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트럼프 2.0의 창(槍) '거부 억지'...서해 유린하는 中 '알박기' 끊어낼 해법

글로벌이코노믹

[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트럼프 2.0의 창(槍) '거부 억지'...서해 유린하는 中 '알박기' 끊어낼 해법

美 새 안보전략, 콜비의 '거부 전략' 채택...중국의 '야금야금 현상 변경' 원천 봉쇄
韓 서해의 中 불법 부표, 외교적 항의론 못 막아...행동으로 '성공 불가능' 각인시켜야

최근 중국이 한국과의 합의를 위반하고 서해 상에 불법 구조물과 부표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은 서해 모습으로 기사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중국이 한국과의 합의를 위반하고 서해 상에 불법 구조물과 부표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은 서해 모습으로 기사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최근 트럼프 2기 미 행정부가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약칭 NSS)은 미중 경쟁의 성격을 더 이상 장기 소모전이나 전면전 가능성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국가안보전략의 전문에 걸쳐 흐르는 인식은 중국이 군사·외교·정치 수단을 결합해 현상을 단기간에 바꾸고, 그 결과를 되돌릴 의지를 상대에게서 제거하는 '기정사실화(fait accompli)'를 주된 경로로 택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동중국해와 서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행동 패턴은 기정사실화 전략을 일관되게 추구해 오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군사적 충돌의 문턱을 넘지 않으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 국가가 되돌리기 어려운 현실적인 변화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방식의 도발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현재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국방부 정책차관으로 재직 중인 엘브리지 콜비가 2021년 출간한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에서 제시한 분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콜비는 중국이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할 전략은 전면전이 아니라, 대만과 같은 제한된 목표를 신속히 장악한 뒤 미국과 동맹의 ‘되찾을 결심’을 무너뜨리는 기정사실화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한 유일한 처방으로 '거부 억지(deterrence by denial)'를 제시했다.

트럼프 2기 NSS가 공유한 문제의식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는 중국을 '질서 수정 세력'이 아니라 현상 변경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춘 도전자로 규정한다. 이번 NSS는 대만을 단순한 가치 동맹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제1도련선의 구조적 핵심이자 중국의 기정사실화 전략이 가장 먼저 시험될 전장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NSS가 반복해 강조하는 것은 사후 응징의 의지가 아니라, 초기 단계에서 중국의 성공 가능성을 제거하는 능력이다.

이 대목에서 콜비의 사상은 국가안보전략의 문장 구조 속에 녹아든다. NSS는 중국이 “빠르게, 제한적으로, 되돌리기 어렵게” 행동할 가능성을 상정하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진 배치된 전력, 분산된 기지, 동맹의 초기 방어 역할 강화를 핵심 축으로 제시한다. 이는 중국이 '며칠 안에' 만들어내려는 기정사실을 그 시간표 자체에서 좌절시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중국의 기정사실화 전략을 거부 억지 전략으로 좌절시켜야 한다는 콜비의 전략 담론이 이번 NSS에 올곧이 반영된 것이다.

응징에서 거부로 이동한 억지의 축


콜비가 강조한 가장 중요한 전환은 억지 개념의 이동이다. 냉전 시기 미국의 억지는 주로 응징 억지, 즉 공격 이후 감당할 수 없는 보복을 약속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기정사실화 전략은 이 논리를 무력화한다. 이미 점령이 완료되고 정치적·외교적 비용이 누적된 상황에서의 보복은 동맹 내부의 분열과 확전 공포를 낳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는 이 점을 명확히 받아들인다. 국가안보전략 문서는 중국을 “처벌하겠다”는 표현보다, 중국이 처음부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방향으로 언어를 재구성한다. 전력 증강의 목적도 전면 반격이 아니라, 상륙과 봉쇄, 공중·해상 통제의 성공 확률을 낮추는 것에 맞춰진다. 이는 콜비가 말한 '중국의 최적 전략을 좌절시키는 전략'의 국가 문서화라 할 수 있다.

동맹의 재배치, 대만의 1차 방어선화


NSS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변화는 동맹의 역할 재정의다. 대만은 더 이상 미국이 사후 개입으로 구원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초기 방어를 수행해야 할 1차 방어선으로 설정된다. 일본과의 연계, 필리핀과의 기지 접근, 그리고 분산된 미군 전력의 즉응성은 모두 이 초기 국면을 염두에 둔 설계다.

이는 콜비가 책에서 반복한 주장과 겹친다. 중국의 기정사실화를 막으려면 미국이 멀리서 되찾으러 오는 구도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패를 강요하는 구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는 이를 제도화하며, 동맹국들에게도 “기여”가 아니라 초기 전투력을 요구한다.

서해에서 반복되는 기정사실화의 문법


이제 시선을 한반도로 돌리면, 중국의 기정사실화 전략은 추상적 가설이 아니라 진행 중인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의 서해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불법 구조물 설치와 부표 배치는 무력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해양 관할과 활동 범위를 점진적으로 한국 영해 안으로 확장하는 전형적인 회색지대 기정사실화다. 이 같은 불법 행위는 대만이나 남중국해에서 관찰되는 중국의 행동 패턴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중국은 이를 민간 시설, 연구 목적, 안전 관리라는 언어로 포장한다. 그러나 시간은 중국 편으로 흐른다. 한국이 뒤늦게 실효가 없는 항의만 반복하는 사이, 현장은 '이미 존재하는 사실'로 굳어진다. 콜비가 경고한 바로 그 상황이다. 기정사실은 군사적 점령이 아니라, 되돌리기 어려운 현실적 변화들의 지속적인 축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항의가 아닌 거부


이 지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와 콜비의 거부 전략은 한국에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서해 문제는 외교적 항의나 사후 조치로 해결되지 않는다. 초기 단계에서의 성공 불가능성을 중국에 인식시키지 못하면, 사태는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 불리해진다.

한국형 거부 전략의 핵심은 명확하다. 중국의 구조물과 부표가 유지·확장될 수 없다는 신호를 조기에 주는 것, 그리고 회색지대 행동이 비용 없이 반복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군사 충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감시, 차단, 철거, 법적·물리적 관리 능력을 결합한 현장 통제력이 핵심이다.

한미 동맹과 거부 억지의 접점

트럼프 2기 NSS는 동맹을 ‘안보 소비자’가 아니라 거부 억지의 공동 실행자로 본다. 이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해에서의 기정사실화는 대만 문제와 분리된 사안이 아니다. 중국이 서해에서 성공 경험을 축적할수록, 대만과 동중국해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정당화된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한미 동맹 차원에서 거부 억지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대만에서 중국의 기정사실화를 막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동맹국의 인접 해역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기정사실화조차 성공하지 못해야 한다.

거부 전략은 전쟁이 아니라 질서 관리다


콜비의 거부 억지는 공격적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질서 관리 전략이다. 중국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기정사실화의 유혹은 약화되거나 철회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는 이 같은 판단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았다.

한국 역시 같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서해의 작은 구조물과 부표는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콜비의 언어로 말하면, 작은 기정사실의 성공은 더 큰 기정사실을 부르기 마련이다. 이를 초기에 거부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되돌릴 결심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다.

대만에서 서해까지, 하나의 전략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가 채택한 콜비의 거부 억지는 특정 지역의 전술이 아니라, 기정사실화가 난무하는 시대에 대한 총체적 대응 논리다. 대만에서의 실패를 강요하는 전략과, 서해에서의 현상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는 같은 선 위에 있다.

한국이 서해에서 중국의 기정사실화 전략을 성공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주권 문제를 넘는다. 그것은 기정사실화의 시대에 어떤 질서가 살아남는가에 대한 선택이며, 대만과 한반도를 잇는 전략적 연속선 위의 문제인 것이다. 콜비의 거부 전략은 이제 이론이 아니라,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들이 실제로 실행해야 할 기준이 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 신년 들어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콜비의 거부 전략으로 중국이 우리 영해로의 불법적인 확장을 위해 서해 상에 구조물과 부표를 불법적으로 설치해오고 있는 것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