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글로벌 판매 35.8% 급감…혼다·야마하와 격차 '수백만 대', 48년 브랜드 생존 기로
기술 정체·전동화 실패·유통망 붕괴 '3중 악재'…매각·재제휴 거론
기술 정체·전동화 실패·유통망 붕괴 '3중 악재'…매각·재제휴 거론
이미지 확대보기29일(현지시각) 독일 이륜차 전문 매체 모터사이클스포츠(Motorcycle Sports)가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KR모터스의 2025년 글로벌 판매량은 3705대로 전년 대비 35.8% 급감했다. 전성기 수준 대비 90% 이상 줄어든 규모로, 글로벌 주요 브랜드 단일 인기 모델의 한 달 판매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비교 수치는 더욱 냉혹하다. 같은 기간 혼다(Honda)와 야마하(Yamaha)는 수백만 대 규모의 글로벌 판매를 유지했고, KTM과 두카티 등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도 고성능 레저 세그먼트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시장이 커지는 동안 KR만 홀로 역주행한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국내도 유럽도 '존재감 소멸'…전방위 위기
붕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한국 내수 시장과 유럽 수출 시장이 동시에 무너졌다.
과거 효성은 독일·프랑스 등 유럽 시장에서 '가성비 브랜드'로 틈새를 공략했다. 그러나 그 자리마저 중국·대만 전기 이륜차 업체들에 내줬다. 이륜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럽 소비자들이 전통 내연기관 저가 브랜드 대신 전동 이륜차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가성비 경쟁력 자체가 작동하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현재 남은 판매량의 대부분이 한국 내수에 집중돼 있지만, 국내 수요 역시 2024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강했다. 사실상 어느 시장에서도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구조다.
'기술 정체'만의 문제가 아니다…4중 복합 붕괴
업계 분석가들은 KR모터스의 퇴락 원인을 단순히 '기술 정체'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지적한다. 최소 네 가지 구조적 실패가 동시에 작동했다.
둘째, 유통망 악순환이다. 딜러망이 축소되면서 판매량이 줄고, 판매량 감소가 다시 딜러 이탈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한때 60개국을 커버한 글로벌 유통망은 이제 형해(形骸)에 가깝다.
셋째, 브랜드 파워 소진이다. 유럽·북미 시장에서 구축했던 가성비 이미지마저 중국·대만 신흥 업체에 잠식당했다. 가격 경쟁력조차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넷째, 전동화 대응 전무다. 가장 치명적인 실패다. 경쟁사들이 AI 기반 안전 시스템과 고효율 배터리 플랫폼을 장착한 전기 이륜차를 잇달아 출시하는 동안, 효성은 구형 내연기관 모델에 머물러 있다.
전동화 물결에 올라타지 못한 치명적 실책
전기 이륜차 시장은 글로벌 이륜차 산업의 핵심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마크그룹(imarc Group)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 이륜차 시장은 2025년 이후에도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니우(Niu), 대만의 고고로(Gogoro) 등이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커넥티드 플랫폼과 결합한 신사업 모델로 유럽·동남아를 파고드는 동안, 효성은 내연기관 중심 전략을 사실상 고수했다.
이륜차 전문 분석가 프란체스코 루소(Francesco Russo)는 보고서를 통해 "전동화 전환이 가속화되는 국면에서 효성의 시장 점유율은 이미 임계치 이하로 떨어졌다"면서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회복할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생존의 배경은…그룹 지원, '양날의 검'
판매량이 이 지경임에도 생산 라인이 멈추지 않는 것은 이륜차 사업이 거대 산업 그룹의 극히 작은 부분으로 편입돼 있기 때문이다. 이륜차 부문이 그룹 내 비핵심 사업으로 분류되면서, 영업 손실이 발생해도 즉각적인 구조조정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구조다.
그러나 이 방어막은 영구적이지 않다. 손실이 누적될수록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를 근본적 회생이 아닌 '시간 벌기'로 본다.
업계에서 현재 거론되는 효성의 생존 경로는 세 가지다.
첫째, 전기 이륜차로의 전면적 전환이다. 자체 EV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글로벌 배터리·모터 공급사와 전략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막대한 초기 투자와 브랜드 신뢰 재건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기 실현 가능성은 낮다.
둘째, 글로벌 브랜드와의 재제휴다. 1970~80년대 스즈키(Suzuki)와의 기술 제휴처럼, 선진 전기 이륜차 업체와의 OEM 생산 또는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단, 이 경우 브랜드 독자성은 상당 부분 훼손된다.
셋째, 사업 매각 또는 합병이다.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동남아·남미 등 신흥 이륜차 시장을 공략하려는 중국 또는 대만 업체가 효성의 유통망과 브랜드 자산을 인수하는 시나리오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떤 경로를 택하더라도 '현상 유지'는 선택지가 될 수 없다"며 "지금 내리는 결정이 브랜드의 마지막 국면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이륜차 산업의 교훈…'추격자 전략'의 한계
한국 오토바이의 추락은 한 기업의 실패를 넘어 한국 중소 제조업이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업체의 기술을 들여와 가성비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던 '추격자 전략'은 시장이 플랫폼·전동화·연결성 중심으로 재편되는 순간 한계에 부딪힌다.
정부 차원에서 전기 이륜차 전환을 지원하는 보조금·세제 혜택 정책이 존재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요측 지원이다. 효성처럼 공급 측 기술 역량 자체가 소진된 기업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업계에서는 한국형 중소 이륜차·특수차량 제조사를 대상으로 한 기술 개발 매칭 펀드나 글로벌 합작 투자 연계 프로그램 같은 공급측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KR모터스의 향방을 가늠하려면 세 가지 지표를 주시할 것을 권한다. △KR모터스 공시상 이륜차 부문 분리 여부(사업 매각·분사의 선행 신호) △국내 전기 이륜차 신모델 출시 일정(전동화 전환 의지의 실질적 척도) △글로벌 파트너십 MOU 또는 지분 거래 공시(재제휴 시나리오 현실화 여부)다.
48년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을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할지는 앞으로 12~18개월이 결정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