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아라곤, ‘유럽의 버지니아’ 꿈꾸다 주민 공동체 붕괴 위기… 강제 수용권 남발 논란
일자리 6배 창출은 ‘신기루’?… 물 부족·전력난에 법적 대응 확산, 한국형 클러스터 반면교사
일자리 6배 창출은 ‘신기루’?… 물 부족·전력난에 법적 대응 확산, 한국형 클러스터 반면교사
이미지 확대보기블룸버그통신은 16일(현지시간) 아라곤 지역에 예정된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가 800억 유로(약 139조 원)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단일 지역 투자로는 유럽 최대 수준이다. 하지만 행정 편의를 앞세운 정부의 속도전이 주민들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며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일반 이익’ 명분 내세운 강제 수용… 붕괴하는 지역 공동체
아라곤 주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아라곤 일반 이익 프로젝트(PIGA)’가 갈등의 핵심이다. 2015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이 제도는 특정 사업에 ‘일반 이익’ 지위를 부여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금을 감면한다. 무엇보다 강력한 권한은 ‘강제 수용권’이다.
실제 아라곤 쿠아르테(Cuarte) 주민 파스 오르헤 아세비요 씨는 AWS 측으로부터 “4일 안에 토지 매각 의사를 밝히라”는 최후통보식 서신을 받았다. 아세비요 씨는 “지방 정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며 “수십 년간 가족이 채소를 가꾸던 땅이 하루아침에 강제 수용 대상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데이터센터 부지로 선정된 마을들은 현재 투기장으로 변했다. 토지 매입가는 1㎡당 2유로(약 3480원)에서 최고 23유로(약 4만 원)까지 10배 이상 널뛰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웃 간 불신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 효과 6배의 ‘신기루’… “남는 건 건설직뿐”
아라곤 주정부는 데이터센터 유치가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낙관한다. 마르 바케로 아라곤 부지사는 “데이터센터 일자리 하나가 지역 경제에 6개의 연쇄 일자리를 만든다는 미국 버지니아의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과 주민들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상시 인력은 극소수이며, 고용 효과의 75% 이상이 일시적인 건설직에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초기 가동 중인 AWS 데이터센터 3곳이 창출한 실질 일자리는 700~950명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 부족과 전력난… 환경 파괴 우려에 법적 대응
AI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자원 소비도 도마 위에 올랐다. AI 연산은 기존 컴퓨팅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모하며, 이를 식히기 위한 수냉식 냉각 시스템은 막대한 양의 물을 빨아들인다.
AWS는 최근 기후 변화를 이유로 허가된 용수 사용량 증액을 요청했다. 그러나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들은 농업용수 부족을 우려해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아라곤에는 향후 25개의 데이터센터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빌라마요르 등 인근 지자체들은 지방세 면제 혜택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국형 AI 클러스터가 가야 할 길
스페인 아라곤의 사례는 ‘K-반도체 전략’과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 중인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첫째, 행정 효율성과 주민 수용성의 균형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내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도 정부의 '속도전'이 지역 주민의 재산권을 무시한 채 진행될 경우, 이는 결국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법적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둘째, 실질적인 지역 경제 기여 방안이다. 단순 시설 유치를 넘어 설계·엔니지어링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자원 안보 확보가 필수적이다. 반도체와 AI는 결국 전력과 용수 싸움이다. 2nm 공정 등 첨단 공정 경쟁력은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의 지속 가능성에서 결정된다.
아라곤의 갈등은 이제 시작이다. 빅테크의 화려한 투자 수치 뒤에 숨겨진 지역사회의 희생을 외면한다면, AI 허브라는 청사진은 언제든 ‘모래성’으로 전락할 수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향후 글로벌 데이터센터 가동률과 함께 지역별 환경 규제 및 법적 분쟁 추이를 핵심 리스크 지표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