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규모를 법적으로 제한해온 마지막 군비통제 협정이 이번 주 종료되면서 핵무기 통제 없는 시대가 시작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 핵보유국 간 상호 검증과 제한 장치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핵군비 경쟁 국면이 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가 운용 중인 핵무기 수를 제한해온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 스타트)이 4일 자정을 기점으로 효력을 잃는다.
이 협정은 양국이 배치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략폭격기 탑재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기로 제한해왔다. 협정 종료로 핵무기 숫자를 법적으로 묶는 장치는 사라지게 된다.
제임스 액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핵정책프로그램 공동소장은 “우리는 이제 새로운 군비 경쟁의 문턱에 서 있다”며 “내 생애 동안 핵무기 수를 제한하는 또 다른 조약이 등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협정 종료로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시작한 미·소 핵군비 통제의 흐름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1991년 체결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I)은 미국과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간 핵무기 감축의 틀을 마련했고 2010년 서명된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은 이를 계승해 2021년까지 연장됐다.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은 양국이 서로를 여러 차례 파괴하고도 남을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허용했지만 핵무기 숫자와 배치 현황을 상호 점검하는 검증 체계를 통해 오판과 위기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을 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협정 종료 이후에도 양측이 자발적으로 기존 제한을 준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를 “좋은 생각”이라고 평가했지만 공식적인 수용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핵군비 통제 합의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다만 신전략무기감축협정 관련 논의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러시아는 2023년 협정 이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고 선언했고 핵실험 재개 가능성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와 중국에 대응해 핵실험 재개를 지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핵군비 통제 붕괴가 미·러 관계 전반의 악화를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 파벨 포드비그 러시아 핵전력 프로젝트 소장은 “조약 부재는 미·러 관계 전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조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서는 자발적 연장이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로즈 고템뮐러 전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 차관은 푸틴 대통령의 자발적 연장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이라며 “양국이 핵탄두 증강 경쟁에 나설 경우 미국이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핵추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와 핵무장 수중 무인기 포세이돈 등 새로운 핵무기 체계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이들 무기는 현행 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여기에 극초음속 재래식 무기 개발도 진행 중이다.
중국 변수도 핵군비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최근 수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3자 핵군비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과의 핵전력 격차가 줄어들기 전까지 군비통제 논의에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의 핵심 가치는 단순한 숫자 제한이 아니라 상호 검증과 투명성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사무엘 차랩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수천 건의 통보와 자료 교환, 현장 검증이 핵위기 가능성을 낮췄다”며 “이 체계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