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본 증가 속도, 국채 팽창의 절반…유동성 공급 한계 직면
재정적자 2조 달러 눈덩이·2019년 레포 발작 재발 우려 고조
재정적자 2조 달러 눈덩이·2019년 레포 발작 재발 우려 고조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국채는 오래도록 '절대 안전자산'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그 전제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규모가 너무 커진 나머지, 시장을 떠받쳐야 할 은행 자본이 그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경고음이 잇따라 울리고 있다.
전 세계 금융 규제 체계가 "미 국채는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다"는 가정 위에 설계된 만큼, 이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 파장은 시장 경계를 넘어선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즈(Barclays)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31조 달러(약 4경 6900조 원) 규모로 불어난 미 국채시장이 구조적 불안 상태에 빠졌으며, 주기적인 공적 개입 없이는 정상 작동이 어렵다고 진단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재무학과 제프리 멜리(Jeffrey Meli) 교수와 바클레이즈 전략가 새뮤얼 얼(Samuel Earl), 안슐 프라단(Anshul Pradhan), 암루트 나시카르(Amrut Nashikkar)가 공동 작성했다.
데이터로 보는 '자본 괴리'…국채는 9% 질주, 은행은 3.8% 걷기
수치가 현실을 압축한다. 2009년 이후 미 국채시장은 해마다 약 9% 속도로 몸집을 키웠다. 같은 기간 미국 은행권 자본은 연평균 3.8% 느는 데 그쳤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분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출한 수치다.
두 수치가 벌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다. 위기 전에는 은행 자본이 빠르게 쌓이며 국채 팽창을 감당할 여유가 있었지만, 위기 이후 강화된 건전성 규제가 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끌어내리면서 자본 축적 동력이 꺾였다.
멜리 교수 등은 보고서에서 이를 "유동성 초과 공급에서 정반대 국면으로의 급격한 전환"이라고 표현했다. 국채 발행은 재정적자 확대와 직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제금융센터(KCIF)에 따르면, 미국의 회계연도 2026년 재정적자는 2조 달러(약 3000조 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채 발행 규모가 줄어들 요인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불균형의 흔적은 시장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자율 스와프(interest rate swap) 대비 국채 가격이 전반적으로 낮아진 데다, 국채 입찰에서 지정 인수기관인 프라이머리 딜러(primary dealer)가 소화하는 비중도 금융위기 이후 뚜렷이 줄었다.
"셋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연준, 시장 최후 보루로 굳어지나
바클레이즈 연구진이 내놓은 결론은 냉정하다. 멜리 교수 등은 "안정적인 시장, 안정적인 금융 중개기관, 구제 금융 회피,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연준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공신력을 얻으면 오히려 은행들은 스트레스 국면에서 자산 공급을 더욱 꺼리게 되고, 이는 시장 불안을 증폭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개입 기대가 레버리지 활용을 키우고, 그것이 투매 위험을 높이는 자기실현적 불안정도 우려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미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코로나19 충격이 닥친 2020년, 금융 시스템 전반에서 달러 수요가 폭발하자 연준은 국채시장에 대규모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 연준의 국채 보유 잔액은 2020년 초 2조 달러(약 3000조 원)에서 2022년 5조 달러(약 7500조 원) 가까이로 2년여 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
2019년에는 단기 자금 시장에서 하룻밤짜리 환매조건부채권(레포·repo) 금리가 2%대에서 10%로 폭등하는 이른바 '레포 발작'이 터졌고, 연준이 긴급 유동성을 투입해 불을 껐다.
지난해 12월에도 연준은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단기 국채 400억 달러(약 55조 원) 매입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골드만삭스는 당시 "예상보다 빨랐고, 규모도 예상의 두 배"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연준의 이 같은 반복적 역할을 두고 "국채시장 안정이 사실상 연준의 책무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바클레이즈 보고서도 이를 정면으로 인정하며 "국채시장의 안정은 사실상 연준이 짊어진 채무"라고 표현했다.
이 문제는 한국에도 무관하지 않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의 미 국채 보유 규모가 꾸준히 늘어온 가운데,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큰 시기에 미 국채 유동성이 흔들리면 국내 기관의 외화채권 운용 전략 전반이 영향권에 들 수 있다.
월가에서는 "미-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이 겹치면서 해외 중앙은행의 국채 매도가 이어지는 국면에서 시장 충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미 국채시장이 커질수록 공적 개입의 문턱은 낮아지고, 그 부담은 연준의 대차대조표 팽창으로 귀결된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의 안정을 유지하는 비용이 구조적으로 높아진 지금, 다음 위기의 소방수는 어김없이 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월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