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ASML '치외법권' 반발… "동맹 경제주권 침범" 정면충동
'AS 중단' 현실화 땐 수율 급락 불가피… HBM 격차 확대 '기회론'도
'AS 중단' 현실화 땐 수율 급락 불가피… HBM 격차 확대 '기회론'도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이 자국 기술을 사용한 타국 제품까지 통제하는 '치외법권' 카드를 꺼내 들며 미중 반도체 전쟁이 동맹국 간의 정면충돌로 번지고 있다. 세계 최대 노광장비 기업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가 미국의 추가 제재안에 공식 항의하며 '반도체 동맹'에 균열이 생기자, 중국 생산 거점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급망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정부가 ASML의 중국 내 장비 판매 및 사후 서비스(AS)를 추가 제한하려는 미국의 법안에 공식 이의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쇼에르드 쇼에르즈마 네덜란드 무역부 장관은 서면 답변에서 "미국 제안에 내재한 치외법권 효과에 반대한다"며 "각국은 자체 수출 통제 법률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매치법’ 압박… ASML 중국 매출 33% → 20% 급락 위기
미국 의회가 추진 중인 ‘다자간 하드웨어 기술 통제 정렬법(MATCH Act·매치법)’은 ASML에 치명적이다. 이 법안은 사실상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을 장비 유지보수 영역까지 확장한 것으로,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원천 기술이 포함된 장비라면 제3국 제품이라도 미국의 허가 없이 중국 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2025년 33%에서 2026년 20%대로 추락할 전망이다. 실제 2026년 1분기 중국의 네덜란드산 노광장비 수입액은 전년 대비 24.3% 급감했다.
고마진 사업인 유지보수 서비스가 막힐 경우 ASML의 현금창출원(Cash Cow)이 훼손되어 차세대 극자외선(EUV) 연구개발 투자 여력까지 위축될 수 있다. 쇼에르즈마 장관은 "이러한 광범위한 조치는 기업의 시장 지위를 약화하고 무역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것"이라며 미국의 독자적인 규제 강화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삼성·SK '샌드위치' 리스크… "점진적 수율 침식의 공포"
네덜란드 정부의 이례적인 강경 대응은 미국 주도의 '칩4(Chip 4)' 동맹 내부의 갈등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의 40%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우시에서 D램의 40% 이상을 제조하는 SK하이닉스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반도체 장비는 도입 후에도 지속적인 부품 교체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필수적인 '생물'과 같다. 서비스 중단이 즉각적인 라인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밀도가 떨어지며 수율 하락 → 원가 경쟁력 붕괴 → 생산 기지 기능 상실로 이어지는 '점진적 침식'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중국 역시 SMEE(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통한 노광장비 국산화와 기존 장비의 부품 돌려막기(Cannibalization)로 대응 중이지만, 초정밀 공정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위기 속의 반전… HBM 격차 확대의 '기회' 될까
반면 일각에서 이번 갈등이 한국 기업의 기술 격차를 공고히 할 기회라는 낙관론도 제기한다. 주력 성장 동력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전량 국내에서 생산되어 규제 영향이 거의 없는 데다, CXMT 등 중국 경쟁사들의 HBM 시장 진입이 장비 수급난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특히, 중국발 저가 범용 메모리의 생산 차질은 글로벌 메모리 업황의 반등 속도를 가속화하는 '역설적 수혜'로 작용할 수 있다.
동맹국 간의 파열음 역시 협상 과정의 진통일 뿐, 결국 공동 안보를 위한 합의점에 도달해 공급망 리스크가 관리 가능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중립적 시각도 존재한다.
투자자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3대 지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분절화 위기 속에서 투자자가 주시해야 할 포인트는 명확하다.
첫째, 미국 매치법 입법 속도와 유예기간(Waiver)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초당적 지지를 받는 이 법안이 최종 통과될 경우, 삼성·SK에 대한 예외 조항 포함 여부가 핵심 변수다.
둘째, 네덜란드 무역장관의 방중 결과도 지켜봐야 한다. 제재 당사자인 쇼에르즈마 장관이 중국 방문을 통해 유럽 독자 노선을 구축할지 여부가 중요하다.
셋째, 메모리 현물 가격 추이다. 중국 내 생산 차질 우려가 선반영될 경우, 단기적으로 낸드와 D램 가격이 급등하며 메모리 섹터의 단기 모멘텀이 될 수 있다.
반도체 패권 전쟁이 '안보'라는 명분과 '수익'이라는 실리 사이에서 전례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치외법권적 압박이 네덜란드의 국익을 건드린 지금,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안보'라는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전례 없는 분절화 위기를 맞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