권 경쟁은 이미 외교 수사나 군사력 비교의 단계를 넘어섰다. 그것은 어떤 국가가 더 많은 병력을 보유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위협을 어떻게 감지하고 해석하며, 그에 대응하는 결정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체계로 연결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패권 경쟁은 개별 무기 체계가 아니라 시스템 대 시스템의 충돌이며, 그 충돌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동아시아다.
동아시아는 과거 냉전기처럼 단순한 전초기지가 아니다. 이 지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미국의 전략적 재배치가 교차하는 핵심 무대이며, 동시에 일본과 대만, 한국, 호주 등 주요 동맹국들이 각자의 생존 전략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일본의 방위 전략 전환은 단순한 국내 정책 변화가 아니라, 미중 경쟁이 동아시아 질서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압축된 사례다.
세계 질서의 변화는 동맹의 역할부터 바꾼다
전후 세계 질서에서 미국은 동맹을 보호하는 중심축이었다. 군사적 억지는 미국이 제공했고, 동맹국들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오랫동안 작동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이 균형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중국은 군사력뿐 아니라 산업 기반과 기술 역량, 국가 동원 능력을 결합해 장기 경쟁 체제로 전환했고,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게 만들었다.
이제 동맹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 부담의 주체로 인식된다. 미국은 동맹국들이 자국 방어에 더 큰 책임을 지기를 요구하고, 위기 초기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기대한다. 이는 단순한 방위비 증액 요구를 넘어, 동맹국이 전쟁 초기의 치명적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전략 전환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일본이 선택한 길은 거부 억지의 체계화다
일본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단기적 위협이 아니라 장기적 구조 변화로 인식했다. 과거에는 우수한 기술과 훈련, 그리고 미군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졌던 방위 구상이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이 새롭게 설정한 목표는 단순하다.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단기간에 결정적 성과를 얻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미사일 방어와 대공 방어를 강화하는 방패 위에, 반격 능력이라는 검을 결합했다. 이는 공격을 받았을 때 보복하겠다는 선언적 억지가 아니라, 공격 자체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상대에게 심어주는 거부 억지의 논리다. 일본의 전략 문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은 통합이다. 요격과 타격, 감시와 지휘, 해상과 공중, 기지와 기동 전력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때 억지는 실체를 갖는다.
다층 억지는 전술이 아니라 전쟁 설계다
일본이 구축하려는 다층 억지는 개별 무기 체계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떤 순서로, 어떤 강도로,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미리 설계하는 과정이다. 미사일 방어는 공격의 효과를 낮추고, 반격 능력은 다음 공격을 억제하며, 기지 분산과 비축은 전쟁이 길어질 경우에도 전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이 모든 요소는 하나의 전쟁 지속 능력으로 연결된다.
이 점에서 일본의 선택은 동아시아 질서 변화의 본질을 드러낸다. 미중 경쟁은 단기간의 충돌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가, 누가 더 빠르게 전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가 승패를 가를 수 있다. 일본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속도와 충격에 있다
중국의 군사 전략은 일본의 전환을 촉발한 직접적 배경이다. 중국은 장기간의 소모전을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초기 단계에서 압도적인 미사일과 공중 전력을 투입해 상대의 지휘 체계와 인프라를 마비시키고, 정치적 결단을 강요하는 방식을 추구해 왔다. 이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중국의 군사 행동 양식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초기 충격이다. 미사일과 순항미사일, 공중 타격이 결합된 대규모 공격이 성공할 경우, 일본의 대응 능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 일본의 다층 억지는 이 초기 충격을 흡수하고, 공격자가 기대한 속도와 효과를 좌절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중국의 승리 공식을 무너뜨리는 전략적 대응이다.
동아시아 질서는 이미 군사화된 경쟁의 장이다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항공기 근접 비행, 해상에서의 위험한 접근, 미사일 시험과 군사 훈련은 일상적 풍경이 됐다. 이러한 회색지대 충돌은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압박과 불안을 만들어낸다. 일본의 전략은 이러한 환경에서 억지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억지는 단순히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계산할 때 불확실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자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고, 동시에 미국과의 동맹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다. 이는 동아시아 질서가 단순한 힘의 균형이 아니라, 신호와 인식의 경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한국이 일본의 사례에서 읽어야 할 핵심은 무엇인가
일본의 전략을 한국이 그대로 모방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안보 환경은 일본과 다르며, 북한이라는 직접적이고 상시적인 위협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전환이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그것은 무기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어떤 구조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첫째, 초기 국면을 견디는 능력이 억지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이 시작될 경우를 상정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 역시 단기간의 충격에 국가 기능이 마비되지 않도록 하는 회복 탄력성과 분산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방어와 대응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순수 방어만으로는 포화 공격을 막기 어렵고, 대응 능력만으로는 억지를 완성할 수 없다. 핵심은 통합이다. 감시와 요격, 대응과 지휘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할 때 억지는 신뢰를 얻는다.
셋째, 동맹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동맹은 더 이상 자동 개입의 보증이 아니다. 동맹국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부담을 지고, 위기 초기에 버틸 수 있을 때 동맹은 더욱 공고해진다. 한국이 동맹을 관리하는 방식도 이 변화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미중 경쟁의 다음 국면에서 일본의 선택이 기준선이 된다
일본의 다층 억지 전략은 동아시아에서 하나의 기준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라기보다, 중국의 전략이 작동하지 않도록 만드는 방어적 설계다. 일본은 공격을 원하지 않지만, 공격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 한다.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교수인 할 브랜즈가 블룸버그 칼럼에서 예상한 것처럼 미중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쟁 속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다. 준비하거나, 준비하지 않은 채 압박을 감수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일본은 준비하는 쪽을 선택했다. 한국 역시 이 선택의 의미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것은 특정 국가를 따라가는 문제가 아니라, 변화한 세계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질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재편되고 있다. 그 재편의 방향은 선언이 아니라 체계에서 드러난다. 일본의 전략 전환은 그 체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도다. 한국이 그 지도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미래의 선택지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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