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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착시 효과 끝났다… 고유가에도 러시아 경제 '골든타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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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착시 효과 끝났다… 고유가에도 러시아 경제 '골든타임' 지났다

제조업·건설업 지표 일제히 마이너스… 노동력 증발과 증세가 '내상' 키워
시장 참여자들, 향후 부도율·통계 조작 여부 등 '3대 리스크' 주시해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 경제의 견고함은 '착시'였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이 러시아 재정에 막대한 오일머니를 수혈하고 있지만,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은 이미 터져나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 경제의 견고함은 '착시'였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이 러시아 재정에 막대한 오일머니를 수혈하고 있지만,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은 이미 터져나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 경제의 견고함은 '착시'였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이 러시아 재정에 막대한 오일머니를 수혈하고 있지만,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은 이미 터져나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18(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의 주요 산업 생산 지표가 일제히 하향 곡선을 그리며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방의 제재를 버텨온 러시아의 '전쟁 경제'가 더는 지속 불가능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진단이다.

'전쟁 경제'의 역설… 제조업·건설업 '빨간불'


러시아 경제의 경고음은 최고위층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크렘린궁 회의에서 제조업, 산업 생산, 건설업 등 국가 경제의 뼈대인 핵심 분야가 모두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음을 시인했다. 러시아 경제는 올해 들어 두 달 연속 역성장을 지속하며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이는 이란 전쟁발() 유가 급등세가 러시아 재정을 일시적으로 지탱하고 있음에도 발생하는 현상이다. 경제가 오직 전쟁 물자 생산에만 매몰되면서 민간 경제의 활력은 고사(枯死)했다. 정부의 강압적인 통제와 공포 정치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었고, 이는 소비재 생산 감소와 인플레이션 가속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러시아 국립은행이 집계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9%에 달하는 상황에서, 민간의 실질 구매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 이는 공식 수치일 뿐, 실제 체감 물가는 훨씬 높다. 생필품값 폭등으로 중산층은 붕괴 직전이며, 전쟁 비용 조달에만 급급한 정부 탓에 서민들의 밥상 물가는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

노동력 증발과 '증세'의 덫… 기업 4곳 중 3"생존 불안"


푸틴 정부 전비 조달 전략은 기업 숨통을 죄고 있다. 부가가치세(VAT)를 기존 20%에서 22%로 인상하고 과세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결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조세 압박이 수십만 개의 중소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중소기업 중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곳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내수 기반이 붕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현대 러시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노동력 부족 사태가 경제를 짓누른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 징집을 피해 해외로 탈출한 숙련된 기술 인력의 이탈이 겹치면서 생산 현장은 구인난에 허덕인다. 숙련공의 부재는 산업 경쟁력을 뿌리째 흔든다. 군수 산업이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민간 생산성은 곤두박질쳤고, 인건비 급등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고착화했다. 이는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마저 앗아간 치명적인 내상이다.

여기에 푸틴 정부는 경제 성적표가 나빠질 때마다 무역 흐름과 기업 재무 정보 등 핵심 지표의 공개를 차단하고 있다. 통계를 장악해 시장의 눈을 가리는 '정보 통제' 전략은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의 탈출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이란 전쟁 '특수'와 러시아의 딜레마, 수출량 급증과 제재의 이중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며 러시아 원유 수출 수입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러시아의 월간 에너지 수익은 일시적으로 2배 가까이 급증하며 전체 재정의 약 40%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물량은 인프라 타격 등으로 불안정하지만, 가격 급등 효과가 이를 압도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여전히 강력하다. 미국과 EU'그림자 선단(Shadow Fleet)' 규제와 세컨더리 제재를 통해 우회 수출길을 옥죄고 있다. 일시적 '오일 머니' 유입으로 재정 공백을 메우고 있으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기술·금융 봉쇄는 러시아의 장기 생산 역량을 좀먹는 시한폭탄이다. 고유가 착시 속에 가려진 경제 붕괴는 현재 진행형이다.

러시아 리스크, '오일머니' 소진 시점에 주목하라


전쟁과 고립을 동시에 감당하는 러시아 경제의 균열은 에너지 시장과 글로벌 공급망에 예고 없는 충격을 줄 수 있다. 시장 참여자와 투자자는 러시아가 더 이상 유가에만 의존할 수 없는 시점이 올 때를 대비해야 한다. 러시아발 리스크를 판별할 핵심 지표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제조업 및 건설업 생산지수다. 이 지표가 장기적 마이너스 흐름을 보인다는 것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이 회복 불가능한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강력한 신호다. 둘째, 중소기업 부도율과 조세 수입 변동이다. 세수 확보를 위한 증세가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는 순간, 러시아 내수 경제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셋째, 정부의 통계 은폐 범위다. 비공개 항목이 늘어날수록 경제 실상은 공식 수치보다 훨씬 더 악화했음을 방증한다.

'오일 머니'라는 일시적 부양책이 소진될 때, 통제와 강압으로 지탱해 온 푸틴 경제 모델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고유가 착시 현상 뒤에 가려진 러시아 경제의 '내상'이 언제 터질지, 이제 시장은 그 임계점을 주시하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