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국가방위전략이 흔드는 유럽, 흔들리는 인도태평양, 그리고 핵무장 통한 독자 억지 설계국으로 진화하는 한국의 전략
이미지 확대보기유럽과 인도태평양을 전면에 두지 않은 전략, 즉 전구(戰區) 중심 전략에서 본토 중심 전략으로의 이동을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됐던 국가방위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 약칭 NDS)의 발표가 연기가 되고 있는 것 자체가 전략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미국이 아직 말로 규정할 수 없는 방향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이 글을 통해 그 방향 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유럽과 우크라이나, 인도태평양과 한반도, 나아가 한국의 안보 전략과 핵 억지 선택에 어떤 구조적 압력을 가하는지를 분석한다.
국가안보전략은 나왔고, 국가방위전략은 비어 있다
2025년 12월 초 미 백악관이 공개한 국가안보전략은 분명한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서반구(Western Hemisphere). 이는 냉전 이후 사실상 방치됐던 공간을 다시 전략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이를 “미군 지배력의 회복”이라고 표현했다.
서반구 우선 전략의 본질: 본토 방어와 내부 안정
서반구 우선 전략의 핵심은 해외 개입이 아니다. 본토 방어, 내부 안정, 접근 거부다. 마약 밀수, 불법 이주, 카리브해와 태평양에서의 회색지대 활동 차단은 모두 미국 국내 정치와 직결된 사안이다. 트럼프 2기 전략은 이 영역을 군사력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곧 미국이 더 이상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수준의 군사적 관여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군은 줄어들 수 있고, 동맹은 더 많은 부담을 요구받을 수 있다.
유럽의 불안: 나토는 유지되지만, 보장은 약해진다
이 전략이 유럽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나토는 해체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자동 개입에 대한 신뢰는 약화된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28개 항목 평화안은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다. 러시아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이 안은, 워싱턴이 유럽의 전면적 승리를 더 이상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착지: 승리가 아닌 관리
2026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가능성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니다. 문제는 ‘언제’와 ‘어떤 방식으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략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 패권의 전면 시험장이 아니라 비용 관리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양보라기보다, 중국을 포함한 장기 패권 경쟁을 위한 자원 재배치로 평가해야 한다.
인도태평양의 그림자: 집중은 유지되나, 방식은 바뀐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그렇다면 인도태평양은 버려지는 것인가. 답은 아니다. 그러나 방식은 달라진다. 미군이 모든 억지를 직접 수행하는 구조에서, 동맹이 억지의 전면에 서고 미국은 후방 보증자 역할을 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전환은 일본, 호주, 그리고 한국에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억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골든 돔과 기술 억지: 미국은 하늘을, 동맹은 땅을 맡는다
2026년 이후 구체화될 골든 돔 프로젝트는 이 전략의 기술적 표현이다. 미 본토를 다층 방공으로 보호하는 구상은, 미국이 해외 개입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 자국 안전을 절대화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동맹국들에게 불편한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은 자신을 지키는 데는 막대한 자원을 쓰지만, 동맹의 위협은 동맹 스스로 관리하길 원한다는 신호다.
한국이 직면한 현실: 확장억제의 신뢰는 질문 단계로 들어갔다
이 모든 변화는 한국에 직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확장억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신뢰의 질은 과거와 다르다. 위기 시 미국이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여기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전술핵 운용 교리의 진화, 핵추진 잠수함 개발까지 더해지면서 한반도는 억지의 밀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공간이 되고 있다.
미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 논의의 귀환
이 지점에서 한국이 미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거나 자체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급진적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전략 변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에 가깝다. 미국이 동맹에게 더 많은 억지 부담을 요구한다면, 동맹은 그 수단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핵무장에 의한 자체 억지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억지의 신뢰 문제다.
선택의 시간: 관리되는 동맹인가, 자율적 억지 국가인가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존의 확장억제 프레임 안에서 불확실성을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자체 핵무장으로 대표되는 자율 억지 능력을 단계적으로 확보하는 길을 모색할 것인가. 이 선택은 외교 수사가 아니라, 군사·산업·재정·외교를 모두 포함하는 국가 전략의 문제다.
한국은 핵무장에 의한 독자 억지 설계국으로 진화한다
미국은 후퇴하지 않는다. 다만 이동하고 있다. 서반구로, 본토로, 관리 가능한 전장으로. 이 이동은 동맹에게 공백이 아니라 책임의 이전을 의미한다. 한국에게 남은 선택은 많지 않다. 변화에 맞춰 억지를 재설계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 이후에 대응할 것인가. 역사는 늘 뒤늦은 대응에 더 큰 비용을 청구해 왔다.
지금의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전략 변화 속에서 방어 받는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억지를 설계하는 국가로 진화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내려졌다. 동맹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는 예전과 달라진 만큼 한국으로서는 자체 핵무장을 중심으로 한 독자 억지 설계국으로의 진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