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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하이닉스 최대 고객이 백악관 입성…HBM·자율주행 표준 설계권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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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하이닉스 최대 고객이 백악관 입성…HBM·자율주행 표준 설계권 쥔다

트럼프, AI 자문위에 저커버그·젠슨 황 전진 배치…머스크는 제외
빅테크 13인 PCAST 입성, 규제 완화 가속…엔스로픽 소송전이 보여준 민관 협력의 균열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미국 행정부의 공식 기술 정책 설계자로 잇달아 호출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패권을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타·엔비디아·오라클·구글 등 빅테크를 이끄는 경영자 13명을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위원회(PCAST)'에 전격 임명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미국 행정부의 공식 기술 정책 설계자로 잇달아 호출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패권을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타·엔비디아·오라클·구글 등 빅테크를 이끄는 경영자 13명을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위원회(PCAST)'에 전격 임명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미국 행정부의 공식 기술 정책 설계자로 잇달아 호출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패권을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타·엔비디아·오라클·구글 등 빅테크를 이끄는 경영자 13명을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위원회(PCAST)'에 전격 임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5(현지시간) 이번 인사는 미 행정부의 기술 정책이 학계 조언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형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실리콘밸리 거물 영입.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실리콘밸리 거물 영입. 도표=글로벌이코노믹


학자 대신 CEO…자문위 인적 구성의 질적 전환


백악관은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PCAST 첫 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래리 엘리슨 오라클 이사회 의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 서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 리사 수 AMD CEO, 마이클 델 델 테크놀로지스 CEO, 마크 안드레센 안드레센 호로위츠 공동 창업자, 프레드 어삼 코인베이스 공동 창업자, 사프라 캐츠 오라클 CEO, 핵물리학자 존 마티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 핵융합 에너지 스타트업 커먼웰스퓨전시스템 공동 창업자 밥 멈가드, 기업인 데이비드 프리드버그, 클린에너지 원자로 업체 옥로(Oklo) CEO 제이컵 드위트 등 13명으로 구성됐다. 당초 업계 일각에서 거론됐던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명단에서 빠졌다.

위원회 공동 의장은 백악관 AI·암호화폐 담당 특별보좌관 데이비드 색스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국장 마이클 크라치오스가 함께 맡는다. 위원회 규모는 최대 24명까지 확대될 수 있으며, 백악관은 추가 임명 예정자를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PCAST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창설한 이후 90년 넘게 유지돼 온 제도적 기구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구글 이사회 의장을 지낸 에릭 슈미트,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리사 수 AMD CEO 등이 위원으로 활동했으나, 전통적으로 물리학자·생물학자 등 순수 과학자가 다수를 이뤘다. 이번처럼 빅테크 CEO들이 위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역대 PCAST 구성에서 전례가 없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치 후원에서 정책 설계까지…밀착의 경제학


이번 자문위원 중 상당수는 트럼프 진영과 긴밀한 자금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안드레센은 2024년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관련 슈퍼팩(Super PAC·정치자금 모금단체)에 거액을 쏟아부었으며, 저커버그의 메타와 황 CEO의 엔비디아는 각각 100만 달러(15억 원)를 트럼프 대통령 두 번째 취임위원회에 기부했다. 엘리슨은 수년간 트럼프의 핵심 기업 후원자로 활동해 왔다.

이러한 구조는 실제 정책으로 즉각 전환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AI 반도체 수출 통제를 완화하고 데이터센터 건설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행정 집행을 조율했다. 지난주 발표된 AI 정책 체계에서는 연방 차원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주() 정부의 독자적인 AI 규제 제정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아 업계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암호화폐 시장 구조 입법 역시 투자자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의제다.
백악관은 이번 PCAST 구성에 대해 "신흥 기술이 미국 노동 시장에 가져올 기회와 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모든 미국인이 '혁신의 황금기'에서 번영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자문위 출범이 단순한 정책 조언을 넘어설 것이라고 본다. 한 국내 반도체 산업 연구기관 관계자는 "AI 가속기 표준 설계부터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 수출 규제의 세부 기준까지 사실상 기술 산업의 모든 규제 변수가 이 위원회 논의를 통해 조율될 가능성이 크다""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된 기업들은 이 기구의 동향을 경쟁 정보 차원에서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스로픽 소송전…밀월의 균열


그러나 민관 협력의 장밋빛 구도에 이미 균열이 생겼다. 국방부(펜타곤)AI 스타트업 엔스로픽(Anthropic) 사이의 법적 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지난달 27(현지시간) 엔스로픽을 '공급망 위험 요소(Supply Chain Risk)'로 공식 지정했다. 이 지위는 통상 중국·러시아 등 안보 위협 국가와 연계된 기업에 부과하는 극히 이례적인 조치다. 지정 즉시 국방 관련 계약업체들은 엔스로픽 제품 사용 여부를 당국에 증명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방 전 기관에 엔스로픽 기술 사용 전면 중단을 명령했다.

발단은 계약 조건을 둘러싼 이견이었다. 엔스로픽은 20257월 펜타곤과 2억 달러(3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클로드(Claude) 모델을 기밀 네트워크에 처음 통합시킨 AI 기업이 됐다. 그러나 이후 계약 갱신 협상 과정에서 국방부가 요구한 '모든 합법적 목적에 대한 무제한 이용권' 조항이 문제가 됐다. 엔스로픽 측은 자율살상무기 운용과 미국인 대규모 감시 목적의 활용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협상은 결렬됐다.

엔스로픽은 이달 초 연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해 펜타곤의 공급망 위험 지정 처분이 위법이라고 맞섰다. 지난 24(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법 심리에서 리타 린 판사는 정부 측 변호인에게 "이 지정이 정당한 행정 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스럽다""기업에 대한 처벌처럼 보인다"고 공개 지적했다. 오픈AI와 구글 딥마인드 소속 수십 명의 과학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엔스로픽을 지지하는 법정 의견서를 제출하며 "이 선례가 미국 AI 경쟁력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PCAST 자문위원사와 한국 기업, 협력과 긴장의 이중주


이번 PCAST 자문위에 이름을 올린 빅테크들은 한국 주요 기업과 이미 수조 원 규모의 거래 망으로 얽혀 있다. 협력과 경쟁, 그리고 법적 긴장이 동시에 흐르는 복합적 관계다.

가장 밀도 높은 파트너십은 엔비디아와 한국 반도체·완성차 업계 사이에 형성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해왔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2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62%에 달한다. 삼성전자 역시 최근 엔비디아로부터 HBM3E HBM4 핵심 공급사로 공식 인정받아 뒤늦게 공급 전선에 가세했다. KB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6년 차세대 HBM4 물량의 90% 이상을 공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엔비디아-현대차그룹의 관계도 빠르게 격상됐다. 지난해 10월 경주 APEC 현장에서 양측은 자율주행·스마트팩토리·로보틱스 분야에서 약 30억 달러(45100억 원) 규모의 공동 투자와 AI 팩토리 구축에 합의했다. 엔비디아 블랙웰 GPU 5만 장을 현대차그룹이 확보하기로 했고, 20263GTC 2026에서 현대차·기아는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 플랫폼 기반의 레벨 2 이상 자율주행 기술 공동 개발과 레벨 4 로보택시까지 아우르는 협력 확대를 공식화했다. 현대오토에버, 모셔널 등 그룹 계열사까지 연계 수혜가 예상되는 구조다.

구글과 삼성전자의 관계는 상생과 종속의 경계선 위에 있다. 구글은 올해 초부터 갤럭시 기기에 자사 AI 모델 '제미나이'를 탑재하는 대가로 삼성전자에 매월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최소 2, 2028년까지 연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갤럭시 Z 폴드7·Z 플립7 등 최신 폴더블 기기에는 구글의 최신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16이 타사에 앞서 먼저 탑재됐으며, 구글은 삼성전자와 제미나이 탑재 AI 스마트 안경도 공동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력 관계에는 법적 긴장이 내재해 있다. 미국 연방법원은 지난해 구글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기 제조사에 검색 엔진 기본 탑재 대가를 지급하는 관행이 독점금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했으며, 현재 시정을 위한 공판이 진행 중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구글 의존도 심화는 삼성의 독자 AI 소프트웨어 역량 고도화를 오히려 더디게 만드는 구조적 역설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타와 한국 기업 간의 직접 거래는 아직 제한적이지만, 간접 파급력은 크다. 메타는 2026년 한 해에만 AI 인프라에 최대 1350억 달러(203조 원)를 쏟아부을 계획이며, 이 막대한 투자의 핵심 부품 수요 일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메모리 제품으로 흘러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메타가 자체 AI 칩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엔비디아 GPU 의존도를 낮출 경우, 간접적으로 한국 메모리 수요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요컨대 PCAST에 입성한 빅테크들은 한국 기업에게 가장 크고 확실한 매출처이자, 동시에 기술 종속 리스크를 내포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들이 백악관 자문위원으로서 AI 표준과 수출 규제 방향을 직접 설계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는 점은, 한국 기업들에게 비즈니스 관계를 단순한 공급 계약이 아닌 정책 리스크 관리의 영역으로도 바라봐야 한다는 과제를 새롭게 던지고 있다.

한국 반도체·IT 산업에 주는 전략적 함의


이번 PCAST 출범과 엔스로픽 사태는 한국 기술 기업들에 세 가지 중요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첫째, 기술 표준이 정치자금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엔비디아·메타·구글의 최고경영자들이 백악관 자문위원이 된 만큼, AI 가속기 규격·데이터 거버넌스 표준·암호화폐 회계 기준 등이 이들 기업에 유리하게 설계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반도체·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 표준을 단순히 수용하는 위치에 머무를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

둘째, AI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는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위기를 내포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한국 기업의 핵심 수출품에 대한 규제 장벽이 낮아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엔스로픽 사례는 미국의 국익, 특히 군사·안보적 이해와 충돌할 경우 순식간에 강력한 제재가 동반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기술주권과 미국 공급망 내 위치 사이에서의 정밀한 균형 관리가 필요하다.

셋째, 외교 라인과 비즈니스 라인의 동시 가동이 시급하다. 미국의 기술 정책 결정축이 학계·관료 채널에서 빅테크 CEO 채널로 이동한 만큼, 한국 기업들은 정부 대 정부(G2G) 외교에만 의존하지 말고 PCAST 위원사들과의 직접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외교적 자산으로 키워야 할 시점이다.

AI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단순한 산업 경쟁에서 지정학적 질서 재편으로 확장되는 지금, 한국이 어느 표준의 설계자 옆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