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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제이미슨 그리어 "모르몬 신도 트럼프 관세폭탄 1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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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제이미슨 그리어 "모르몬 신도 트럼프 관세폭탄 1인자"

제이미슨 그리어(Jamison Greer)
그리어  미국 USTR 무역대표/ 미국 무역대표부 이미지 확대보기
그리어 미국 USTR 무역대표/ 미국 무역대표부
[인물 탐구] 트럼프 2기의 실질적 통상 사령탑, 제이미슨 그리어(Jamison Gree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의 핵심 동력은 단연 ‘관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관세맨(Tariff Man)’이라 부르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우선주의 경제학을 천명한 상황에서, 과연 누가 이 거대한 통상 전쟁의 실질적인 키를 쥐고 있는가는 전 세계 경제계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동안 모든 이의 시선은 월스트리트의 억만장자이자 트럼프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던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상무장관에게 쏠려 있었다. 화려한 언변과 막강한 자금력, 그리고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충성심을 바탕으로 러트닉은 트럼프 2기 통상 정책의 독점적 사령탑이 될 것처럼 보였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임명된 제이미슨 그리어(Jamison Greer)는 러트닉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진, 일개 기술관료(Technocrat)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워싱턴을 방문한 인도 경제 관료들을 러트닉 장관 없이 만났다가 배제 조치에 가까운 불호령을 듣고 상무부 청사로 불려 가 재회의를 열어야 했던 일화는 초창기 두 사람의 역학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권력의 무게추가 이동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최근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제치고 트럼프 행정부의 ‘실질적인 무역 사령탑’이자 최고의 ‘관세맨’으로 부상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거친 언사로 외교적 마찰을 빚으며 존재감이 급격히 축소된 러트닉과 달리, 그리어 대표는 최근 인도를 단독 방문하여 대규모 무역 협상을 주도하는 등 미국의 통상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화려한 정치인도, 자산가도 아닌 법률가 출신의 이 젊고 차분한 관료가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며 워싱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그의 삶과 커리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깊은 인연을 심층적으로 추적한다.제이미슨 그리어의 인물평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독실한 모르몬교도(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치밀함’, 그리고 ‘예측 가능성’ 등 이다.
그는 미국 남부 켄터키주 출신이다. 브리검영 대학교(BYU)를 졸업한 후 공공정책과 법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대학원(Law Center)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미국 육군 군법관(JAG)으로 복무하며 이라크 파병을 자원하는 등 국가에 대한 헌신과 규율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군에서 전역한 이후 세계적인 국제통상 전문 로펌인 ‘킹앤스폴딩(King & Spalding)’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국제무역 법률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그리어의 개인적 성향은 그가 자라온 배경 및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르몬 교도 특유의 절제력과 차분함,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태도는 거칠고 공격적인 트럼프 행정부의 여타 인사들과 그를 확연히 구분 짓는 요소다.

실제로 그를 경험한 통상 관료들은 그리어를 ‘부드러운 외면 속에 강철 같은 원칙을 숨긴 협상가’로 묘사한다. 최근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재협상 과정에서 멕시코 대표단과 만난 그리어는 미국의 관세 부과 원칙을 추호의 양보 없이 단호하게 피력했다. 그러나 동시에 멕시코 측의 의견을 아주 꼼꼼하게 경청하고 모든 발언을 세밀하게 메모하는 정중함을 보였다. 이 협상에 참여했던 멕시코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그리어의 이러한 신사적이면서도 정교한 접근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협상 초반부터 “멕시코 정부가 마약 카르텔에 조종당하고 있다”라며 거친 독설을 내뿜어 외교적 갈등을 유발했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방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어는 감정적 대립 대신 법리적 논리와 치밀한 데이터로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을 취하며, 국제 통상 무대에서 미국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다시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이미슨 그리어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중앙 무대로 이끌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점을 만들어준 그의 영혼의 멘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전 USTR 대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어와 트럼프 대통령의 인연은 바로 이 라이트하이저라는 고리를 통해 굳건하게 형성되었다. 그리어가 로펌 킹앤스폴딩의 국제무역 부서에서 어소시에이트(소속)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그 부서의 수장이자 시니어 파트너가 바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였다. 라이트하이저는 이미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USTR 부대표를 지내며 일본과의 반도체·자동차 협상을 이끌어 무릎을 꿇렸던 미국 통상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대중국 매파의 대부였다.

라이트하이저는 수많은 젊은 변호사 중에서도 제이미슨 그리어의 천재적인 법리 해석 능력과 성실함, 그리고 미국 제조업 부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눈여겨보았다. 두 사람은 단순한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를 넘어, 무역 적자가 미국의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경제적 민족주의’ 철학을 공유하는 사제 관계로 발전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 행정부의 첫 USTR 대표로 지명되었다. 이때 라이트하이저가 자신의 수석보좌관이자 USTR 비서실장(Chief of Staff)으로 강력히 추천하여 데려간 인물이 바로 당시 30대의 젊은 변호사 제이미슨 그리어였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그리어는 USTR 비서실장으로서 트럼프 1기 무역 전쟁의 모든 핵심 현장을 지켰다.

트럼프 1기의 굵직한 통상 성과물 뒤에는 언제나 라이트하이저의 지휘 아래 묵묵히 실무를 총괄하며 법적 논리를 정교화한 그리어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리어는 자연스럽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야에 들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형식적인 보고서보다 결과물과 강력한 실행력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트럼프는 라이트하이저가 가져오는 치밀한 관세 전략과 법적 방어 논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지켜보았고, 그 중심에 늘 그리어 비서실장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어는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트럼프가 원하는 ‘강한 미국, 무자비한 관세 정책’을 법적으로 완벽하게 뒷받침해 주는 유능한 참모로 트럼프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트럼프 1기가 끝난 후 야인으로 돌아간 그리어는 다시 로펌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하며 미국의 제조 기업들을 대변했다. 그리고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트럼프 2기의 핵심 인선으로 다시 부각되었다.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 멘토인 라이트하이저를 다시 USTR 대표나 재무장관 등 통상·경제 사령탑으로 복귀시키길 원했다. 그 때 라이트하이저는 고령 등의 이유로 전면에 나서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통상 철학을 완벽하게 계승하면서도 젊고 추진력 있는 인물을 추천했다. 그가 바로 제이미슨 그리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라이트하이저의 천거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리어를 USTR 대표로 전격 임명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어의 능력을 1기 시절 이미 충분히 검증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결국 그리어는 억만장자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이 아님에도 오직 ‘정책 전문성’과 ‘트럼프에 대한 철학적 동질성’만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요직에 오르게 되었다.

트럼프 2기 초반, 그리어의 입지는 탄탄하지만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라는 거물의 기세에 밀려 정책 주도권을 빼앗긴 듯 보였다. 그러나 진정한 전문가는 위기 상황에서 그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어 대표의 진가는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거대한 법적 암초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증명되었다. 그 당시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던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미국 상품에 관세를 매기는 국가에 동일한 세율로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다. 의회의 고유 권한인 과세권을 대통령이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취지였다. 트럼프의 핵심 공약이자 무역 전쟁의 상징이었던 관세 장벽이 사법부에 의해 단숨에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백악관은 패닉에 빠졌고, 투자자 출신으로 법리에 어두운 러트닉 상무장관은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때 그리어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그는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고율 관세를 합법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우회 수단을 치밀하게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1974년 무역법 301조(Section 301)’였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인해 미국 무역이 침해당할 경우 USTR 직권으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 조항이다. 이미 트럼프 1기 시절 중국을 압박할 때 전방위로 활용되어 그 법적 효력과 정당성이 검증된 무기였다. 그리어는 사법부가 문제 삼은 ‘대통령의 자의적 상호관세’ 대신, 상대국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입증하는 ‘301조 기반의 정교한 관세’ 형태로 전략을 신속하게 수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보여주는 부상의 궤적이 과거 트럼프 1기 시절 그의 멘토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권력을 장악해가던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똑 닮아있다고 짚었다. 일종의 ‘역사의 데자뷔’라는 것이다.트럼프 1기 초반에도 통상 정책의 주도권은 트럼프의 오랜 친구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였던 윌버 로스(Wilbur Ross) 상무장관에게 있었다.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처음에 로스 장관의 지휘와 간섭을 받는 열세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로스 장관은 복잡다단한 국제 통상법과 WTO 체제의 허점을 파고드는 실무 협상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철저한 전문성으로 무장한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가 던지는 거친 구상들을 정교한 정책과 법령으로 구현해 내며 결국 트럼프 행정부 최고의 무역 사령탑으로 자리매김했다.지금 그리어 대표가 걷고 있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금융시장의 논리로 무역을 바라보며 거친 언사로 잡음을 내던 러트닉 장관의 존재감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복잡한 통상법의 미로를 뚫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그리어 대표의 언론 노출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명성과 부가 아닌 ‘전문성’이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제이미슨 그리어의 부상은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 누가 이겼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트럼프 2기 통상 정책이 한층 더 정교하고, 예측하기 어려우며, 법적으로 단단한 형태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그리어는 감정에 휘둘려 관세를 지르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는 미국의 무역법 조항 하나하나를 현미경 보듯 분석하여 상대국의 가장 아픈 곳을 합법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베테랑 법률가다. 그가 이끄는 USTR은 앞으로 USMCA 재협상에서 멕시코와 캐나다를 강하게 압박할 것이며, 대중국 공급망 차단을 가속화하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에게도 ‘무역 적자 해소’라는 정교한 청구서를 들이밀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