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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공개 압박 받던 인텔 CEO, 백악관 회동으로 정부 지분 투자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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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공개 압박 받던 인텔 CEO, 백악관 회동으로 정부 지분 투자 끌어냈다



립부 탄 인텔 CEO.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립부 탄 인텔 CEO. 사진=로이터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의 정치적 협상력을 앞세워 미국 정부의 대규모 지분 투자를 유치하며 위기 국면에서 벗어날 전기를 마련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비판을 받았던 탄 CEO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단 한 차례 회동을 계기로 인텔의 ‘전략 기업’ 지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24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인텔 CEO는 심각한 이해충돌 상태에 있으며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 CEO가 과거 중국 기업들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는 점을 문제 삼은 발언이었다.

당시 탄 CEO와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엔비디아, AMD, 오픈AI, 아마존, 구글, 팔란티어 등 주요 기술 기업 수장들이 잇따라 백악관을 찾았지만 지난 3월 인텔 CEO로 취임한 탄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이 없던 상태였다.

그러나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압박 직후 인텔은 백악관과의 접촉을 서둘렀고 이는 탄 CEO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약 40분간의 백악관 집무실 회동으로 이어졌다.

◇보조금 대신 지분…판 바꾼 40분

로이터에 따르면 이 회동에서 미국 정부는 인텔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그 대가로 지분 약 10%를 확보하기로 했다. 이로써 인텔은 사실상 ‘너무 전략적이어서 실패할 수 없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고 향후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한 기업들의 관심도 집중됐다.
이는 전략 산업에 대해 미국 정부가 직접 지분 투자에 나서는 새로운 산업 정책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탄 CEO 취임 이후 인텔 주가는 약 80% 상승해 같은 기간 S&P500지수와 엔비디아 주가 상승률을 웃돌았다.

로이터는 현직·전직 인텔 직원과 정부 자문 인사, 업계 관계자 등 약 20명을 인터뷰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탄 CEO가 반도체 제조 기술 측면에서 인텔을 정상 궤도로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백악관과의 협상에서 보여준 정치적 감각만큼은 높이 평가했다.

인텔은 한때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이끈 대표 기업이었지만 수년간의 내부 혼란 속에 대만 TSMC 등 경쟁사에 첨단 공정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단순 보조금은 원치 않는다”…거래 성사

회동에 앞서 탄 CEO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트럼프 대통령과 교분이 있는 인사들에게 조언과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도 배석했다.

탄 CEO는 앞서 러트닉 장관에게 반도체법에 따른 단순 보조금 수령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가 추가 지원을 하는 대신 인텔 지분을 받는 방안을 제안했고 양측은 이에 합의했다.

이 거래로 인텔은 57억달러(약 8조4417억원)의 현금을 확보했고 미국 정부는 인텔의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이후 탄 CEO는 “인텔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의 투자 이후 정부 보유 지분 가치가 50% 상승했다고 홍보했다.

실제로 탄 CEO는 백악관 회동 직후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성사시켜 50억달러(약 7조4050억원)를 추가로 유치했다.

◇협상력은 강점, 기술력은 숙제

말레이시아 출신인 탄 CEO는 벤처투자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중국을 포함해 약 600건의 투자를 진행했고 개인 자산은 5억달러(약 7405억원)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인텔 내부에서는 첨단 반도체 제조가 벤처투자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텔은 전임 CEO 팻 겔싱어 시절 시작한 대규모 공장 투자로 현금 유출이 이어지고 있으며 고객 확보를 위해서는 최소 200억달러(약 29조6200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탄 CEO는 취임 이후 조직 개편에 속도를 내며 전체 직원의 약 15%를 감원했고 중간 관리층을 축소해 기술 인력이 직접 보고하는 구조를 강화했다. 그는 인텔의 베테랑 엔지니어인 푸슈카르 라나데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뒤, 12월에는 임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승진시켰다.

◇‘생명줄’은 잡았지만 갈 길은 멀다

미국 정부의 이번 투자는 인텔에 사실상 ‘생명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정책 로비스트이자 챔버 오브 프로그레스 최고경영자 아담 코바체비치는 “이 거래가 없었다면 인텔은 CEO 교체 압박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기 인텔은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로부터도 20억달러(약 2조9620억원)를 투자받았다.

다만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외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 정부가 고객 유치를 위해 인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실제로 엔비디아는 인텔의 차세대 공정 ‘18A’를 시험한 뒤 추가 협력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은 18A 공정이 계획대로 진행 중이며 차세대 ‘14A’ 공정에도 강한 수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9월 투자 당시 인텔 공정을 사용하겠다는 확약은 하지 않았다.

로이터는 탄 CEO의 정치적 협상력이 인텔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경쟁력 회복 여부가 인텔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