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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기기 슈퍼사이클, 변압기 2.5년 기다리는 미국… 그 돈, 고스란히 한국 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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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기기 슈퍼사이클, 변압기 2.5년 기다리는 미국… 그 돈, 고스란히 한국 기업으로

HD현대·효성·LS 합산 영업이익 3조 원 돌파 임박… 수주 잔고 3~4년 치 쌓여
앨라배마·테네시 현지 공장까지 갖춰 '바이 아메리칸' 장벽도 넘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24개 주가 올여름 정전 위기에 몰렸다. 변압기를 주문해도 2년 반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서, 한국의 전력기기 3사가 수년 치 수주 잔고를 쌓으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구조적 전력난이 한국 산업에는 황금 수요로 전환되는 역설적 국면이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50개 주 가운데 24개 주가 올여름 정전 위기에 몰렸다. 변압기를 주문해도 2년 반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서, 한국의 전력기기 3사가 수년 치 수주 잔고를 쌓으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구조적 전력난이 한국 산업에는 황금 수요로 전환되는 역설적 국면이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 50개 주 가운데 24개 주가 올여름 정전 위기에 몰렸다. 변압기를 주문해도 2년 반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서, 한국의 전력기기 3사가 수년 치 수주 잔고를 쌓으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구조적 전력난이 한국 산업에는 황금 수요로 전환되는 역설적 국면이다.

북미전력계통신뢰성기구(NERC)2026년 장기 신뢰성 평가 보고서에서 이번 여름 미국 내 24개 주가 전력 부족에 따른 정전 위험 상태(Elevated Risk)에 처해 있다고 공식 경고했다. 일기 예보 수준의 예측이 아니라, 연방 차원의 계통 붕괴 경보다. 2035년까지 미국의 최대 전력 수요는 여름 224기가와트(GW), 겨울 246GW 증가할 전망이다. 수십 년간 정체했던 수요가 10년 안에 20~25% 급증한다는 의미다.

세 가지 동시 충격… 미국이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


미국 전력난의 뿌리는 세 갈래가 동시에 터지면서 서로를 악화시키는 구조에 있다.

첫 번째 충격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의 수직 상승이다. AI 부문에서만 오는 2028년까지 50G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 뉴욕시 최대 수요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NERC는 중서부 지역 한 곳에서만 2035년까지 18GW 이상의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식 원자력발전소 10기를 넘는 분량이다.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버지니아·펜실베이니아(PJM) 지역은 2029년까지 위험도가 '고위험'으로 격상될 것으로 NERC는 내다봤다.

두 번째 충격은 기저부하 발전소의 동시 퇴장이다. 석탄·가스 등 상시 가동 발전소 105GW 규모가 환경 규제와 경제성 악화로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이를 대신하는 태양광·풍력은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이 요동치기 때문에, 발전 용량이 늘어도 전력망 안정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치명적인 충격은 송전망 자체의 붕괴 위험이다. 미국 송전망의 약 70%가 설치 후 25년을 넘겼고, 변압기 대부분은 설계 수명인 30~40년을 이미 초과했다. 전력을 생산해도 이를 실어 나를 기반시설이 먼저 주저앉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 전력망은 마치 80대 고령의 몸으로 당장 마라톤(AI 수요)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다.

128주의 기다림… 미국 제조업체가 막힌 사이 한국이 파고들었다

미국 현지 제조업체들은 이 수요를 감당할 역량 자체가 없다. GE·이튼(Eaton) 등 주요 업체의 표준 전력용 변압기 인도 기간은 현재 평균 128(26개월)에 달한다. 발전소용 승압 변압기는 144(210개월)를 넘고, 특수 주문은 4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변압기 핵심 소재인 방향성 전기강판(GOES)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은 클리블랜드-클리프스(Cleveland-Cliffs) 단 한 곳이다. 원자재 조달이 한 기업에 묶인 구조에서 납기 단축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의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이 이 공백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증권가에서는 이 세 기업의 2026년 합산 영업이익이 3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미국 인프라 개발사와 6000억 원 규모의 단일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수주 잔고는 3~4년 치에 달한다. 경쟁력은 납기에만 있지 않다.

초고압 변압기(UHV)와 차세대 직류 송전(HVDC)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갖췄고, 설계·조달·시공(EPC)을 아우르는 일괄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단순 기기 납품업체가 아닌 전력망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이른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리스크도 이미 선제적으로 해소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앨라배마에, 효성중공업은 테네시에 현지 생산 거점을 가동하거나 증설 중이다. 법적·정책적 장벽이 오히려 후발 경쟁자를 걸러내는 진입 장벽으로 작동하는 상황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판매자 우위 시장(Seller's Market)이 고착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납기 프리미엄과 기술 프리미엄을 동시에 얻고 있다.

특히 전력 기기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구리(Copper) 가격 변동분을 계약 금액에 반영하는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조항을 통해 원재료 리스크를 고객사로 전가하고 있으며, 향후 원자재 가격 하락 시에는 이미 확보한 높은 수주 단가가 고정되어 마진율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수익 구조를 갖췄다.

다만 리스크도 직시해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정책 기조가 바뀌거나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질 경우, 수주 잔고 소진 이후 신규 계약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전력 기기 교체 주기가 30년 이상이라는 특성상 단기 수요 조정보다는 중장기 구조적 수요가 우위에 있지만, 단가 협상력 유지 여부는 지속적으로 점검이 필요하다.

이 슈퍼사이클의 지속성을 가늠하려면 세 개의 숫자를 함께 봐야 한다. 첫째, 미국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설비투자(CAPEX) 집행 속도. 둘째, 미국 에너지부(DOE)의 송전망 현대화 예산 실집행 규모. 셋째, NERC 연간 신뢰성 평가에서 고위험 주 숫자의 변화 방향이다. 이 세 지표가 꺾이지 않는 한, 한국 전력기기 업체들의 수주 잔고는 계속 쌓인다.

미국의 전력망 위기는 최소 10년짜리 구조 문제다. 그 해답의 상당 부분을 한국 공장이 만들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