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채 38조 달러·연준 독립성 훼손…달러 지배력 붕괴 가속 이유
위안화·유로화·가상자산 다극화…원화·한국 채권시장 파장 전망
위안화·유로화·가상자산 다극화…원화·한국 채권시장 파장 전망
이미지 확대보기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을 오가고,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두 지표는 언뜻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신호다.
세계 달러 패권의 균열이다. 달러를 떠받치는 세 기둥 재정 건전성,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지정학적 안정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세계 최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기축통화 질서의 대전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IMF 전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흐름이 단순한 환율 변동이 아니라 향후 4~5년 안에 미국 금리 시장을 뒤흔들 구조적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Nikkei)은 21일(현지시각) 로고프 교수를 인터뷰하고, 급증하는 미 국채와 연준 독립성 훼손이 맞물리면서 달러 패권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그의 경고를 상세히 보도했다.
로고프 교수는 앞서 올해 1월 3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우려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상한 징후' 달러 떨어지는데 금리는 오른다
통상의 경제 논리라면 달러 약세는 금리 하락과 함께 온다. 경기가 부진하면 자금이 빠져나가고 달러 값도 내리지만, 그만큼 채권 가격은 오르고(금리는 하락)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그 공식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로고프 교수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데 금리는 오르는 현상을 특히 주목했다. 이는 외국 중앙은행들이 달러 자산을 처분하고 미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달러화는 지난해 10% 이상 가치가 하락해 50년 만에 최악의 출발을 기록했다. 이달 19일(현지시각) 기준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4.25%를 기록하고 있다.
로고프 교수는 "5년 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5~6%에 달할 것이고 그때 국가부채 규모는 훨씬 더 불어나 있을 것"이라며 "그 시점에 외부 충격이 덮친다면 미국은 훨씬 취약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연준 독립성 문제도 이 같은 이상 신호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올해 1월 법무부로부터 소환장을 받았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를 낮춰야 한다며 파월 의장을 공개적으로 압박해왔다.
파월 의장에 대한 법무부 수사는 연준 독립성을 둘러싼 우려를 키웠으며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장의 시선은 오는 5월 파월 의장 임기 종료 이후로 향하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금리 인하를 지속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파월 퇴임 이후 한층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중동발 변수까지 가세했다. 이번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다.
연준은 이번 발표문에서 "중동 상황의 전개가 미국 경제에 갖는 함의가 불확실하다"고 명시했는데, 지난 1월 발표문에는 없던 표현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공식 경계 신호로 격상시킨 것이다.
2015년이 정점이었다…위안화·유로화·가상자산의 '3각 공세’
로고프 교수의 경고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시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저서에서 달러 충격 시점을 5~10년으로 추산했으나, 최근 발언에서는 이를 4~5년으로 앞당겼다.
수치도 그의 판단을 뒷받침한다. IMF 집계에 따르면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올해 1분기 57.79%에서 2분기 56.32%로 낮아졌으며, 199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고프 교수와 동료 연구진은 달러의 영향력이 2015년 정점에 달한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달러의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는 단일하지 않다. 로고프 교수는 위안화, 유로화, 가상자산이 달러의 시장 몫을 나눠 가지는 '다극 통화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정 통화 하나가 달러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여러 통화가 각기 더 큰 몫을 차지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봤다.
중국 위안화에 대해서는 "중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되지 않더라도 아시아 통화로 부상하기에는 충분하다"며, 유럽이 한때 달러 블록의 중심이었다가 이탈했듯 현재 달러 블록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시아도 상당 부분 이탈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현재 위안화의 세계 외환보유액 비중은 2%를 갓 넘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 단기간 내 기축통화 지위 교체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로고프 교수는 "미국 여야 모두 부채를 공짜 점심처럼 여기고 있다"며 연방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액이 미국 국방 예산 전체를 이미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달러 시계가 빨라질수록…한국 채권·환율에도 파장
달러 패권 쇠락 시나리오는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국제금융센터(KCIF)는 올해 미국 재정적자가 이자 비용 증가 등으로 2조 달러(약 3010조 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며, 장기 국채는 시장 변동성과 대외 여건에 따라 수요가 다소 저조해질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3월 FOMC 동결로 한국 기준금리(2.50%)와 미국 기준금리 상단(3.75%)의 격차는 1.25%포인트를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시장에서는 이 금리차가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 압력을 당분간 지속시키는 배경이 될 것으로 분석한다.
업계에서는 로고프 교수가 경고하는 '4~5년 내 금리 충격'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달러 약세와 미 국채 금리 급등이 동반되는 국면에서 한국처럼 달러 채권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경제는 두 겹의 압박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화 약세와 외국인 자금 이탈이 맞물리는 상황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환율 급등 사태에서 예고편을 보여줬다.
달러의 왕좌가 흔들리는 속도는 이제 학계의 예측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로고프 교수는 달러가 '산꼭대기의 왕' 자리는 유지하겠지만 그 언덕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38조 달러 부채의 무게, 사법 압박에 흔들리는 연준, 중동의 포성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타들어가는 한, 달러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