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호주 수출입은행, 트로녹스·아르데아에 11억 달러 지원 확정
한국 희토류 수입 76% 급감 속 정제 기술 90% 중국 독점 여전
한국 희토류 수입 76% 급감 속 정제 기술 90% 중국 독점 여전
이미지 확대보기자원 전쟁의 승패가 더 이상 채굴량이 아니라 '누가 정제 기술을 손에 쥐느냐'로 갈리는 시대에, 이번 투자는 돈의 싸움을 넘어 기술 주권 쟁탈전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수출입은행(EXIM)과 호주 수출금융공사(EFA)가 광물 기업 트로녹스 홀딩스(Tronox Holdings)와 아르데아 리소시스(Ardea Resources)의 두 프로젝트에 합산 최대 11억 달러(약 1조 6370억 원)의 조건부 지원 서한을 공동 발행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해 백악관에서 체결된 미국·호주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기본 협정의 첫 번째 대형 실행 카드다.
두 프로젝트, 두 대륙: 투자 구조와 숫자
트로녹스 프로젝트에는 EXIM과 EFA가 각각 최대 4억 2400만 호주 달러씩을 지원해 합산 8억 4900만 호주 달러, 미국 달러 기준 약 6억 달러(약 8920억 원)를 투입한다.
트로녹스는 서호주(西濠洲)의 기존 광물사 인프라를 토대로 경희토류(LREE)와 중희토류(HREE)를 모두 포함하는 혼합 희토류 탄산염 생산을 추진하며, 현재 확정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트로녹스 경영진은 "방산, 에너지, 첨단기술 산업의 영구자석용 원료 공급망에서 선도적 역할을 맡을 기회가 열렸다"며 "호주·미국 정부와 두 수출신용기관의 지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 수혜 기업인 아르데아의 칼굴리 니켈 프로젝트는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호주 최대의 니켈·코발트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광물 매장량 8억 5400만t에 니켈 610만t, 코발트 38만 6000t이 매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스미토모 금속광산과 미쓰비시 상사가 생산량의 75%에 대한 구매 계약을 확보했으며, 오는 6월 확정 타당성 조사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EFA와 EXIM은 이 프로젝트에도 합산 최대 10억 호주 달러의 지원 서한을 발행했다.
이 밖에 알코아의 갈륨 회수 프로젝트, 아라푸라의 놀란스 희토류 프로젝트, 흑연·마그네슘·텅스텐 관련 사업도 이번 협력 틀에 포함됐다. 두 프로젝트를 합친 총 잠재 지원액은 11억 달러(약 1조 6370억 원)에 이른다.
왜 지금인가: 중국의 '0.1% 통제'가 한국을 직격한 이유
이번 투자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가 어떤 현실적 피해를 낳았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지난해 4월 중국이 디스프로슘, 테르븀 등 7종의 중희토류와 고성능 자석을 수출 허가제로 전환하자 한국으로 보내는 희토류 자석 수출이 76% 급락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희토류 금속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79.8%에 달한다.
충격은 가격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성능 자석에 쓰이는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은 두 달 만에 가격이 3배까지 올랐으며, 방산 부문 필수 소재인 이트륨은 같은 기간 약 6배 치솟아 1kg에 45달러(약 6만 6960원)를 기록했다.
더 심각한 것은 통제의 사정거리다. 중국은 자국산 희토류를 0.1% 이상 포함한 완성품을 제3국에 수출할 때도 중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역외 수출통제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적용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14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공정,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의 배터리 공급망이 이 통제망의 잠재 대상에 포함된다. 산업통상부는 우리 기업의 생산 활동에 차질이 없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급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돈으로 못 사는 것': 정제 기술이라는 20년의 벽
서방의 대규모 투자가 발표될 때마다 반복되는 냉정한 질문이 있다. "돈이 기술을 대신할 수 있는가?" 전문가들의 답은 회의적이다.
광물 시장 조사기관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서방 국가들은 중희토류 수요의 91%를 여전히 중국에 의존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관은 "브라질이 주요 중희토류 광석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진정한 과제는 처리 능력에 있다"며 "정제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겠지만 중국 정제 비용에 비해 다른 지역의 비용은 5배에서 7배 더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 F-35 스텔스 전투기 한 대에는 약 435kg의 희토류가 들어가며, 차세대 구축함에는 2~2.5t, 핵잠수함에는 약 1.5t이 사용된다. 모건스탠리는 향후 10년 동안 희토류 자석 수요가 3~5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정제 기술은 중국에 집중된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약 70%를 차지하지만, 자석이나 배터리 소재로 만드는 분리·정제 공정은 90% 이상 독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축적해온 중국의 화학 공정 노하우를 서방의 인력과 기술로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라며 "자체 정제 시설을 짓고 기술을 안정화하는 데만 최소 5~7년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국회미래연구원 김은아 연구위원은 "핵심광물은 더 이상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라 국가의 경제안보를 결정짓는 전략자산"이라며 "정부는 정제·제련·재활용·대체소재를 아우르는 통합적 자원안보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조 원짜리 시장, 한국이 서 있는 자리
2026년 글로벌 희토류 시장 규모는 약 76억 달러(약 1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트로녹스·아르데아 투자 외에도 브라질 세라 베르데 광업 기업에 5억 6500만 달러(약 8400억 원)를 대출하고 희토류 생산 권리를 확보하는 등 공급망 투자를 여러 대륙으로 동시에 넓히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오는 2027년 1월부터 중국산 희토류를 방산 조달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규정을 시행할 예정이어서, 이 시한은 서방 공급망 구축의 실질적 데드라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희토류 전쟁의 본질은 원광(原鑛)을 누가 더 많이 캐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쓸모 있는 소재로 바꾸느냐다. 이번 미·호주 1조 6370억 원 투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한 서방의 첫 번째 대형 실탄이다.
그러나 정제 기술의 벽이 허물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돈만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2030년에도 서방의 중희토류 91%를 중국이 쥐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 공급망 독립 선언이 현실이 되기까지 갈 길은 아직 멀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