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달러 ‘스타게이트’도 멈췄다… 칩 부족 넘어 전력·인프라·민심 ‘삼중고’
HBM 공급 과잉 리스크 부각… 투자자, 칩 수요보다 ‘실질 가동 지표’ 살펴야
HBM 공급 과잉 리스크 부각… 투자자, 칩 수요보다 ‘실질 가동 지표’ 살펴야
이미지 확대보기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1일(현지시각) 보고서를 통해 2026년 계획된 12~16GW(기가와트) 규모의 미국 데이터센터 물량 중 실제 착공에 들어간 것은 5GW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야심 차게 추진하던 5000억 달러(약 742조 원)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마저 텍사스 현지의 전력 및 인프라 문제로 공전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칩보다 무서운 ‘에너지 병목’… 전력망이 AI 대동맥 막았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은 이제 반도체 수급이 아닌 ‘에너지’와 ‘비용’이다. 전력 공급망과 지역 사회의 반대, 그리고 탈중국 기조에 따른 인프라 비용 상승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우선 전력망 포화와 자부담 가중이 심각하다. 전기차 보급 등으로 미국 내 전력망은 이미 한계치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은 전력망 연결 비용을 직접 부담하거나 자체 발전기를 설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급등하는 구축 비용도 큰 부담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의 벤 예 수석 분석가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메모리와 저장장치 공급을 독점하면서, 2025년 1분기 대비 비용이 각각 5배, 3배씩 폭등했다"고 진단했다.
지역 사회의 반발도 장애 요소다. 소음, 전력 과소비, 환경 오염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인허가 절차가 무기한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탈중국 기조는 데이터센터 공급망에 심각한 비용 압박을 가한다. 그간 저가 중국산이 장악했던 변압기, 스위치기어 등 전력 필수 설비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고 수입이 제한되면서 대체 설비 가격이 2~3배 폭등했다.
특히 자국 내 제조 기반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강행된 공급망 다변화는 부품 인도 기간(Lead-time)을 기존 2년에서 최대 5년까지 늘리는 병목 현상을 초래했다. 안보를 위한 대중 규제가 역설적으로 미 AI 인프라 구축의 발목을 잡는 비용 인플레이션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K-반도체 공급 과잉 ‘주의보’… 낙관론 뒤에 숨은 리스크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이 가시화되면 국내 반도체 업계에 경고등이 켜진다. 2026년 계획 물량의 60%가 표류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서버의 핵심 부품인 HBM과 기업용 SSD 수요가 뒤로 밀리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인프라 구축 비용이 폭등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의 칩 구매력이 약화될 경우, 반도체 단가 하락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에 대응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빅테크의 자체 발전소 건립 추이에 맞춘 공급 전략을 재수립하고 있다. 이제 반도체 승부는 기술력을 넘어 에너지 인프라 기업과의 협업을 통한 '공급망 최적화'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 착공률 저하가 지속될 경우, 시장이 기대했던 AI 매출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칩은 준비됐으나 이를 꽂을 '집(데이터센터)'이 지어지지 않는 상황이 길어지면, 쌓여가는 HBM 재고가 결국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칩의 시대에서 인프라 생존 게임으로… ‘진짜’ 가동 지표에 주목하라
전 세계를 휩쓴 AI 열풍이 칩 수급 문제를 넘어 전력과 데이터 센터 부지라는 거대한 인프라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산업의 후퇴가 아닌, 질적 성장을 위한 ‘성장통’으로 분석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단순히 칩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이나 자가 발전소 건립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다.
지금의 지연 사태는 오히려 인프라 병목이 해소되는 시점에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적으로 분출될 것임을 암시하는 전조 현상에 가깝다는 업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 투자자와 산업계는 ‘장밋빛 전망’에 가려진 추상적인 칩 수요 수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실제 데이터센터가 돌아가는지 결정짓는 ‘실무적 지표’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빅테크 기업의 자본지출(CAPEX) 집행률이다. 화려한 투자 발표액이 실제 땅을 파고 건물을 올리는 인프라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분기별 보고서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가동의 최대 승부처인 전력망 연결 대기 시간(Interconnection Queue)이다. 전력 승인 기간이 단축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능 좋은 칩을 쌓아둬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프라 지연에 발맞춘 HBM 가동률과 재고 수준을 살펴야 한다. 서버가 입고될 공간이 부족해지면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생산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지며, 이는 곧 시장 가격과 수익성에 직결된다.
AI 패권 전쟁의 2막은 기술력을 넘어 인프라 선점 능력으로 옮겨붙었다. 칩 부족 시대는 저물고, 거대한 에너지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가 생존을 결정짓는 ‘인프라 게임’의 시대가 열렸다. 독자들은 이제 칩의 성능보다는 그 칩이 꽂힐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망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