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태국 등 연료비 동결 위해 천문학적 예산 투입… 재정 적자 법적 한도 초과
통화 가치 사상 최저치 경락에 인플레이션 악순환… 무디스·피치 '부정적' 전망 하향
통화 가치 사상 최저치 경락에 인플레이션 악순환… 무디스·피치 '부정적' 전망 하향
이미지 확대보기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각국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연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7일(현지 시각)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동남아 주요국들은 이제 고유가를 넘어 '주권 신용등급 하향'이라는 심각한 금융위기 국면에 진입했다.
◇ "기름값 오르기 전에 채우자"…주유소마다 30분 넘는 장사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지에서는 연료 가격 인상설이 돌면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4월부터 휘발유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소문에 자카르타 인근 주유소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가격 조정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민들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필리핀에서는 유가 상승을 견디다 못한 운수 노동자들이 지난달 말 총파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지프니와 택시 운전사들에게 인당 83달러의 긴급 보조금을 지급하며 달래기에 나섰다.
베트남 정부는 '연료 가격 안정화 기금'을 총동원하고 있으며, 팜민찐 총리는 내년 예산을 끌어다 기금을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 재정 적자 '레드라인' 돌파…태국·인도네시아 부채 경고등
보조금 정책은 곧바로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갉아먹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유가 상승으로 인해 재정 적자 폭이 GDP의 3.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법적 상한선인 3%를 초과하는 수치다. 이에 무디스와 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인도네시아의 국가 신용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전격 하향 조정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무료 학교급식' 예산마저 연료 보조금을 메우기 위해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급식 제공 횟수를 줄이는 등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다.
◇ 통화가치 폭락과 ‘제2의 아시아 금융위기’ 우려
재정 악화 우려는 곧바로 외환시장의 패닉으로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 페소화는 달러당 60페소를 돌파하며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역시 달러당 1만7000루피아 선을 위협받고 있으며, 국채 수익률은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식량과 생필품 가격이 다시 오르게 된다. 연료비를 억제하기 위해 뿌린 보조금이 결국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독이 든 성배'가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이 1997년 태국 바트화 붕괴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한다. 비록 과거보다 외화보유액 등 대응력이 높아졌으나 단기적인 재정 붕괴 위험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 한국 금융권에 주는 시사점
동남아 국가들의 신용등급 하향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은행과 기업들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동남아 익스포저(노출액)가 큰 금융기관들은 대손충당금 적립 등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현지 통화가치의 변동성이 극심한 만큼 달러 결제 비중을 높이거나 환헤지 상품 가입을 통해 수출 기업들의 환차손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역시 고유가 시기에 유류세 인하 등 보조 정책을 시행한다. 동남아의 사례는 보조금이 재정 규율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