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급등에 대해 발언하며 남긴 대단히 이례적인 역설적 표현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2% 급등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6년 초 발생한 이란과의 군사 충돌 장기화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전년 대비 23.5% 폭등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압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기자가 물가 우려를 질문하자 트럼프는 듣기에 따라 엉뚱할 수 있는 답변을 했다.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수치가 훌륭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게 뭔지 아는가? 나는 인플레이션을 사랑한다(I love the inflation)." 정치적 자살골에 가까운 이 발언은 이후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트럼프가 이어간 발언을 통해 그가 의도한 거시경제적·지정학적 계산을 읽을 수 있다. 트럼프는 인플레이션 수치 자체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번 물가 상승이 구조적 결함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일시적 충격'일 뿐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전쟁만 끝나면 물가는 즉각 급락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트럼프는 발언 직후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레이더망을 무력화하고 밤사이 유조선 22척을 빼내는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 공급망 확보 덕분에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가 아닌 85~90달러 선에서 방어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현재의 물가 지표가 선방한 결과라는 논리를 펼쳤다.
통화정책 측면에서 이 발언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내정된 케빈 워시(Kevin Warsh)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워시 내정자는 현재의 물가 상승을 '에너지 충격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시사해 왔다. 트럼프 역시 고물가 지표에 개의치 않고 연준을 압박해 유동성 공급(금리 인하)을 관철시키겠다는 정무적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사랑 발언 이후 미국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고물가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지갑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며 즉각 선거 광고용 공세에 나섰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트럼프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꺾이게 될 인플레이션의 수치적 특성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맥락이 왜곡되었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발언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감세와 금리 인하라는 자신의 경제 드라이브를 정당화하기 위해 물가 지표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트럼프 특유의 어법이 낳은 파장이다.
이러한 ‘고물가-저금리’ 처방은 인류 경제사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가장 극단적이고 전면적인 형태로 이를 실행에 옮겼던 인물이 바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튀르키예) 대통령이다. 이른바 '에르도안노믹스(Erdoganomics)'로 불리는 이 실험은 "고금리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며, 금리를 낮춰야 물가가 잡힌다"는 기상천외한 논리에 기반했다.
트럼프의 역설과 에르도안의 실험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금리 인하로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의 구조는 과연 유효한가, 아니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인가.' 본 칼럼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내포한 이론적 구조를 해부하고, 그것이 현실 시장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실증적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통화학파(Monetarism)적 관점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내린다는 발상은 신성모독에 가깝다. 밀턴 프리드먼의 격언대로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와 에르도안, 그리고 비전통적 경제학자들이 공유하는 '저금리 처방론'의 이면에는 나름의 정교한—혹은 아전인수격인—인과관계의 구조가 존재한다. 이들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지탱된다.
첫째, 공급 측면의 비용 압박(Cost-Push) 완화론
둘째, 네오 피셔리즘(Neo-Fisherism)의 전도된 해석
현대 거시경제학의 한 갈래인 네오 피셔리즘은 명목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동행 관계를 보여주는 '피셔 방정식'(R=r+π 여기서 R은 명목금리, r은 실질금리, π는 인플레이션)을 독특하게 해석한다. 실질금리가 장기적으로 일정하다면, 명목금리를 낮출 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장기적으로 낮아진다는 가설이다. 에르도안은 이를 극단적으로 신봉하여,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말살하면서까지 명목금리 인하를 강제했다. 고금리 자체가 물가를 유인하는 '비용'이므로, 금리를 내리면 물가 지표 역시 하락 기조로 수렴할 것이라는 맹신이었다.
이 구조의 가장 심층에는 정치적·재정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고부채 사회에서 고금리는 정부의 이자 부담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이는 다시 세금 인상이나 국채 발행 확대로 이어져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반면 저금리를 유지하면 정부와 기업의 부채 비용이 통제되므로,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생산성을 보존해 물가 급등의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트럼프가 차기 연준 의장에게 완화적 기조를 압박하는 궁극적인 궤적도 미국의 가공할 만한 국채 이자 부담을 경감시키려는 목적과 닿아 있다.
이러한 이단적 논리가 현실 세계에서 전면적으로 구현되었을 때 어떤 참상이 벌어지는지는 튀르키예의 사례가 명명백백하게 증명한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통 경제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초유의 실험을 감행했다. 에르도안은 금리를 대폭 인하하면 생산과 수출이 늘어나 리라화 가치가 안정되고 물가가 잡힐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확히 반대로 가동되었다. 금리가 인하되자마자 시장의 주체들은 리라화를 던지고 달러, 유로, 그리고 금(Gold)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자본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리라화 가치는 폭락했고, 이는 수입 물가의 살인적인 폭등으로 직결되었다.
에르도안의 가설과 달리, 금리 인하로 인한 금융비용 절감 효과는 통화가치 폭락에 따른 '수입물가 폭등 충격'에 흔적도 없이 상쇄되었다. 리라화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터키 국민들은 매일 아침 상점의 가격표가 바뀌는 초인플레이션의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결국 2023년 대선 이후 에르도안 체제는 백기를 들고 기준금리를 50%대까지 끌어올리는 정통적 긴축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실험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통화 가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의 저금리는 물가 안정이 아닌, 화폐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인플레 사랑' 어법과 에르도안의 실험이 공유하는 저금리 처방론은 거시경제학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을 간과한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다. 통화정책의 성패는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와 그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 좌우된다.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정무적 압력에 의해 금리를 낮추거나 방치하면, 경제 주체들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을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 순간 기대인플레이션(πe) )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솟는다. 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제품 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리는 '임금-물가 악순환(Wage-Price Spiral)'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낮은 '마이너스 실질금리' 상태가 지속되면, 화폐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잃는다. 은행에 돈을 넣어둘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에 현금은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이나 실물자산으로 전방위적으로 도피한다. 이는 실물 경제의 공급 능력 확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산 시장의 투기적 버블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 주거비와 서비스 물가를 다시 끌어올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저금리가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해 공급을 늘린다는 가설은 이론적으로 가능할지언정, 치명적인 '시차'를 무시한 발상이다. 금리를 내려 기업이 공장을 짓고 제품을 대량 생산하여 시장에 공급하기까지는 수년의 세월이 걸린다. 반면, 저금리로 인해 풀려나간 유동성이 소비 수요를 자극하는 속도는 즉각적이다. 공급이 늘어나기 전에 수요가 먼저 폭발하므로, 단기적으로 물가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의 "인플레이션을 사랑한다"는 역설적 발언은, 현재 이란 발 지정학적 위기로 4%대 고물가 충격을 맞이한 미국 경제를 향해 매우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호기가 아니라,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 체제를 내세워 뉴욕 증시의 호황을 유지하고, 고금리로 인한 연방 정부의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인플레이션과의 타협'을 선언한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다.에르도안의 참혹한 실험이 보여주었듯, 통화정책의 기초체력을 무시한 채 정무적 이익을 위해 금리를 낮춰 물가를 잡겠다는 발상은 거대한 경제적 신기루에 불과하다. 공급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라 할지라도, 완화적 통화정책이 결합하는 순간 물가는 구조적 괴물로 진화한다.
미국 경제가 트럼프 특유의 아전인수식 낙관론과 이단적 통화 기조에 취해 기대인플레이션의 고삐를 놓친다면, 그 대가는 리라화의 폭락을 겪은 튀르키예의 비극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금리는 경제의 중력이자 화폐의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중력을 무시하고 공중정원을 짓겠다는 트럼프의 '인플레 사랑'이 과연 뉴욕 증시의 영원한 축제가 될지, 아니면 달러 패권의 근간을 흔드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 세계 경제는 지금 가장 위험한 실험대를 목격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