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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위험한 시기” 트럼프, 1.5조 달러 국방비 편성 '초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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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위험한 시기” 트럼프, 1.5조 달러 국방비 편성 '초강수'

이란전·대중 견제에 군사력 총동원…복지·주거·보건 예산 대폭 삭감
“전쟁 중엔 국방 우선” 선언…美 정치권, 안보와 민생 정면 충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일 백악관 크로스홀에서 이란전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7회계연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1조5000억달러로 늘리는 대신, 보건·주거·환경 등 국내 프로그램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일 백악관 크로스홀에서 이란전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7회계연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1조5000억달러로 늘리는 대신, 보건·주거·환경 등 국내 프로그램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7회계연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1조5000억 달러로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수십 년 만의 최대 규모 국방예산 요청이다. 이란전과 중국·러시아 견제, 군 현대화에 재정을 집중하는 대신 보건·주거·복지·기후 예산은 대거 깎는 방식이다. 백악관이 예산을 통해 “연방정부의 우선순위는 총과 방패”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3일(현지 시각) 공개한 2027년 예산안은 국방지출을 1조5000억 달러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최근 수십 년 사이 가장 큰 규모의 국방예산 요청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전 대국민 연설을 앞두고 “우리는 전쟁 중이다. 연방정부가 보육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고 말하며, 국방 우선의 가치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보육 같은 사회정책 상당 부분은 주정부 차원에서 맡아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내비쳤다.

이번 예산안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 운영 철학을 압축한 문서에 가깝다.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국장은 “위험한 세계에서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국가안보 인프라에 재투자하겠다는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안보를 연방정부의 핵심 임무로 재정의하고, 그 외 영역은 주정부와 지방정부로 내려보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대통령 예산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실제 편성과 집행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충돌은 이제부터다.

국방 최우선, 연방 역할 축소

백악관이 제시한 우선순위는 선명하다. 국방부 예산 대폭 증액과 함께 법무부 예산은 13% 늘려 강력범죄 및 이른바 ‘이민자 범죄’ 대응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국토안보부는 지난해 증액분을 활용해 불법 이민자 단속과 추방 작전을 이어가고, 성인용 10만 개, 가족용 3만 개 규모의 구금시설 병상 확보도 추진한다. 여기에 항공교통관제사 대규모 채용을 위해 항공안전 예산 4억8100만 달러를 추가하고, 워싱턴DC의 건설·미화 사업을 위해 국립공원청 내 100억 달러 기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안보와 치안, 국경 통제, 수도 상징성 강화가 트럼프식 국가 우선순위의 중심축으로 제시된 것이다.

국방비 1조5000억달러의 구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AP 보도에 따르면 이 가운데 1조1000억달러는 통상적인 세출 절차를 통해, 나머지 3500억 달러는 공화당이 단독 처리할 수 있는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확보하는 구상이 담겼다. 공화당 지도부가 의회를 장악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민주당 반대를 우회하면서도 트럼프의 안보 우선순위를 제도화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복지·주거·기후 예산 대수술


그 반대편에는 대규모 삭감이 놓여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재생에너지 투자와 환경정의 프로그램은 정면 표적이 됐다. 인프라법에 반영됐던 150억 달러 이상의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을 취소하고,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기후변화 관련 보조금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농무부 예산은 19% 삭감해 일부 대학 보조금을 종료하고, 주택도시개발부 예산은 13%, 보건복지부 예산은 약 12% 줄이기로 했다.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 같은 프로그램도 삭감 대상에 포함됐다.

백악관은 저소득 지역에 대한 연방 투자 성격의 보조금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지역사회서비스 블록그랜트는 재정 상담, 취업 지원, 적정 주거 확보 등 취약계층 지원에 쓰여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급진적 형평성 정책과 녹색 에너지 의제에 악용된 사업으로 규정했다. 의료 분야에서도 보건의료연구품질청 예산 1억 600만 달러 삭감을 추진하며, 아동을 상대로 한 급진적 젠더 이데올로기 확산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복지·보건·기후 예산을 이념 전선으로 끌어들여 삭감 명분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공화당 안보 라인은 즉각 환영했다. 상·하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위원장들은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커지는 위협에 맞서 미국 군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을 유지하려면 이 정도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로저 위커 상원의원과 마이크 로저스 하원의원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국제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민생을 베어 군비를 키우는 예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원 예산위 민주당 간사 브렌던 보일은 이 예산안을 “미국 우선이 아니라 미국 최후(America Last)”라고 비판했다. 상원 세출위 민주당 간사 패티 머레이는 “도덕적으로 파산한 예산”이라고 직격했다.

미국 재정 여건도 녹록지 않다. 연간 재정적자는 2조 달러에 육박하고, 국가부채는 39조 달러를 넘어섰다. 매년 약 7조 달러로 추산되는 전체 지출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사회보장처럼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의무지출이다. 이런 구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과 치안을 늘리고 나머지를 줄이는 ‘선택과 집중’에 나섰지만, 그 과정에서 어디를 얼마나 더 깎을지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은 더욱 거칠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예산안은 그래서 단순한 숫자 경쟁이 아니다. 이란전과 대중 견제, 국경 통제 강화라는 안보 서사를 앞세워 연방정부의 역할을 다시 그리려는 정치 프로젝트에 가깝다. 트럼프는 국방비 1조 5000억 달러를 통해 미국의 힘을 과시하려 하지만, 그 대가로 민생 예산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는 결국 의회가 결정한다. 워싱턴의 다음 전장은 중동이 아니라, 예산안이 올라갈 의사당 회의실이 될 공산이 크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