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전 선급금 4년 새 230% 급등…중국 바이오, 복제약 넘어 글로벌 혁신 허브로
지정학 리스크에도 화이자·로슈 공세 멈추지 않는 이유
지정학 리스크에도 화이자·로슈 공세 멈추지 않는 이유
이미지 확대보기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복제약이나 원료의약품 제조에 머물던 중국 바이오 산업이 항체-약물 접합체(ADC)를 비롯한 첨단 신약 연구에서 세계 최전선으로 올라서면서, 화이자(Pfizer)·일라이릴리(Eli Lilly)·머크(Merck) 등 글로벌 빅파마의 대(對)중국 기술도입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중국, 'ADC·이중항체' 임상 절반 장악…4년 만에 게임체인저로
과거 중국 제약 산업은 기술 혁신보다는 규모와 비용 경쟁력에 집중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바이오 생태계 육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고, 민간 투자까지 더해지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WSJ 취재에 응한 제약업계 컨설턴트는 "빅파마가 특정 신약 후보물질을 탐색할 때 중국 기반 기업의 자산을 반드시 들여다봐야 하는 구조적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의약품 데이터 분석기관 이밸류에이트(Evaluate) 자료에 따르면 서구권 빅파마와 중국 바이오텍 간 기술이전 계약 건수는 2022년 42건에서 2025년 93건으로 늘었고, 총 선급금 규모는 같은 기간 11억 달러(약 1조6300억 원)에서 56억 달러(약 8조3100억 원)로 약 400% 성장했다.
계약 한 건당 평균 선급금도 2022년 5200만 달러에서 2026년 현재 1억7200만 달러로 230% 올랐다.
혁신 기술의 중국 집중도는 특히 ADC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ADC·이중항체·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등 차세대 모달리티 임상 프로젝트의 약 절반이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이중항체 임상 프로젝트의 48%, ADC 51%, CAR-T 48%가 중국 자산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ADC는 암세포를 겨냥하는 항체와 화학요법제(항암제)를 결합한 차세대 항암 신약이다. WSJ에 따르면 기존 항암 화학요법에 비해 종양에만 약물을 집중 전달해 부작용을 크게 줄이는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로슈(Roche)는 면역관문 표적 ADC를 두고 중국 바이오텍 메드링크 테라퓨틱스(MedLink Therapeutics)에 단기 지급액 5억7000만 달러(약 8400억 원) 조건을 제시하며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ADC 시장이 2023년 86억 달러(약 12조7700억 원)에서 2030년까지 459억 달러(약 68조1800억 원)로 연평균 27%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빅파마, 파이프라인 고갈 공백 메우려 중국 기술 수혈
빅파마가 중국 바이오텍에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자사 연구·개발만으로는 신약 공급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는 현실이 깔려 있다.
WSJ 보도에 따르면 화이자·머크·일라이릴리 같은 대형 제약사들은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는 동시에, 가능성 있는 소규모 바이오텍의 신약 후보물질을 사들이거나 기술이전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파이프라인을 채워왔다.
기존에는 이 역할을 주로 미국 바이오텍이 담당했지만, 이제 중국 기업들이 상당 부분을 흡수하고 있다.
WSJ가 인용한 제약업계 컨설턴트는 "이제 미국이나 유럽의 바이오텍 기업에 투자하거나 기술이전을 검토할 때도, 해당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동일한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한다"고 말했다.
투자 대상 기업의 기술적 우위가 중국발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됐다는 뜻이다.
비용 측면의 매력도 크다. WSJ는 중국 기업과의 기술이전 계약 단가가 미국 기업과의 유사 거래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다.
빅파마 입장에서는 혁신성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창구인 셈이다.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는 2026년 글로벌 인수·합병(M&A) 보고서에서 중국을 "세계 수준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핵심 파트너"로 평가하면서, 지정학 리스크에도 완전 인수 대신 공동 개발·스핀아웃·옵션 계약 등 다양한 제휴 모델이 서구권으로 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보 우려·데이터 신뢰성 논란, 뜨거운 감자로
중국 바이오텍의 급부상은 미국 정계에서도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WSJ는 미국 정책 당국이 두 가지 측면에서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첫째는 세계 최강 수준이던 미국 바이오 생태계가 선두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경쟁적 위협이고, 둘째는 중국 기업의 임상시험에서 데이터 신뢰성 문제가 과거에 불거진 전례다.
미국의 생물보안법은 중국 바이오 기업의 미국 내 사업을 제한하기 위한 법안으로, 우시앱텍(WuXi AppTec)·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 등 주요 중국 기업을 직접 명시해 제재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증권업계에서는 "서구 기업들이 특정 신약후보물질을 탐색할 때 중국 기업 자산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중국 바이오텍 기술이전 밸류에이션이 새로운 기준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정학 리스크를 안고도 빅파마의 중국 기술 흡수가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 글로벌 신약 개발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미·중 협력 구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