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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프라 전쟁] HPE, 메모리 쇼크 속 어닝 서프라이즈… 주당 순이익 전망치 최대 2.50달러로 전격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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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프라 전쟁] HPE, 메모리 쇼크 속 어닝 서프라이즈… 주당 순이익 전망치 최대 2.50달러로 전격 상향

주니퍼 인수 효과에 네트워크 매출 151% 폭발, 체질 개선 속도 붙어
AI 서버 대기 물량 50억 달러 돌파 — 하반기 실적 전환 '청구서' 쌓인다
네리 CEO "DRAM·NAND 비용 2026년 내내 오른다… 시장 가격에 전가"
HPE 1분기 전체 매출은 93억 달러(약 13조 68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93억 3000만 달러)에 소폭 못 미쳤으나, 수익성 지표에서 시장 기대를 웃돌았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HPE 1분기 전체 매출은 93억 달러(약 13조 68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93억 3000만 달러)에 소폭 못 미쳤으나, 수익성 지표에서 시장 기대를 웃돌았다. 이미지=제미나이3
AI 서버를 사겠다는 기업 주문은 넘쳐나는데, HPE 서버 매출은 오히려 줄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주문을 받아놓고도 아직 납품을 못 한 물량이 50억 달러(73500억 원)어치나 쌓여 있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은 게 아니라, 팔았지만 아직 돈으로 잡히지 않은 것이다.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가 9(현지시각) 공개한 2026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은 월가의 예상을 꿰뚫었다. 조정 주당 순이익(EPS) 65센트로, 전문가 컨센서스(59센트)10%포인트 이상 상회했다. 주니퍼 네트웍스 인수 효과에 힘입은 네트워킹 부문의 약진이 핵심 동력이었다. 동시에 AI 서버의 핵심 부품인 메모리 반도체(DRAM·NAND)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HPE는 늘어나는 원가를 제품 가격에 어떻게, 얼마나 떠넘길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AI 호황이라고 해서 비용 압박까지 피해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주니퍼 인수 '한 방'에 네트워크 매출 151% 급등


HPE 1분기 전체 매출은 93억 달러(1368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933000만 달러)에 소폭 못 미쳤으나, 수익성 지표에서 시장 기대를 웃돌았다.

분기 실적의 일등 공신은 네트워킹이다. 지난해 7월 마무리된 주니퍼 네트웍스 인수가 본격 궤도에 오르며 네트워킹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1.5% 급증한 27억 달러(39700억 원)를 기록했다.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데이터센터 네트워킹이 382.6% 폭증했고, 라우팅 매출은 직전 연도의 100만 달러(14억 원)에서 78000만 달러(11400억 원)로 사실상 새로운 사업으로 재탄생했다. 캠퍼스·브랜치(42% 성장)와 보안(114% 성장)도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안토니오 네리 HPE 최고경영자(CEO)"네트워킹 분야에서 기록적 성과를 냈고, 모든 사업 영역에서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주문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네트워킹 도약을 단순한 인수합병 효과가 아닌, AI 인프라 구조 변화와의 맞물림으로 해석한다. AI 서버 클러스터가 대형화될수록 수만 개의 GPU를 연결하는 '네트워킹 병목' 해소가 투자 우선순위로 부상하고 있으며, HPE는 주니퍼의 PTX 시리즈 고성능 라우팅 기술을 내장한 통합 솔루션으로 이 시장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는 평가다.

메모리 비용, AI 서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세금'


수익성을 갉아먹는 복병은 메모리 반도체다. 네리 CEO는 이날 실적 발표에서 "DRAM·NAND 비용이 2026년 내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며, 이 중 상당 부분을 시장 가격에 반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HPE는 이미 지난해 11월 한 차례 제품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2026 회계연도 내에도 추가 인상 계획을 예고한 상태다.

이는 HPE만의 문제가 아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델 테크놀로지스, 슈퍼마이크로컴퓨터 등 경쟁사들도 동일한 원가 압박에 직면해 있다. AI 서버 한 대에 탑재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NAND 플래시 용량이 갈수록 늘어나는 구조에서, 메모리 가격 상승은 제조사 수익성을 직격하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됐다.

증권가에서는 HPE가 원가 상승분을 고객사에 전가할 수 있는 '가격 결정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지를 핵심 변수로 꼽는다. HPE가 이날 2026 회계연도 조정 EPS 전망치를 기존 2.25~2.45달러에서 2.30~2.50달러로 올려잡은 것은, "비용 상승 부담을 이미 가이던스에 흡수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월가 컨센서스는 2.34달러다.

AI 서버 대기 물량 50억 달러 돌파, 하반기 '수익 폭발'의 예고편


클라우드·AI 부문 전체 매출은 63억 달러(92700억 원)였고, 그 중 서버 단독 매출은 42억 달러(618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7% 줄었다. AI 투자 열기에도 서버 매출이 역성장한 배경은 누적 수주 잔액에 있다.

HPE 공시에 따르면 1분기 말 기준 AI 서버 수주 잔량은 50억 달러(73600억 원)를 돌파했다. 직전 분기(4분기)47억 달러(69200억 원)에서 석 달 만에 3억 달러 이상 불었다. 주목할 점은 이 수주 물량의 64%가 기업 및 '소버린 AI(Sovereign AI)' 정부 고객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 차원의 AI 인프라를 독자 구축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등의 정부 발주는 데이터센터 준비와 전력 공급망 구축까지 수반돼 주문에서 출하까지 상당한 리드타임이 발생한다.

네리 CEO"지난해 12월 예고한 대로, 올해 하반기에 AI 서버 매출 전환이 집중될 것"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HPE CFO 마리 마이어스도 "AI 서버 매출의 대부분이 하반기에 인식될 것이며, 상반기·하반기 비중은 대략 4654"라고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만들어낸 역설, "삼성·SK하이닉스 웃고, HPE는 울고"


HPE의 고민은 사실 거대한 산업 구조 재편의 단면이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지금 1990년대 이후 최대 호황기, 이른바 '슈퍼사이클'로 진입했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2026년 전 세계 DRAM 매출이 전년 대비 51%, NAND 매출이 45% 각각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1분기 서버 DRAM 계약 가격이 전 분기 대비 60% 이상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수혜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삼성전자는 20254분기 메모리 부문에서 영업이익 17조 원을 거뒀고,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이 56%에 육박했다. 양사는 현재 2~3년짜리 장기 공급 계약을 거부하고 분기 단위 계약만 체결하고 있다.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전략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현재 DRAM 재고는 2~3주치, NAND3~4주치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HPE 같은 하드웨어 제조사에게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이다. 메모리 가격이 오를수록 삼성·SK하이닉스의 수익은 불어나지만, HPE의 원가 부담은 정비례로 늘어난다. 업계 관계자들은 "AI 투자 붐이 메모리 수요를 폭발적으로 키우고, 그 수요가 다시 메모리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AI 서버 제조사들의 마진을 갉아먹는 순환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HPE는 이 구조적 딜레마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답은 세 가지 방향에서 모색된다. 첫째는 '가격 전가'. HPE는 이미 제품가 인상을 단행했고, 고객사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멈출 수 없는 구조인 만큼 일정 수준의 가격 전가는 가능하다. 실제로 가트너는 "AI 투자를 지속하려는 기업들은 비용이 올라도 구매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둘째는 '포트폴리오 고도화'. 주니퍼 인수를 통해 고마진 네트워킹 사업 비중을 높인 것이 대표적이다. 메모리 원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 서버 매출 의존도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마진이 두꺼운 소프트웨어·서비스·네트워킹 매출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전략이다. 셋째는 '대형 고객 우선 공급'이다. 마이크론이 소비자용 메모리 브랜드를 철수하고 기업 고객에 집중했듯, HPE도 정부·대기업 중심의 소버린 AI 수주에 집중함으로써 메모리 조달에서 우선순위를 확보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서버 제조사에서 AI 인프라 통합 기업으로


시장 분석가들은 이번 실적을 단순한 분기 초과 달성이 아닌, HPE의 사업 모델 전환을 입증하는 증거로 본다. 주니퍼 네트웍스와의 결합으로 HPE는 서버·스토리지 중심의 하드웨어 업체에서 네트워킹·AI·클라우드 서비스를 아우르는 통합 인프라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평가다. HPE는 네트워킹 부문 연간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60%대 초반에서 68~73%로 상향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삼성·SK하이닉스는 2028년 이후까지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설비투자를 신중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 흐름이 장기화될수록 HPE 같은 하드웨어 제조사에게는 가격 전가력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실적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AI 인프라 구축 경쟁이 '칩 확보 전쟁'에서 '네트워킹과 전력 효율 전쟁'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는 가운데, HPE가 새로 그린 포트폴리오가 그 변곡점에서 얼마나 빠르게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이날 시간 외 거래에서 HPE 주가는 약 2% 상승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