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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버블’ 공포 속 솟구친 ‘배당귀족’... 서학개미 ‘성장주 편향’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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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버블’ 공포 속 솟구친 ‘배당귀족’... 서학개미 ‘성장주 편향’ 경고등

AI 실망 매물과 중동발 유가 급등세가 맞물린 ‘안전 자산’ 대이동
연준 긴축 장기화 조짐 속 ‘현금 살포’ 기업이 하락장 최후의 보루
코카콜라(KO)는 최근 분기 배당금을 주당 53센트로 4% 상향 조정하며 64년 연속 증액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코카콜라(KO)는 최근 분기 배당금을 주당 53센트로 4% 상향 조정하며 64년 연속 증액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진=연합뉴스
인공지능(AI) 황금기에 가려졌던 ‘배당의 가치’가 증시 변동성 확대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엔비디아 등 대형 기술주들이 고점 논란과 고용 불안 여파로 주춤하는 사이, 25년 이상 쉬지 않고 배당을 늘려온 이른바 ‘배당귀족주(Dividend Aristocrats)’가 시장 수익률의 10배를 웃도는 기염을 토하며 투자 지형도를 재편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지난 2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올해 들어 '프로셰어즈 S&P 500 배당귀족 ETF(NOBL)'가 10% 상승하며, 1% 미만의 수익률에 그친 S&P 500 지수 대비 압도적인 성과를 기록 중이라고 전했다.

해당 보도와 금융 데이터 분석업체 팩트셋(FactSet)의 통계를 종합 분석한 결과, 시장의 자금이 ‘장밋빛 미래’에서 ‘당장 손에 잡히는 현금’으로 이동하고 있음이 수치로 증명됐다.

‘AI 고용 쇼크’가 깨운 기술주 환상… 64년 버틴 코카콜라의 ‘귀환’


이번 배당주 강세의 이면에는 혁신 기술에 대한 공포와 지정학적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주말 사이 발생한 미·이스라엘 연합군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국제 유가가 요동치자, 투자자들은 즉각 방어주로 기수를 돌렸다.

특히 디지털 결제 기업 블록(Block)이 AI 도입에 따른 ‘4000명 감원’을 발표하자, 기술주가 일자리를 뺏고 수익성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이른바 ‘AI 역설’이 시장을 강타했다.

반면 전통의 내수 강자들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코카콜라(KO)는 최근 분기 배당금을 주당 53센트로 4% 상향 조정하며 64년 연속 증액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워런 버핏의 후계자 그레그 아벨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8일 주주 서한에서 “코카콜라는 우리가 잘 이해하고 경영진을 신뢰하는 사업”이라며 수십 년간 가치가 커질 것이라고 치켜세운 점도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코카콜라는 올해 들어서만 15% 상승하며 기술주 부진의 대안으로 우뚝 섰다.

데이터센터 수요 업은 유틸리티… 에너지·리츠로 번지는 ‘현금 확보’ 전쟁


전통적인 배당주뿐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에 올라탄 종목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신재생 에너지 기업 넥스트에라 에너지(NEE)는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전력 수요 급증을 발판 삼아 배당금을 10% 전격 인상했다.

존 케첨 CEO는 지난달 투자자 설명회에서 오는 2035년까지 최대 30기가와트(GW) 규모의 발전 시설 확충 계획을 밝히며 유틸리티 업종을 ‘성장형 배당주’로 탈바꿈시켰다.

국내 증권가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에너지와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 업종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41년 연속 배당을 늘린 엑슨모빌(XOM)이나 매월 배당금을 지급하는 리얼티 인컴(O)이 대표적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고금리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투자자들이 미래의 꿈보다는 현재의 현금 흐름(Cash Flow)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고 있다”며 “특히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한 리츠와 에너지주는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매력이 높다”고 분석했다.

‘성장주 쏠림’ 서학개미에 던지는 시사점


미국 증시의 이번 변화는 나스닥 중심의 공격적 투자에 몰두해온 국내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S&P 500의 평균 배당 수익률인 1.1%를 크게 웃도는 2.5~3.0%대 배당 귀족주들이 하락장에서 강력한 하방 경직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단순한 고배당보다는 ‘배당 성장성’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릴수록 부채 비율이 낮고 현금 보유량이 많은 배당 귀족주들이 기술주 대비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리츠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 추이를, 에너지주는 탄소 중립 정책에 따른 비용 발생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배당 귀족주의 약진은 시장이 가장 보수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신호다. 투자자들은 이제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기업이 실제로 주주의 지갑에 넣어주는 현금의 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