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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협력은 선언됐지만, 질서는 공유되지 않은 한일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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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협력은 선언됐지만, 질서는 공유되지 않은 한일 정상회담

이재명과 다카이치의 14일 한일 정상회담이 확인시킨 같은 언어·다른 전략의 경계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념촬영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념촬영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나라에서 1월14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간 한일 정상회담은 겉으로 보면 성공적인 회담에 가깝다. 양국 정상은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고, 경제·기술 분야에서의 실용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북한 문제와 역내 안정에 대한 공조 의지도 재차 강조했다. 공동성명 문구만 놓고 보면 이견은 크지 않고, 갈등은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회담의 의미는 합의된 문장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무엇이 말해지지 않았는지, 어떤 전제가 공유되지 않았는지에 있다. 이번 회담은 한일 관계가 더 이상 협력의 필요성을 놓고 다투는 단계가 아니라, 그 협력이 어떤 세계를 전제로 작동하는지를 두고 엇갈리고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지금의 한일 협력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질서 인식 위에 서 있다. 이 같은 불일치는 회담의 성패를 좌우하지는 않지만, 위기의 순간 협력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

자동 억지를 전제로 한 협력과, 자동 억지 이후를 상정한 협력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 변수는 동맹의 자동성에 대한 인식 차이일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한미동맹의 자동 개입 가능성을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다. 위기 시 미국이 개입하고, 그 개입이 한미일 협력으로 연동된다는 가정이 한국의 전략 시간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제 위에서 한일 협력은 억지를 보완하는 수단이다. 있으면 더 안정적이지만, 없다고 해서 즉시 붕괴되는 구조는 아니다.

반면 일본의 전략 시간표는 이미 다른 단계로 이동해 있다. 일본은 미일동맹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개입의 시점과 범위가 조건부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사고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자국이 먼저 판단하고 움직여야 할 상황까지 상정한다. 이 인식 위에서 한일 협력은 선택적 보완이 아니라, 동맹이 흔들릴 경우를 대비한 필수적 안전장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이 같은 차이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협력의 속도, 범위, 표현의 수위에서 미묘한 온도 차로 나타났다. 한국은 관리와 조율의 언어를 사용했고, 일본은 방향성과 지속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는 외교적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라, 동맹 붕괴를 상정하는 시점이 서로 다르다는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중국을 둘러싼 전략 공간의 비대칭


한일 간 가장 깊은 균열은 중국을 바라보는 전략적 시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게 중국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제적 의존, 외교적 조율, 안보적 관리가 동시에 요구되는 대상이며, 전면적 충돌은 회피해야 할 시나리오인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한일 협력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안정성을 유지하는 완충 장치로 설계되어야 한다.

일본에게 중국은 이미 구조적 경쟁자다. 해양 통제, 대만 문제, 공급망과 기술 패권까지 중국은 장기적으로 억제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이 같은 인식 속에서 한일 협력은 중국 견제의 전선 일부로 기능해야 한다고 일본은 보고 있다. 협력은 안정 장치가 아니라 전략적 압박 수단인 것이다.
이번 회담의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직접 겨냥한 표현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합의의 결과이자, 합의의 한계다.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했고, 일본은 그 모호성 자체를 불충분하다고 인식한다. 이 같은 차이는 평상시에는 관리 가능하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신뢰의 균열로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공급망 협력에 담긴 서로 다른 기대


이번 회담에서 강조된 전략적 공급망 협력 역시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 표면적으로는 핵심 자원과 기술 공급망의 안정화라는 공동 목표를 공유한다. 그러나 문제는 양국이 이 협력을 통해 도달하려는 목적지가 다르다는 데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공급망 협력을 리스크 분산과 관리의 수단으로 본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되, 충돌을 전제로 한 재편은 경계한다. 반면 일본은 공급망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해 중국과의 구조적 분리를 가속하는 수단으로 인식한다. 같은 협력이라도 한쪽은 완충을, 다른 한쪽은 분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단기간에 표면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사안이 위기로 비화될 경우, 협력의 방향을 둘러싼 이견은 빠르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공급망 협력이 안정 장치로 작동할 것인지, 전략적 압박 수단으로 전환될 것인지는 그때 가서 충돌한다.

북한과 과거사가 다시 전략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


북한 문제에서도 인식 차이는 분명하다. 한국에게 북한은 실존적 위협이자 관리 대상이다. 억지는 필수지만, 국면 전환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일본에게 북한은 지속적 외부 위협이며, 안보 결속과 협력 명분을 고정적으로 제공하는 변수다.

이 같은 차이는 위협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한국은 위협을 유동적으로 관리하려 하고, 일본은 위협을 고정시켜 협력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정보 공유와 대응 수위, 확전 관리에서 반복적인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사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다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안정된 질서에서는 과거사는 관리 가능한 갈등이다. 그러나 동맹의 자동성이 흔들릴수록, 신뢰의 작은 균열은 전략적 불안으로 증폭되기 마련이다. 한국에게 과거사는 여전히 현재형 변수이고, 일본에게는 이미 정리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간 감각의 차이는 질서가 불안정해질수록 더 큰 불신의 촉매로 작동한다.

협력의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의 한계 인식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실패한 회담이 아니다. 그러나 완전한 전략적 합치에 도달한 회담도 아니다. 양국은 협력의 필요성을 재확인했지만, 그 협력이 작동하지 않을 순간에 대한 공통 인식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국은 동맹을 보완하는 협력을 원하고, 일본은 동맹 이후를 대비하는 협력을 원한다. 한국은 속도를 조절하려 하고, 일본은 방향을 고정하려 한다. 이 차이는 외교적 수사로 봉합될 수 없다.

결국 이번 회담의 성과는 합의의 양이 아니라, 서로의 전략적 한계를 어디까지 인정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았는지, 기대를 과잉 설정하지 않았는지, 오해를 관리했는지가 핵심인 것이다.

같은 테이블에서 다른 지도를 펼쳤다


동맹 이후의 시대에 협력은 더 중요해졌지만, 동시에 더 어려워졌다. 자동 억지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협력은 신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신을 관리하는 기술이 되어 버렸다.

한일 관계의 불안정성은 감정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전략 지도 위에 같은 회담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협력의 선언이 아니라, 그 협력이 작동하지 않을 순간을 상상하는 전략적 정직함일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