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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 대란] 스마트폰 가격 20% 급등에 CPU '바꿔치기'…반도체 공급 대란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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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 대란] 스마트폰 가격 20% 급등에 CPU '바꿔치기'…반도체 공급 대란의 민낯

메모리 부족 직격탄 맞은 중저가폰…샤오미·오포·비보 일제히 '가격 폭탄'
中 브랜드 CPU 사기 적발·IDC "출하량 13% 급감" 경고…삼성·애플로 시장 재편
여러 소문이 돌던 출시 색상 중 하나인 포코 X8 프로 맥스. 사진=샤오미이미지 확대보기
여러 소문이 돌던 출시 색상 중 하나인 포코 X8 프로 맥스. 사진=샤오미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격, 성능, 브랜드가 꼽힌다. 그런데 지금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공급 대란이 IT 소비재 시장 전반을 강타하면서,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값을 내고 더 낮은 성능의 제품을 구입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제조사는 탑재된 칩 자체를 속이는 사기 행각까지 벌이다 적발됐다. '가성비의 천국'으로 불리던 중저가 스마트폰·노트북 시장에 경보가 울리고 있다.

가격만 올랐다…'포코 X8 프로 맥스'가 보여준 민낯


샤오미의 중고가 라인업 '포코(Poco)'가 새 플래그십 모델 출시를 앞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IT 전문 매체 노트북체크(Notebookcheck)6(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오는 17일 세계 시장에 출시될 '포코 X8 프로 맥스'의 사전 벤치마크 결과가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해당 모델에는 미디어텍의 디멘시티(Dimensity) 9500s 칩과 12GB (RAM)이 탑재됐다. 성능 측정 플랫폼 긱벤치(Geekbench) 테스트에서 싱글코어 2,673, 멀티코어 8,471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퀄컴 스냅드래곤 8 Gen 5를 탑재한 경쟁 모델 '원플러스(OnePlus) 15R'과 비교해 10% 이상 낮은 수치다. 반면 시작가는 529유로(91만 원)로 책정됐다. 전작 대비 성능은 제자리걸음이지만, 가격표는 상향 조정된 것이다.

이 같은 '가격 역설'의 배경에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이 자리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Nikkei, 이하 니케이)이 최근 보도한 시장 분석에 따르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달 초를 기점으로 주력 모델의 출고가를 일제히 인상하기 시작했다. 샤오미 홍미(Redmi) K90iQOO 15 등 신모델의 가격은 전 세대 대비 100~600위안(21400~128800) 높아졌으며, 오포(OPPO)·비보(vivo)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니케이는 이 같은 인상 폭이 전년 대비 15~25% 수준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원가 구조 상 중저가 모델은 고가 플래그십보다 이익률이 낮아 메모리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가성비 신화'가 반도체 공급망 앞에서 균열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CPU를 바꿔치기했다"…중국 브랜드, 사기 행각 들통


가격 인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품 스펙 조작이다. 중국 저가 노트북 브랜드 '추위(CHUWI)'가 자사 '코어북(CoreBook) X' 모델에 최신 AMD 라이젠(Ryzen) 5 7430U 프로세서를 탑재했다고 광고했으나, 실제로는 구형 모델인 라이젠 5 5500U가 탑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노트북체크의 심층 분석 결과에 따르면, 추위 측은 하드웨어 진단 도구인 CPU-ZHWiNFO64에서도 최신 칩으로 표시되도록 펌웨어(Firmware)를 조작한 정황이 확인됐다. 통상 이 두 소프트웨어는 전문가들이 부품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사용하는 신뢰도 높은 도구다. 그럼에도 이를 우회하도록 내부 코드를 손댔다는 점에서 단순 부품 착오가 아닌 의도된 기만행위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결정적 증거는 실리콘 칩에 각인된 고유 코드에서 나왔다. 노트북체크가 실제 노트북을 분해해 확인한 결과, 칩에 새겨진 OPN 코드 '100-000000375'는 명백히 라이젠 5 5500U를 가리키고 있었다. 추위 측은 현재 "내부 조사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공급망 통제력을 잃은 중소 제조사들이 재고 구형 칩을 이용해 수익성을 확보하려다 일어난 결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신 프로세서의 수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일부 브랜드들이 재고로 쌓인 구형 칩을 제품에 넣고, 이를 소프트웨어로 위장하는 편법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삼성·SK하이닉스 호재 속 한국 소비자 피해 현실은


역설적으로, 이번 메모리 공급 대란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단기적 수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 급증과 맞물려 D·낸드 가격 강세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61분기 범용 D램의 고정 거래 가격은 당초 예상치였던 55~60%를 크게 상회하여 전 분기 대비 90~95%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같은 공급자 측면의 호재가 소비자 시장에서는 독이 되고 있다. 국내 소비자 역시 중저가 스마트폰과 노트북 가격이 오르는 영향권 안에 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상승이 겹치면 수입 IT 기기의 국내 출시가가 추가로 오를 수 있다. 가계 IT 지출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IDC "출하량 13% 급감"…교체 주기 33개월로 늘어난다


시장 전망도 암울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는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2026년 내내 이어지고, 2027년까지 완전한 해소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 결과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당초 예상 대비 13% 감소해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iiMedia 리서치의 장이 수석 애널리스트는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신규 구매를 미루고 관망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기존 28개월에서 33개월로 약 5개월 연장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결국 자금력과 공급망 확보 능력을 갖춘 애플·화웨이·삼성전자·샤오미 등 상위 브랜드로의 시장 집중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애플은 이 공백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최신 M4 칩을 탑재한 저가형 아이패드 에어를 중국 시장에 출시한 데 이어, 조만간 내놓을 '아이폰 17e'는 중국 정부 보조금을 적용할 경우 3999위안(858900)까지 가격이 낮아질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로컬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애플의 점유율 확대 공간이 커지는 국면이다.

옴디아(Omdia)의 하이든 호우 수석 애널리스트는 "제조사들이 가격 인상 폭을 줄이기 위해 탑재 사양을 낮추는 전략을 계속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고에 적힌 사양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시장 환경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최신 칩' 광고 그대로 믿다간 낭패…소비자 스스로 무장해야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스스로 방어막을 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품 구매 전 독립 벤치마크 사이트에서 해당 칩의 실제 성능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저가 노트북·태블릿 시장에서는 CPU-Z 같은 진단 도구조차 우회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난 만큼, 제품 분해 리뷰 등 외부 검증 콘텐츠를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

공급망 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AI 인프라 확대로 메모리 수요가 서버 시장에 집중되는 한, 일반 소비자용 IT 기기에 공급될 메모리 물량은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싸움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것은 소비자다. '최신 모델'이라는 광고 문구보다 실제 탑재 부품의 세대와 성능 수치를 꼼꼼히 따지는 것이, 반도체 공급 대란 시대를 현명하게 버티는 최선의 방법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