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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5배 쏟아낸 中 휴머노이드의 '역설'...韓 부품사는 납품처 잃고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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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5배 쏟아낸 中 휴머노이드의 '역설'...韓 부품사는 납품처 잃고 '비상’

휴머노이드 1년 새 5배 폭증에도 실수요 ‘제로’… 中 정부가 최대 고객
전기차 과잉생산의 그늘, 휴머노이드 산업이 되밟나… 韓 부품사 ‘비상’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세계 최대 규모의 공급망을 갖추고도 정부 이외의 실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세계 최대 규모의 공급망을 갖추고도 정부 이외의 실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중국이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공급량을 1년 새 5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세계 최대 공급망을 장악했으나, 최대 구매자가 민간 기업이 아닌 정부에 그치면서 실수요 없는 과잉 공급이 산업 버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더 이코노미스트의 지난 19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세계 최대 규모의 공급망을 갖추고도 정부 이외의 실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 매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공급망의 팽창 속도와 실수요 창출의 속도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태양광 산업에서 반복한 과잉 공급의 전철을 닮아가고 있다.

양쯔강 삼각주, 세계 로봇 공급망의 심장부를 장악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의 추산과 기업 공시를 종합하면, 지난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납품 대수는 1만4500대를 웃돌았다. 2024년 3000대에서 1년 새 거의 5배로 불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중국 아기봇(Agibot)과 유니트리(Unitree) 두 곳이 1만 대 이상을 납품하며 물량을 쓸어 담았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같은 기간 옵티머스(Optimus) 로봇을 150대 출하한 것과 대비된다.

이 같은 공급 폭발의 진원지는 상하이에서 장쑤성 남부, 저장성 북부로 이어지는 양쯔강 삼각주(長三角)다.

장쑤성 창저우시 우진구의 업계 관계자들은 "휴머노이드 한 대를 조립하는 데 필요한 부품의 약 90%를 이 지역에서 충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로봇 팔 제조사 리얼맨은 생산 능력을 4배로 늘렸고, 감속기 업체 파인 모션 테크놀로지는 시장 점유율을 25%까지 높이며 해외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2025년 중국 산업용 로봇 수출은 48.7% 늘어나 처음으로 수입을 앞질렀다.

최대 고객은 정부, 로봇은 '쇼피스'로 전락


팽창하는 공급과 달리, 로봇을 실제 업무에 쓰는 기업은 극소수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휴머노이드의 최대 구매처는 민간 기업이 아니라 중국 지방정부였다"고 전한다.

상하이에서는 아기봇이 정부 행사의 단골 전시물로 등장하고 있으며, 로봇 대여 서비스 '봇쉐어'는 방문객에게 손을 흔드는 홍보 용도로 로봇을 공급하고 있다.

현장에 투입된 로봇들도 주로 상자를 나르는 단순 작업에 그친다. 인간 대비 효율은 30~40% 수준이다. 싱가포르 로봇 손 제조사 샤르파의 알리시아 베네치아니는 "실제 업무 환경에서 데이터를 쌓는 것이 이 산업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인공지능 아카데미의 왕중위안 역시 "로봇이 쓸모 있어지기 전에 너무 광범위하게 퍼진다면 휴머노이드 버블이 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기차 과잉생산의 데자뷔… 한국 부품사엔 양날의 검


중국 휴머노이드의 폭발적 공급 확대는 한국 산업계에 복잡한 파장을 던진다. LG전자와 미래에셋이 아기봇에 투자하는 등 접점은 넓어지고 있으나, 산업연구원의 진단은 따갑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로봇·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한국이 R&D 역량에서 근소하게 앞서지만, 부품 조달과 대량 생산 능력에서는 중국이 모두 앞선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CES 2026에 출전한 휴머노이드 기업 34곳 중 20곳이 중국 기업인 반면, 한국은 5곳에 그쳤다. 전기차 과잉 생산이 국내 부품사의 수익성을 짓누른 것처럼, 중국의 공급망 내재화가 한국 정밀 부품사의 납품처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정부의 보조금이 사라지면 수천 곳의 협력 부품사가 존립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초격차 역량' 확보가 관건… 공급자 넘어 소프트웨어 승부수


로봇 산업은 대규모 현장 배치 없이는 기술이 성숙하지 않고, 기술이 성숙하지 않으면 기업이 도입하지 않는 딜레마가 깊다. 중국은 국가 자본으로 이 고리를 강제로 열었지만, 정작 이를 완성할 민간 수요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한국이 이 간극에서 전략적 기회를 포착하려면 단순한 부품 공급자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소프트웨어·특수 공정 분야에서 독자적인 역량을 쌓는 속도가 중국의 공급망 내재화 속도를 압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이 장악한 하드웨어 물량 공세에 맞서, 한국만의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단이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