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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열전] 그레그 아벨... 버핏 지수 사망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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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열전] 그레그 아벨... 버핏 지수 사망선고?

구글 기술주 투자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워런버핏 은퇴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가치투자 위주의 투자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일까. 워런버핏의 후계자 그레그 아벨이 가치투자와는 거리가 먼 구글 기술주에 대규모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 전략이 주목을 끌고 있다. 버핏의 공식 후계자인 새 CEO 그레그 아벨(Greg Abel)은 알파벳(구글)이 단행한 8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유상증자에 무려 100억 달러(약 13조 7천억 원)를 투입하는 거대한 승부수를 던졌다.

거시경제의 경고등으로 통하는 '버핏 지수(Buffett Indicator)'가 역사적 고점을 뚫고 새빨간 경고음을 내뿜고 있다. 주식 시장의 총 시가총액이 실물 경제인 명목 GDP의 규모를 크게 초과하며, 자산 밸류에이션의 거품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냉혹한 신호다. 이 와중에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킨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버핏지수의 이 지표의 창시자인 워런 버핏의 제국, 버크셔 해서웨이가 시장이 고평가되었다는 스스로의 잣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공격적인 주식 매수에 나선 것이다.

버핏 지수가 붕괴를 경고하는 와중에, 정작 버핏의 후계자는 막대한 자금으로 주식을 쓸어 담고 있는 이 기막힌 모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산 가격의 거품 논란이 일고 자본의 이동이 극도로 예민해진 작금의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조타수의 철학과 이력을 해부하는 것은 다가올 산업 지형을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 된다. 1조 달러 규모의 버크셔 제국을 짊어질 조용한 거인, 그레그 아벨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1962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태어난 그레그 아벨의 궤적은 여느 엘리트 금융인들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아이비리그의 화려한 간판이나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의 딜 메이커(Deal Maker) 출신이 아니다. 앨버타 대학교에서 상경학을 전공한 뒤 공인회계사(CPA) 자격을 취득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샌프란시스코 사무소에서 시작된 그의 초기 경력은 철저하게 기업의 재무제표와 현금흐름의 바닥을 훑고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회계사로서의 DNA는 그가 훗날 버크셔 해서웨이의 방대한 자회사를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장부상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기업이 창출하는 진정한 잉여현금흐름(FCF)과 내재가치를 발라내는 능력은 이때 완성되었다. 1992년, 지열 에너지 기업인 칼에너지(CalEnergy)로 자리를 옮기며 그는 본격적으로 실물 경제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이 회사가 미드아메리칸 에너지(MidAmerican Energy)로 사명을 바꾸고 1999년 워런 버핏에게 인수되면서, 아벨과 버크셔 제국의 운명적인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는 2008년 미드아메리칸 에너지의 CEO에 오르며 자신의 진가를 폭발시켰다. 훗날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HE)로 탈바꿈한 이 기업을 미국 최대의 유틸리티 및 인프라 제국으로 키워낸 것이다.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가 한계에 직면할 것을 꿰뚫어 보고,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 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 확충에 수백억 달러를 과감하게 선제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단호한 결단력과 10년 뒤의 확실한 현금흐름을 창출해 내는 장기적인 안목은, 왜 버핏이 그를 찰리 망거 부회장과 비견할 만한 완벽한 후계자로 낙점했는지를 증명한다.

알파벳의 800억 달러 규모 유상증자에 100억 달러를 태운 버크셔 해서웨이의 결정은 그레그 아벨의 투자 철학과 시장을 바라보는 렌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현재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엔비디아의 GPU를 싹쓸이하며 데이터센터 건립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여기에는 거시경제학적 딜레마가 숨어 있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당시, 미래의 인터넷 수요를 맹신한 기업들이 앞다투어 광케이블과 네트워크 장비에 중복 발주를 내며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낸 바 있다. 현재의 폭발적인 AI 칩 수요 역시 최종 소비자의 실질적 수요라기보다는 빅테크 간의 생존 경쟁이 빚어낸 일종의 '반도체 착시 현상'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거품이 붕괴될 경우, 맹목적으로 투입된 막대한 자본 지출(Capex)은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매몰 비용으로 전락하게 된다.

에너지와 인프라의 전문가인 아벨의 시각은 다르다. 그가 주도했을 이번 구글 투자는 단순한 AI 테마 추종이 아니다. 기술 산업 발전사를 관통하는 '초격차 역사의 교훈'에 철저히 기반한 계산된 승부수다. 알파벳은 외부의 칩 공급망에만 기대지 않고 십여 년 전부터 자체 맞춤형 반도체(TPU)를 설계해 왔다. 이는 공급망 병목이라는 거시적 리스크를 내부에서 헤징(Hedging)할 수 있는 강력한 방패다.아벨은 알파벳이 짓고 있는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파워를 단순한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아닌, 다가올 21세기 디지털 경제를 떠받칠 '필수 전력망'과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독점적인 플랫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현금 창출력이 이 거대한 인프라 투자의 재무적 마찰을 상쇄할 수 있다면, 단기적인 주가 희석이나 자본 비용의 상승은 충분히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핏 지수가 붉은빛을 발하는 과열 국면에서도, 내재가치(Intrinsic Value)의 근본인 '장기 현금흐름 창출 능력'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자본을 밀어 넣는 특유의 기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레그 아벨은 버크셔 산하의 비보험 부문 부회장으로서 철도(BNSF), 유통, 소비재, 제조업 등 실로 방대하고 이질적인 90여 개의 실물 자회사를 총괄하고 있다. 한 명의 인간이 이 거대한 조직을 무리 없이 이끌어가는 비결은 버핏과 찰리 망거의 경영 철학을 완벽하게 체화한 '극단적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리더십에 있다.그는 자회사 CEO들의 경영 판단에 일일이 간섭하는 미시적 통제(Micromanagement)를 철저히 배격한다. 본사의 역할은 오직 각 기업이 창출한 잉여 자본을 그룹 차원의 최적의 투자처에 재배치하는 '자본 배분'과, 그룹 전체의 운명을 가를 '치명적 리스크의 통제'에 국한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회사가 위기에 처하거나 경영진이 조언을 구체적으로 요청할 때, 아벨은 회계사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꿰뚫고 가장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아벨에게 보고서를 올리면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완벽한 피드백이 돌아온다"는 자회사 경영진들의 증언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현장의 숫자를 장악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시장 일각에서는 천재적인 영감과 촌철살인의 유머로 대중을 매료시켰던 워런 버핏에 비해,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사생활을 보호하며 오직 일에만 파묻혀 지내는 아벨의 '무색무취'함을 약점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화려한 달변으로 주주들을 열광시키는 스타 CEO의 면모는 확실히 그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그러나 자본주의의 거시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오히려 그의 이러한 진중함이야말로 다가올 버크셔 해서웨이에 가장 필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인플레이션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시대, 기업의 생존은 더 이상 장밋빛 비전이나 화려한 수사가 아닌 혹독한 재무 건전성과 대체 불가능한 실물 인프라 장악력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금 가치투자의 낭만 시대를 이끌었던 거장의 퇴장과, 철저한 시스템과 숫자로 기업의 영속성을 담보하려는 냉철한 관리자의 등장을 동시에 목도하고 있다. 포스트 버핏 시대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아벨의 지휘 아래 거시 경제의 파고를 넘을 더 거대하고 단단한 '실물 인프라의 성채'로 진화할 것이다. 버핏 지수의 붉은 경고등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본의 최적점을 찾아내는 이 조용한 거인의 묵묵한 행보를 글로벌 금융 시장이 숨죽여 지켜보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