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2026 아시아 부호 가문' 합산 962조 원…7년 만에 최대 상승폭
HBM4·로봇·알루미늄…'AI를 만드는 기업'보다 'AI를 돌리는 기업'이 더 벌었다
HBM4·로봇·알루미늄…'AI를 만드는 기업'보다 'AI를 돌리는 기업'이 더 벌었다
이미지 확대보기'AI 버블' 경고가 쏟아지는 지금, 역설적으로 AI와 가장 멀어 보이는 곳에서 가장 큰 돈이 벌리고 있다. 알루미늄을 녹이고, 반도체를 쌓고, 데이터센터 뼈대를 짓는 가문들이 그 주인공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13일(현지시각) '아시아 20대 부호 가문 2026' 보고서를 통해 이들 가문의 합산 자산이 6470억 달러(약 962조 원)로 1년 전보다 16% 늘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가 이 순위를 처음 집계한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총액이자 가장 가파른 연간 상승폭이다. 미·이란 갈등으로 글로벌 증시가 조정 국면에 빠진 와중에도 이 가문들의 자산은 오히려 불어났다.
왜 AI 개발사가 아닌 '공급상'이 더 많이 벌었나
이 가운데 가장 극적인 상승은 중국 장씨 가문(5위·447억 달러·약 66조 원)에서 나왔다. 이들이 이끄는 중국홍교그룹 주가는 지난해 약 200% 치솟았다.
알루미늄이 서버, 데이터센터, 전기차, 재생에너지 설비에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장씨 가문의 알루미늄 공장은 화웨이, 샤오미, 비야디(BYD) 등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에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싱가포르 IMD 경영대학원 마를린 딜만(Marleen Dieleman) 교수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각국 정부가 갈수록 자국 중심주의를 강화하면서 데이터센터와 생산 시설을 자국에 두려 한다"며 "이 가문들은 그 흐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00년대 초 닷컴 붐 때 인터넷 기업보다 서버 장비·광통신 케이블 업체가 더 먼저, 더 안정적으로 수혜를 입었던 구조와 닮아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자산 급증을 두고 '황금 삽' 효과, 즉 골드러시 때 금을 캔 광부보다 삽을 판 상인이 더 벌었다는 법칙이 AI 시대에 재현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 이씨 가문, HBM4로 엔비디아 공급망 복귀…현대차는 '로봇 플랫폼' 전환 승부
한국의 두 재벌 가문은 전략 방향이 갈리면서도 모두 AI 수혜의 중심으로 파고들고 있다.
삼성 이씨 가문(3위·455억 달러·약 67조 원)은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결정적 반전을 이뤘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4(6세대)를 세계 최초로 공급한 데 이어 AMD로부터도 HBM4 우선 공급사로 선정됐다.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연구개발(R&D) 투자로 110조 원 이상을 집행하기로 확정했다. 연간 투자액이 처음 100조 원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전영현 부회장은 "메모리, 파운드리(위탁생산), 첨단 패키징을 모두 갖춘 세계 유일의 반도체 회사로서 AI 반도체 시대 주도권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용 회장은 직원들에게 "과감한 혁신과 투자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현대차 정씨 가문(16위·217억 달러·약 32조 원)은 방향이 다르다. '자동차를 파는 회사'에서 'AI 기반 산업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정조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밝힌 125조 원 국내 투자 계획은 엔비디아와의 피지컬 AI(Physical AI) 협력 발표 직후 나온 것으로, AI·로봇·자율 제조 생태계를 위한 실질적 인프라 투자 로드맵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은 CES 2026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하고 2028년까지 연 3만 대 규모 로봇 생산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선 회장은 "데이터와 자본, 제조 역량을 갖춘 현대차그룹에게 AI는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1위 암바니, 170조 원 투자 선언…HBM 슈퍼사이클은 2027년까지 지속 전망
순위 1위는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의 암바니 가문으로 자산이 897억 달러(약 133조 원)에 달한다. 무케시 암바니 회장은 올 2월 향후 7년간 최대 1200억 달러(약 178조 원)를 AI 관련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석유 정제 재벌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사실상 국가 단위 자금을 쏟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25% 이상 성장해 약 975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계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2026년 HBM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58% 불어난 546억 달러(약 8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노무라증권은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경고음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HBM 공급 과잉으로 2026년 가격이 10%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도 삼성·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운영에 변수로 남아 있다.
'AI를 개발하는 기업'보다 'AI를 작동시키는 공급망'이 더 큰 부를 만들어냈다는 2026년의 기록은, AI 투자 전략을 세우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데이터로 떠오르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