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중간재 가격 급등→생산 원가 상승→투자 위축의 악순환, AI 자동화가 고용 회복 차단
트럼프 보호무역 1주년 성적표 — 美 제조업 르네상스는 '미완', 한국 수출 84% 직격탄 경고
대법원 위헌 판결·7월 관세 만료 동시에 도래, 한국 수출 핵심품목 40% 이상 사정권
트럼프 보호무역 1주년 성적표 — 美 제조업 르네상스는 '미완', 한국 수출 84% 직격탄 경고
대법원 위헌 판결·7월 관세 만료 동시에 도래, 한국 수출 핵심품목 40% 이상 사정권
이미지 확대보기하지만 한국 주요 기업들이 수조 원을 미국 땅에 쏟아부으며 관세 장벽을 넘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이, 워싱턴이 내민 성적표는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무역적자 감소라는 가시적 숫자 이면에 고용 절벽과 물가 급등이 공존하는 역설이 펼쳐졌고, 그 충격은 미국에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11일 한국을 포함한 16개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공식 개시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합산하면 한국 대미 수출의 40% 이상이 미국의 직접적인 관세 사정권에 들어간 셈이다. 투자로 약속을 증명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한국 기업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성과와 부작용의 극명한 엇갈림 → 적자는 줄었지만, 공장 일자리는 사라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9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 통상 정책 1년을 종합 평가하면서 "글로벌 무역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했으나 경제 지표 면에서 극명하게 엇갈린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관세 위협에 굴복한 20여 개 교역 상대국이 시장 개방에 합의했고, 일부 외국 기업은 미국 내 공장 설립을 약속했다. 그 결과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는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고용 지표는 냉혹하다. 현재 미국 제조업 종사자 수는 1260만 명으로, '해방의 날' 이전보다 오히려 9만3000명 줄었다. 제조업 생산량도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 수준을 밑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2023년 이후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21만 개 이상 소멸하며 팬데믹 종식 이후 가장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왜 공장이 돌아와도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는가. 메커니즘은 단순 번역이 아닌 구조적 함정이다. 관세 부과 → 수입 원자재·중간재 가격 급등 → 제조업 생산 원가 상승 → 기업 투자 위축 및 감원 → 고용 감소와 물가 상승의 이중 압박이 동시에 작동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로봇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공장 효율은 높아지되 필요한 노동력은 줄어드는 '사람 없는 공장' 현상이 맞물렸다. 스콧 폴 미국제조업연맹(AAM) 회장은 "고금리와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내구재 소비를 줄이는 상황에서 관세만으로는 제조업 부활을 이끌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물가 압력도 가중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4월 2.5%에서 최근 3.1%로 0.6%포인트 뛰었다. 예일대학교 예산 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25년 트럼프 관세 전반으로 인한 물가 수준 단기 상승폭은 약 1.8%에 달하며, 이는 평균 가구 기준 연간 약 2400달러(약 363만 원)의 실질 소득 손실에 상당한다.
"무역수지 개선은 착시일 수 있다" → 수입 억제 효과인가, 경기 둔화 신호인가
무역적자 감소를 단순히 통상 정책의 성과로 해석하는 것은 섣부른 결론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번 적자 축소가 '수출 경쟁력 강화'가 아닌 '수입 억제'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관세로 수입이 막히면 적자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산업 경쟁력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무역적자 축소가 ‘성공’이 아니라 ‘수요 위축의 결과’라면, 이는 정책 성과가 아니라 경기 경고 신호에 가깝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애덤 포센 소장은 "관세의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대가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며 "향후 1년간 인플레이션 상승 가능성에는 비교적 확신이 있다"고 밝혔다. 관세가 실질 소득을 깎고 기업의 투자 결정을 지연시키며,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누적되면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설명이다. 예일대 연구소는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미국 실질 GDP 성장률이 관세 영향으로 매년 약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타코(TACO)'의 경제학 → 예측 불가능성이 가장 비싼 관세
지난 1년 미국 통상 정책의 또 다른 치명적 비용은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고 작은 사안마다 관세 위협을 쏟아내다가도 돌연 철회하거나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트럼프는 언제나 겁을 먹고 물러난다'는 뜻의 신조어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까지 등장했다. 시장이 조롱으로 소비한 ‘TACO’ 현상은 사실상 정책 신뢰 붕괴를 의미한다.
그 혼란의 정점은 사법부에서 나왔다. 지난달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비상 관세 대부분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정부는 수입업자들에게 1500억 달러(약 226조 원) 이상의 관세를 환급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현재 1974년 무역법 122조를 동원해 임시 10%의 보편 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오는 7월 중순 만료 예정이다.
정책 불확실성은 기업 행동을 마비시켰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 미국 완성차 기업과 캐터필러 등 산업 장비 업체들은 관세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공식 인정했다. 윌리엄스 소노마의 로라 알베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관세 환경이 예측 불가능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다니엘 하렌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무역 긴장은 끓어오르지 않는다. 한 번의 트윗, 한 번의 법원 판결만으로도 시장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재평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없이 돌아가는 세계 → 다극화 블록 경제의 가속
미국이 다자간 무역 질서를 거부하자 세계 각국은 '미국 없는' 생존 전략을 구체화했다. EU·남미 공동시장(메르코수르) 무역 협정이 오는 5월 1일 잠정 발효되며 EU·인도 무역 협정도 타결을 앞두고 있다. 싱가포르, 노르웨이, 칠레 등 16개국은 미국이 방기한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 수호를 위해 별도 투자 협상을 시작했다.
트럼프 1기 상무장관을 지낸 윌버 로스는 "과거의 자유무역 개념은 이제 사라졌으며 트럼프가 세계적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공급망에서 중국의 비중은 급격히 축소됐고, 중국산 수입은 미국 시장에서 4%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이는 제조업의 미국 귀환보다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 즉 멕시코·베트남·대만 등 제3국으로의 공급망 우회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리쇼어링의 꿈은 우회로의 현실로 귀결됐다.
글로벌 경제 질서의 재편 구도는 미국의 일방적 보호무역, EU 중심의 규범 기반 블록, 글로벌 사우스의 실리 외교라는 세 축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
한국에 드리운 그림자 → 반도체·자동차 40%가 사정권, 7월이 분수령
한국 경제에는 더 긴박한 시계가 작동하고 있다. 수십조 원을 미국에 투자했지만,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면제’가 아니라 ‘추가 조사’였다. USTR이 지난 3월 11일 개시한 무역법 301조 조사는 기간이 150일에 불과하다. 임시 관세 만료 시점인 7월 전에 조사를 마무리하고 고율 관세를 새로 설계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사 대상은 자동차, 반도체, 철강, 선박, 화학, 전자기기 등 한국 수출 핵심 업종 전반이다. 한국 대미 무역 흑자는 560억 달러(약 84조 원, 2024년 기준)에 달하며, 수출의 84%를 제조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구조상 이 조사가 현실적 제재로 이어질 경우 파급 효과는 가늠하기 어렵다.
반도체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장 가동률 100% 상태에서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부족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을 창고에 쌓아두고 박리다매로 시장을 왜곡하는 과잉생산은 한국 반도체의 체질과 동떨어진 얘기"라고 반박했다.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전체 수출 물량의 49%를 미국에 의존한다. 에이섹 파르테논의 그레그 다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 경기가 최근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AI 열풍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며 "중동 긴장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향후 제조업 부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는 대미투자특별법을 앞세워 한미 경제협력의 전략적 가치를 부각하는 방향을 택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수출에 있어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전략 과제 → 수출 다변화, 현지화, 법리 대응의 3중 방어선
정부의 외교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과제는 세 방향에서 동시에 요청된다.
첫째, 수출 시장 다변화다. 미국 의존도가 절반에 가까운 자동차 산업은 인도·동남아·유럽 시장 확대를 병행하지 않으면 구조적 취약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미국 내 제조 시설 증설과 함께 인도, 베트남 등 신흥 시장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 현지 생산 투자의 전략적 가속화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2026년 양산 목표로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다만 현지화 투자는 단기 고용 창출보다 자본집약적 성격이 강해 리쇼어링 효과가 미국 유권자에게 가시화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딜레마가 있다.
셋째, 무역법 301조 조사에 대한 산업별 법리적 대응 자료 구축이다. '과잉생산'이라는 조사 명분에 대해 실증 데이터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근거로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정부·업계의 공동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투자자들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지표가 크게 세 가지 있다. 첫째, 5월 미·중 정상회담: 베이징에서 열릴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이 이번 관세 체계의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의 웬디 커틀러 부소장은 "단기적으로 행정부가 협상 승리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합의 이행의 지속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둘째, 7월 관세 만료 시점이다. 무역법 122조 기반 임시 관세가 만료되는 7월은 한국 수출의 새 관세 체계가 결정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301조 조사 결과가 이 시점에 연동될 경우 한국 기업들의 비용 구조에 즉각적인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
셋째, 미국 PCE 물가와 연준 기준금리: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3%를 넘어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를 지연시킬수록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가 겹쳐 한국의 수입 원가 부담도 동반 상승한다.
관세는 공장을 옮길 수는 있어도 산업 경쟁력 자체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이 지난 1년이 남긴 가장 무거운 교훈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은 미국 우선주의를 제도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비용을 미국 소비자와 기업이 치르고 있으며 그 파편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의 수출 기업들에게도 날아들고 있다. 불확실성 그 자체가 세계 경제의 가장 비싼 관세가 된 역설적 현실 앞에서, 한국은 방어적 협상과 공세적 다변화를 동시에 가동해야 하는 복합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