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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기지의 반란”… 인도, 구글 AI 손잡고 ‘IT 종속국’서 ‘기술 수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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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기지의 반란”… 인도, 구글 AI 손잡고 ‘IT 종속국’서 ‘기술 수출국’으로

구글, 인도 정부 AI 거점에 800만 달러 ‘돈보따리’… “당뇨·농업 AI 동남아 역수출”
딥마인드 임원 쓴소리 “인도 기업 R&D 투자는 ‘낙제점’… 정부에 무임승차 말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왼쪽)는 12월 9일 뉴델리에서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와 만났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왼쪽)는 12월 9일 뉴델리에서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와 만났다. 사진=AP/뉴시스
그동안 선진국 기업의 전산망을 관리하거나 콜센터 업무 등 단순 지원 업무를 도맡으며 세계의 지원부서(Back Office)’ 취급을 받던 인도가 달라졌다. 구글의 최신 인공지능(AI) 기술을 흡수해 독자적인 솔루션을 개발, 이를 역으로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인도가 단순한 정보기술(IT) 하청 기지를 넘어 AI 기술의 새로운 발신지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인도 경제지 이코노믹타임스는 17(현지시간) 구글 딥마인드의 매니시 굽타 수석 이사의 발언을 인용해, 인도에서 개발된 의료 및 농업 분야 AI 도구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은 이날 인도 정부가 설립한 4‘AI 우수 센터(CoE)’에 총 800만 달러(118억 원)를 지원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도서 만든 구글 AI’, 신흥국 표준 된다


구글 딥마인드가 주도하는 이번 변화의 핵심은 현지화된 AI의 세계화. 굽타 이사는 이날 인도에서 처음 개발한 당뇨망막증 진단 솔루션이 태국에서 스크리닝 도구로 자리를 잡았고, 농업용 AI 모델 역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가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솔루션을 세계 다른 지역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구글의 경량화 거대언어모델(LLM)젬마(Gemma)’를 기반으로 한다. 구글은 젬마 모델 22종 전부를 인도 AI 미션의 개방형 데이터 플랫폼인 ‘AI코시(AIKosh)’에 업로드했다. 인도 개발자들이 구글의 원천 기술을 활용해 만든 저비용·고효율 솔루션이 비슷한 경제 환경을 가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반구 신흥국)’ 국가들로 퍼져나가는 구조다.

구글은 이날 언어 장벽을 허무는 데도 자금을 투입했다. 인도공과대(IIT) 봄베이에 설립하는 인도어 기술 연구 허브200만 달러(296000만 원)를 기탁하고, 젬마를 활용해 음성 AI 모델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나니(Gnani).AI’코로버(CoRover).AI’에 각각 5만 달러(7400만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구글의 프로젝트 바니(Vaani)’는 인도 내 110개 언어의 음성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무료로 공개했다. 굽타 이사는 수집 대상 언어 중 35개는 사상 최초의 음성 데이터이며, 22개 언어는 AI 연구자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디지털 데이터라고 설명했다. 이는 데이터가 부족한 제로 코퍼스(Zero Corpus)’ 언어권에서도 AI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인도 기업, 덩치만 컸지 R&D는 빵점… 구글의 경고


그러나 이날 발표의 이면에는 인도 민간 산업계의 고질적인 연구개발(R&D) 부진을 향한 구글 측의 날 선 비판도 있었다.

굽타 이사는 인도 산업계를 거대한 지각생(huge laggard)’이라고 칭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인도 기업들은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이 극히 낮다정부가 앞장서서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지만, 산업계가 제 몫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인도가 세계적인 IT 인력을 보유했음에도, 혁신적인 원천 기술 개발보다는 서구권 기업의 유지보수나 하청 업무에 안주해 온 관행을 꼬집은 것이다. 굽타 이사는 업계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get its act together)”는 표현까지 써가며 민간 부문의 각성을 촉구했다.

데이터 광산인도, 글로벌 AI 전초기지로


전문가들은 구글의 이번 행보를 단순한 사회공헌이 아닌, 치열해지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의 일환으로 분석한다. 14억 인구를 가진 인도는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데이터 광산이자 거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구글이 인도 정부 기관과 손잡고 자금과 기술을 쏟아붓는 것은 오픈AI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경쟁사보다 앞서 넥스트 빌리언(Next Billion·다음 10억 명 사용자)’ 시장을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다만 굽타 이사의 지적처럼 인도 민간 기업들이 하청 구조를 탈피해 독자적인 기술 투자에 나설지가 관건이다. 인도 산업계가 이 경고를 받아들여 체질 개선에 성공한다면, 인도는 단순한 ‘AI 소비국을 넘어 미국과 중국을 위협하는 강력한 ‘AI 기술 허브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