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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슈퍼사이클 닷컴버블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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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슈퍼사이클 닷컴버블 역사의 교훈

반도체 평균 판매 단가(ASP) vs 자본지출 (CAPEX) 의 비밀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반도체가 정말 뜨겁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반도체라는 단어가 대중의 삶과 자본의 흐름을 지배했던 적은 없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어 올린 반도체 ‘슈퍼 사이클’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을 천문학적인 숫자로 불려 놓았다. 이 상승장은 과연 영원히 지속될 것인가? 그동안의 경기 변동의 역사는 슈퍼 사이클도 언젠가는 조정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자본주의의 사이클은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하강의 중력을 마주하게 된다.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그 반도체로 인공지능 인프라를 갈고 있는 기업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이는 곧 슈퍼 사이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2000년 닷컴 버블의 붕괴가 그 단적인 예이다.

지금의 반도체 경기를 주도하는 것은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AI 연산을 위해 필수적인 이 고부가 제품은 일반 D램보다 몇 배나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 바람에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이익률은 폭발하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평균 판매 단가(ASP)’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 전체에서 HBM은 전체 비트(Bit) 출하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매출을 차지하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의 수요는 가계의 구매력 저하와 스마트폰·PC 시장의 정체로 인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정 고가 제품이 전체 지표를 끌어올리는 ‘K자형 양극화’는 공급 망에 작은 균열만 생겨도 전체 이익이 급락하는 취약한 구조를 만든다. 공급 과잉이 시작되는 순간 가격 하락의 속도는 상승의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를 수 있다.

반도체의 ‘초격차’는 이제 더 이상 난공불락의 성벽이 아니다. 미국의 강력한 대중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CXMT(창신메모리)와 SMIC는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추격해오고 있다. 첨단 나노 공정에서는 아직 격차가 존재한다고 자위할 수 있으나, 자동차나 가전, 산업용 기기에 쓰이는 성숙 공정(Legacy Process) 시장은 이미 중국의 저가 공세에 무너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범용 제품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한국 기업들은 이익의 원천인 ‘볼륨(Volume) 시장’을 잃게 된다. 이는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자금을 레거시 제품에서 충당하던 선순환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후발주자의 추격은 단순한 점유율 하락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이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쏟아붓는 자본지출(CAPEX) 규모는 광기에 가깝다. 이들이 엔비디아의 GPU와 한국의 HBM을 싹쓸이하며 시장을 견인하고 있으나, 시장은 이제 냉정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막대한 투자는 언제 돈으로 돌아오는가?" 닷컴 버블 당시에도 인프라 투자는 활발했으나, 이를 활용한 수익 모델이 뒷받침되지 못했을 때 거품은 순식간에 꺼졌다. 현재 AI 서비스를 통한 실질적인 수익(ROI) 창출은 인프라 투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주주들로부터 수익성 압박을 받는 순간, 그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반도체 주문을 줄이고 재고 조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과잉 투자’ 구간에서 ‘긴축’으로 넘어가게 될 때, 반도체 슈퍼 사이클은 재앙의 서막으로 변할 수 있다.
거시경제 환경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 고금리의 장기화는 반도체와 같은 장치 산업에 독이다. 수조 원이 투입되는 팹(Fab) 건설 비용과 운영 자금의 이자 부담은 기업의 순이익을 압박한다. 또한 소비자의 가처분 소득 감소는 반도체 전방 산업의 수요를 위축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여기에 물리적 한계라는 벽도 기다리고 있다. 2nm, 1.4nm로 진입할수록 회로 선폭을 줄이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그에 따른 성능 향상 폭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무어의 법칙’의 종말이다. 수율(Yield) 확보를 위해 투입되는 천문학적 비용이 제품 판매 수익을 앞지르게 되는 ‘기술 비용의 역설’은 기업들의 마진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다.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은 ‘전력’이다. AI 데이터센터는 가히 ‘전기 먹는 하마’라 할 만하다. 아무리 뛰어난 반도체가 있어도 이를 가동할 전력 그리드(Power Grid)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데이터센터 증설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주요 국가의 노후화된 전력 인프라와 에너지 수급 문제는 반도체 수요의 병목 현상을 초래할 강력한 복병이다. 또한, 대만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와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분절은 반도체 사이클의 예측 가능성을 무력화시킨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TSMC가 위치한 대만 해협의 정세 불안은 언제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블랙아웃’을 가져올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반도체 사이클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어쩌면 미래의 수요를 미리 끌어다 쓰고 있는 ‘외상 파티’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단순히 사이클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파고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격차’의 기술적 해자를 구축하는 것이다. 투자자들 역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나 기업의 분기 실적이라는 화려한 숫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숫자를 만드는 ‘자본지출의 지속 가능성’과 ‘에너지 인프라의 한계’, 그리고 ‘지정학적 역학 관계’라는 본질적인 변수를 읽어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상승장이 영원할 것이라는 오만이 시장을 지배할 때 위기는 소리 없이 찾아온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