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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인도·태평양은 왜 산업 공동체가 필요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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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인도·태평양은 왜 산업 공동체가 필요해졌는가

생산 능력 경쟁으로 이동한 미중 패권 경쟁과 동아시아의 전략적 선택
美 해군은 '재래식 잠수함'으로 인도-태평양 전력 강화 추진하고 있다. 고속 공격 잠수함 USS 미네소타(SSN-783)가 2025년 3월 16일 목격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美 해군은 '재래식 잠수함'으로 인도-태평양 전력 강화 추진하고 있다. 고속 공격 잠수함 USS 미네소타(SSN-783)가 2025년 3월 16일 목격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내셔널인터레스트는 최근 미중 패권 경쟁과 관련해 매우 주목할 만한 아티클을 실었다. 왜 '인도·태평양에는 산업 공동체가 필요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제목은 단순한 정책 제안이나 기술적 보완책을 뜻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도·태평양을 규정해 온 안보 중심 담론과 공급망 관리 프레임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선언하는 문제 제기로 읽히는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규칙 기반 질서, 회복력 있는 공급망이라는 익숙한 표현 대신, 이 글은 산업 공동체라는 보다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 제목이 갖는 중요성은 분명하다. 인도·태평양의 미래는 더 이상 외교 성명이나 안보 회의, 관세와 수출 통제만으로 관리될 수 없으며, 누가 무엇을 만들고 어떤 생산 능력을 동맹 차원에서 공유하느냐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이 글은 미중 패권 경쟁의 본질을 군사력이나 기술 격차가 아니라 생산 능력과 산업 동원력의 경쟁으로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관세는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지만 승부를 가르지는 못하며, 진정한 억지력은 공장과 설비,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산업 구조에서 나온다는 문제의식이 제목 자체에 응축돼 있다.

글로벌이코노믹이 지금 하는 이 분석은 바로 이 같은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중국이 이미 무역과 제조를 통해 경제적 억지력을 구축한 현실, 관세와 통제가 갖는 구조적 한계, 그리고 인도·태평양 협력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이 아티클의 논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나아가 이러한 논의가 미중 패권 경쟁을 축으로 한 세계 질서의 변화와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살펴본다.

중국은 어떻게 무역과 생산을 억지력으로 만들었는가


중국은 이미 무역을 통해 억지력을 구축한 국가다. 이 억지력은 군사력의 과시나 핵무기와 같은 전통적 수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 최대 제조국이라는 지위, 그리고 그 지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중국은 평시에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통해 가격과 공급 구조를 통제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특정 품목의 수출 제한과 공급 차단을 통해 상대국의 정책 선택지를 줄이는 능력을 확보했다. 이 힘은 조용히 작동하지만 지속적이며, 단기 충격보다 장기 제약을 통해 상대를 압박한다.

중국의 경제적 억지력은 단순히 값싼 제품을 많이 생산하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핵심은 특정 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후공정, 희토류, 배터리 소재, 태양광, 조선과 같은 분야에서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 지점을 장악해 왔다. 이는 곧 분쟁이나 위기 상황에서 군사적 충돌 없이도 상대국에 실질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했다는 뜻이다. 무역과 생산이 외교와 안보의 연장선으로 기능하는 구조가 이미 완성된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미국과 동맹국들이 사용하는 관세와 수출 통제는 구조적으로 방어적이다. 관세는 가격을 높여 단기적 부담을 줄 수는 있지만, 상대의 생산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기술 통제 역시 일정 기간 격차를 벌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체 기술 개발과 우회 경로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수단들은 위기를 지연시키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경쟁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아티클은 관세를 전략의 본체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규정한다.

이 지점에서 패권 경쟁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미중 경쟁은 더 이상 누가 더 많은 무기를 보유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더 빨리 생산을 전환할 수 있는가, 누가 위기 속에서도 제조를 지속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생산 능력을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동맹 차원에서 결집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경쟁의 무대는 전장이 아니라 공장이며, 승패는 전투가 아니라 공급과 결핍의 형태로 드러난다는 얘기다.

공급망 동맹의 한계와 산업 공동체라는 전환점

이 같은 문제의식은 지금까지 인도·태평양 협력 구조가 안고 있는 한계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이 지역의 협력은 오랫동안 안보 대화와 군사 기술, 공급망 안정이라는 틀 안에서 전개돼 왔다. 일정한 성과는 있었지만, 이 협력 구조는 생산 능력을 공유하지 않는다. 각국의 설비는 분산돼 있고, 위기 시 이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계는 부재한 상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 공동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산업 공동체란 단순한 분업이나 무역 협력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핵심 산업의 생산 능력을 공동으로 설계하고, 위기 시 자동으로 작동하는 동원 체계를 갖춘 구조를 의미한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에너지와 같은 전략 산업에서 어느 나라가 무엇을 생산하고, 부족할 때 어떻게 보완하며,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가 사전에 합의된 상태를 말한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동맹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동맹은 정치적 약속과 군사적 공조를 중심으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산업 공동체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다. 설비 투자, 기술 표준, 인력 이동, 생산 전환 계획이 실제로 맞물려야만 성립한다. 전쟁이 나면 함께 싸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함께 만들 수 있는가, 함께 고칠 수 있는가, 함께 보급할 수 있는가다.

이 아티클이 지적하듯 인도·태평양이 이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지역 전략은 결국 방어적 관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생산을 무기화한 상태에서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동맹은 여전히 관세와 통제라는 임시방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 경쟁에서 구조적 열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이 논의가 동아시아에 갖는 함의는 특히 무겁게 다가온다.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지정학적 전초기지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제 이 지역은 생산과 제조의 핵심 노드로 재정의되고 있다. 대만 해협, 한반도,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 역시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산업 역량을 둘러싼 경쟁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대만은 이 구조에서 결코 주변부가 아니다. 이들 국가는 인도·태평양 산업 공동체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상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미국의 시장으로 남을 것인가, 중국의 생산 네트워크에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동맹 차원의 생산 능력을 공동 설계하는 주체로 참여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선택이 요구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 질문은 더욱 직접적이다. 한국은 세계적 제조 역량을 보유한 국가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산업 공동체로의 전환은 기회이자 부담이다. 생산 능력을 공유한다는 것은 주권의 일부를 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업 역량을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패권 경쟁의 충격을 가장 먼저 받는 위치에 놓일 가능성도 크다.

이 아티클이 던지는 종합적 평가는 분명하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지금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시장의 효율성과 상호의존만으로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산업은 더 이상 경제 정책의 부속물이 아니라 주권 그 자체이며 억지력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공장을 잃은 국가는 선택지를 잃는다. 생산을 공유하지 않는 동맹은 위기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인도·태평양이 산업 공동체로 진화하지 못한다면 이 지역의 전략은 결국 시간 벌기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생산 능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동맹을 구축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중국을 억지하는 수단을 넘어 새로운 질서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패권 경쟁의 승부는 외교 무대나 회의실에서 나지 않는다. 그것은 공장에서 갈린다. 인도·태평양의 미래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