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AI 반도체 투자 8000억 달러…2028년 '공급 과잉 쇼크' 온다

글로벌이코노믹

AI 반도체 투자 8000억 달러…2028년 '공급 과잉 쇼크' 온다

IBS 핸델 존스 CEO, 세미콘 차이나서 경고 "설비 확장 속도가 수요 앞지를 것"
2025~2026년 집행 CAPEX, 2~3년 램프업 거쳐 2028년 공급 과잉으로 전환 구조
삼성·SK하이닉스는 단기 수혜…"설계 역량 없는 범용 기업, 직격탄 불가피"
시장조사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전략(IBS)의 핸델 존스 최고경영자(CEO)는 '세미콘 차이나(SEMICON China) 2026'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글로벌 AI 인프라 자본지출(CAPEX)이 2028년 무렵에는 '과잉 공급'이라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시장조사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전략(IBS)의 핸델 존스 최고경영자(CEO)는 '세미콘 차이나(SEMICON China) 2026'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글로벌 AI 인프라 자본지출(CAPEX)이 2028년 무렵에는 '과잉 공급'이라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들썩이는 지금, 반도체 업계의 저명한 시장분석가가 정반대 경고음을 울렸다. "2028년 지금의 투자 열풍이 부메랑이 된다."

시장조사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전략(IBS)의 핸델 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7일(현지 시각)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세미콘 차이나(SEMICON China) 2026'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글로벌 AI 인프라 자본지출(CAPEX)이 2020년 이후 6년 만에 5~6배로 폭증하며 반도체 수요의 90%를 빨아들이고 있지만, 이 엄청난 투자가 2028년 무렵에는 '과잉 공급'이라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호황의 불씨 속에 하락의 씨앗이 함께 자라고 있다.

2028년 AI 반도체 ‘사이클 쇼크’ 3대 핵심 리스크.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2028년 AI 반도체 ‘사이클 쇼크’ 3대 핵심 리스크. 도표=글로벌이코노믹


8000억 달러 투자, 수요의 90%가 AI


존스 CEO에 따르면 글로벌 AI·데이터센터 CAPEX는 2020년 1100억 달러(약 165조 원)에서 2026년 약 6000억 달러(약 905조 원)로 수직 상승했다. 알리바바 등 중국 하이퍼스케일러의 투자를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8000억 달러(약 1207조 원)에 육박한다. 그 결과 IBS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1조2000억 달러(약 1810조 원)에 이르고, 이 중 최대 90%를 AI 관련 수요가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목할 것은 수요 구조의 변화다. 존스 CEO는 AI 진화를 △오픈AI 주도의 생성형 AI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추론형 AI △사람의 개입 없이 과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AI의 세 단계로 구분했다. 에이전트 단계로 전환되면서 학습(Training)보다 실전 서비스인 추론(Inference) 수요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과거 학습 중심 서버는 중앙처리장치(CPU) 1개당 그래픽처리장치(GPU) 8개를 배치하는 구조였지만, 추론 중심 서버는 CPU 1개당 GPU 2개로 재편되고 있다. 이 변화는 엔비디아 가속기뿐만 아니라 인텔·AMD의 프로세서 수요도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

나아가 이 전환은 시장 판도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추론 중심 구조는 단순히 GPU 수량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글 텐서처리장치(TPU), 아마존 트레이니엄과 같은 주문형 반도체(ASIC)의 부상을 촉진하면서 엔비디아에 집중됐던 AI 반도체 시장의 지배구조를 흔드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KB증권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2025년 51조 원 규모에서 2028년 147조 원으로 연평균 4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4를 90% 공급하는 체계가 유지될 것으로 분석했다. 성장하는 파이 속에서도 주도권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셈이다.

한편 수요의 90%가 단일 산업(AI)에 집중된 구조는 양날의 검이다. 성장기에는 폭발적 수요를 공급하는 엔진이 되지만, 하락기에는 산업 전체를 동조화시키는 '증폭기'로 작용한다. AI 투자가 꺾이는 순간 반도체 수요 전체가 함께 붕괴할 수 있다는 뜻이다.

3나노 공급 부족과 중국의 게임 체인지


현재의 공급 부족은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존스 CEO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TSMC의 최첨단 3나노미터(nm) 공정 월간 웨이퍼 생산 능력이 30만 장 수준인 반면,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들의 수요는 40만 장을 웃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약 30%의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불균형은 2027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텔의 립부 탄 CEO는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블룸버그 보도)에서 "2028년까지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해소될 기미가 없다"고 진단했다. 매쿼리 리서치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AI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과 구조적 공급 부족이 맞물려 2028년까지 메모리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 과잉 경고와 공급 부족 장기화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국면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며 생산 능력을 확충하고 있지만, 핵심 장비의 인도 지연과 공급망 병목현상으로 즉각적인 출하량 확대에는 한계가 따른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의 신규 메모리 라인도 본격 양산은 2028년으로 예정돼 있다.

그사이 중국의 전략은 '추격'에서 '게임 체인지'로 진화하고 있다. 존스 CEO는 2020년 이후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설계와 AI 도입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5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장비 확보가 막혀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우회하는 다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첨단 패키징(후공정), 전력 반도체, 성숙 공정의 대량생산 능력을 빠르게 축적하면서 글로벌 공급 구조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단순한 기술 추격이 아니라 자신들이 유리한 전선(戰線)을 새로 열어가는 방식이다. SEMI China에 따르면 중국은 2028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제조 능력의 42%를 점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산업 영향은? 삼성·SK하이닉스는 수혜, 범용 기업은 직격탄


이 흐름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기업 유형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단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 KB증권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은 “주요 고객사의 메모리 수요 충족률이 여전히 60% 수준에 머물러 있어 가격보다 물량 확보가 우선되는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HBM·낸드 생산 분량이 사실상 완판 상태임을 공시를 통해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PC용 D램 평균 계약 가격은 전 분기 대비 110~115% 급등했다. 이 같은 공급자 우위 시장은 당분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을 뒷받침하는 구조다.

그러나 2028년을 기점으로 판도가 바뀔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CAPEX는 투자 집행 후 실제 양산에 이르기까지 통상 2~3년의 '램프업(ramp-up)' 시간이 필요하다. 2025~2026년에 집중 집행된 대규모 설비투자가 이 과정을 거쳐 2027~2028년에 본격 양산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공급 과잉의 임계점은 구조적으로 2028년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거시경제 악화에 따른 소비 위축, AI 알고리즘 효율화로 인한 인프라 확장 속도 둔화가 겹치면 충격은 배가된다.

공급 과잉 국면이 도래할 경우 차별화된 설계 역량을 가진 기업은 가격 결정력을 유지하는 반면, 범용 제품 중심의 기업은 가격 붕괴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HBM·첨단 파운드리에 집중하는 기업과 범용 메모리·레거시 공정에 머무는 기업 사이의 격차는 2028년 이후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증권가에서는 지금 공급 과잉 리스크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처럼 보이지만, 2028년 신규 팹 가동이 본격화되는 시점을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미리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공급 과잉 시나리오가 반드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AI 모델의 파라미터(매개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알고리즘 효율화에도 불구하고 총 메모리 수요가 확대되는 이른바 '제번스의 역설'이 작동할 수 있다. 효율화가 오히려 AI 보급을 가속해 장기 수요를 키운다는 논리다. 반도체 장비업체 SEMI도 세계 반도체 장비 판매액이 2027년 1560억 달러(약 235조 원) 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업계의 투자 신뢰는 유지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가 공급 확장 속도를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체크해야 할 지표


이번 사이클의 위험은 수요 부족이 아니라 지나치게 확신에 찬 투자 그 자체다. AI가 반도체 수요를 만든 게 아니라 변동성을 극단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 이것이 2028년 사이클의 본질이다.

지금 투자자와 기업이 모니터링해야 할 핵심 지표는 세 가지다.

첫째, 빅테크 CAPEX 증가율이다.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의 분기별 설비투자 가이던스가 꺾이는 시점이 수요 고점의 선행 신호다.

둘째, HBM 단가·가동률이다. HBM 계약 가격과 주요 파운드리 가동률이 동반 하락하기 시작하면 공급 과잉 국면 진입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삼성전자·마이크론의 신규 팹 양산 일정이다. 이 시점이 2028년에 집중될수록 공급 충격의 '동시성'이 높아진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단기 호황은 데이터가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하락의 골도 깊어졌다는 반도체 40년 역사의 교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