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한중정상회담의 엇갈린 신호… “함께 다자주의 지키자” vs “동맹 범위 제한하라”
中, 가치 동맹 아닌 ‘전략적 계산’ 대상 인식… 경제 유인은 ‘장기적 제약 장치’일 뿐
[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시진핑의 ‘올바른 선택’ 강요, 韓 향한 달콤한 ‘독이 든 성배’인가
이미지 확대보기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월5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대통령실
같은 회담, 다른 신호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둘러싼 메시지는 단일하지 않았다. 공식 발표와 공개 발언에서는 협력과 안정, 경제 교류의 확대가 강조됐지만, 그 이면에는 미중 패권 경쟁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의 규칙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었지만, 그 성격과 방향은 분명히 달랐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을 향해 던진 핵심 표현은 “올바른 전략적 선택”이었다. 세계가 백 년 만의 격변기를 맞고 있고 보호무역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한국 같은 세계화의 수혜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회담의 결과를 설명하는 쪽에서는 무역과 기술, 환경과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실질적 협력 합의와 지역 안정에 대한 공동 책임이 강조됐다.
이 두 메시지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능이 다르다. 하나는 선택을 요구하는 압박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유인의 언어다. 이 두 층위가 동시에 작동할 때, 중국의 대한국 전략은 비로소 완성된 형태를 띤다.
"올바른 전략적 선택"의 실제 의미
“올바른 전략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외교적 수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영향권 질서의 언어에 가깝다. 세계는 격동하고 있고 보호무역이 확산되고 있으므로, 중국과 한국은 함께 다자주의를 지켜야 하며 그 선택은 역사적으로도 옳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누구를 상대로 함께하느냐’에 있다.
보호무역과 무역전쟁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하다. 한국에게 요구되는 선택은 동맹을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동맹이 작동하는 범위를 관리하고 제한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중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완전한 진영 이동이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도록 조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 요구는 대만 문제, 첨단기술과 공급망, 한미일 협력의 성격과 범위라는 구체적인 사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올바른 전략적 선택”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어디까지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한계 설정 요구다.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강대국의 외교는 규범의 언어보다는 비용 계산의 언어에 가까워진다. 한쪽이 힘과 속도를 중시할수록, 다른 한쪽은 그 틈을 이용해 상대의 동맹을 제약하려 한다. 중국의 대한국 압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중국은 한국을 가치 동맹의 상징으로 보지 않는다. 전략적 계산의 대상으로 본다. 미국의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을 낮추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깊이 얽힌 파트너로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그래서 압박은 군사적 형태보다는 경제와 규범, 서사와 여론을 통해 가해진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 질서는 완충지대를 둘러싼 경쟁의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강대국은 완충지대를 원하지만, 한국은 그 완충지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한국의 발언 하나, 협력 분야 하나가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다. 중립적 표현처럼 보이는 문장 하나도 주변 강대국의 계산 속에서는 분명한 신호로 해석된다.
북한 변수와 중국의 계산
북한 변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안정의 중요한 당사자이지만, 동시에 미중 경쟁 속에서 북한은 활용 가능한 전략적 지렛대이기도 하다. 필요할 때는 긴장 완화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현상 유지로 물러설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자동적으로 전제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중국의 접근은 문제 해결보다는 관리에 가깝고, 북한 문제 역시 비핵화라는 단일 목표보다는 미중 경쟁 속 전략적 균형이라는 틀 안에서 다뤄진다. 이 점은 한국이 대북 전략을 설계할 때 중국 변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독자적 억지와 외교의 작동성을 강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중국이 압박과 동시에 경제 협력 강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는 선의의 제스처라기보다 구조를 만드는 수단에 가깝다. 경제적 결합은 단기적인 성과보다 장기적인 제약을 만들어낸다. 중국이 제시하는 협력의 영역은 선택적으로 열리고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첨단 분야 협력, 시장 접근, 문화와 콘텐츠 교류, 대규모 경제사절단 동행은 모두 한국의 산업과 이해관계를 중국의 프레임 안에 묶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전략의 핵심은 분리가 아니라 결합이다. 결합이 깊어질수록 한국의 외교·안보 결정은 산업계와 시장의 비용 계산을 먼저 거치게 된다. 그 순간 전략 판단은 자율성을 잃고 리스크 관리의 문제로 축소된다. 중국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구조적 함의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동맹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동맹만으로 안전이 자동 보장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단절하는 선택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한국의 과제는 선택의 강요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따르는 비용을 관리할 수 있는 국가로 진화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와 안보, 경제 전략이 서로 분리된 채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대응 전략: 현실주의적 설계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동맹을 신뢰하되 자동화된 동맹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확장억지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여야 하며, 위기 시 의사결정과 억지 수단의 연계, 공동 운용의 메커니즘이 제도와 훈련을 통해 고정돼야 한다. 그래야 외부의 압박이 한국의 실제 행동 변화를 강요하기 어려워진다.
동시에 한국은 선택지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조건부 자강 능력을 축적해야 한다. 이는 즉각적인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계산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재래식 억지와 방어, 지휘통제의 생존성,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포괄하는 통합 억지는 동맹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맹을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한미일 협력 역시 정치적 구호에 머물러서는 의미가 없다. 정보와 경보, 해양과 방어 영역에서의 실질적 결합이 이루어질수록 외부의 선택 압박은 힘을 잃는다. 동시에 이 협력의 목적이 봉쇄가 아니라 안정과 억지라는 점을 일관되게 관리하는 전략적 메시지가 필요하다.
경제 협력 역시 같은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협력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구조적 취약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영역은 다변화하고, 첨단기술 협력은 허용과 제한의 경계를 명확히 하며, 문화와 소비재, 서비스 교류는 관계의 완충재로 활용하되 언제든 정치화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관리해야 한다.
중국은 해결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변수로 인식돼야 한다. 북한 문제를 포함해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자동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국의 선택과 무관하게 한국의 억지와 외교가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결합 위기의 시대와 한국의 선택
앞으로 한국이 마주할 위기는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결합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대만 유사시의 긴장, 북한의 도발, 공급망과 기술 통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에서 중립 선언은 방패가 되지 못한다. 억지의 신뢰성과 동맹의 구조화, 경제 취약성 관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국가 전략만이 한국을 지켜준다. 이 체계가 없으면 한국은 사안별로 끌려다니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체계가 있으면 거래는 하되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올바른 전략적 선택"에 대한 한국의 답
시진핑의 “올바른 전략적 선택”은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의 행동 반경을 제한하려는 전략적 요구다. 그리고 그 요구와 함께 제시된 경제 협력은 우호의 표시이자 동시에 제약의 장치다. 이에 대한 한국의 답은 분명해야 한다.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스스로의 억지와 협상력을 갖춘 국가로 진화해야 하고, 경제 협력을 확대하되 취약성을 분해해 전략적 자율성을 지켜야 하며, 한반도와 대만, 공급망과 기술 통제가 결합하는 위기에 대비한 통합 국가전략을 완성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올바른 선택”이라는 외부의 요구는 한국을 규정하지 못한다. 한국이 스스로의 선택을 규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