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하드·사우디아, 보잉·에어버스 조기 인도 슬롯 확보 추진
항공기 주문 밀리자 2029~2030년 인도분도 희소 자산으로
항공기 주문 밀리자 2029~2030년 인도분도 희소 자산으로
이미지 확대보기중동 걸프 지역의 항공사들이 에어인디아의 항공기 인도 지연 가능성을 기회로 삼아 보잉과 에어버스 항공기 조기 인도 슬롯 확보에 나섰다.
항공기 제조사들의 주문 잔고가 2030년대까지 밀려 있는 상황에서 몇 년 앞당겨 받을 수 있는 인도 슬롯 자체가 항공사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어인디아가 일부 항공기 인도 시점을 늦출 경우 해당 물량을 걸프 항공사들이 가져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걸프 지역 항공사들이 에어인디아의 주문 조정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보잉과 에어버스 항공기 인도 슬롯을 확보하기 위해 제조사들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고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협의 대상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에티하드항공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항공사 사우디아가 포함됐다. 이들 항공사는 이르면 오는 2029년과 2030년에 받을 수 있는 항공기 인도 순번 확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에티하드, 보잉 787 슬롯 약 6개 확보 근접
블룸버그에 따르면 에티하드는 에어인디아가 보유한 보잉 787 드림라이너 조기 인도 슬롯 약 6개를 확보하는 데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최종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에어버스는 고객사의 인도 일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보잉은 해당 질문을 항공기 구매사에 넘겼다.
에어인디아는 항공기 주문이나 인도 슬롯을 연기한 적이 없으며 보유 항공기 현대화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제조사들과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인지에 대한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같은 움직임은 항공기 인도 슬롯이 단순한 납품 일정이 아니라 사실상 거래 가능한 전략 자산이 됐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인기 기종의 신규 주문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항공사들은 새 항공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확보하기 위해 다른 항공사의 주문 조정 가능성까지 주시하고 있다.
◇ 에어인디아, 손실 축소 압박 속 확장 속도 조절
에어인디아는 타타그룹 인수 이후 대대적인 체질 개선과 기단 현대화를 추진해왔다.
에어인디아는 지난 2023년 에어버스 250대, 보잉 220대 등 총 470대의 항공기를 주문했다. 이후에도 추가 주문을 이어가며 인도 항공시장 성장의 대표 사례로 꼽혔다. 인도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항공시장으로 평가되며, 낮은 1인당 항공 이용률 때문에 장기 성장 여력이 크다는 분석을 받아왔다.
그러나 대규모 확장은 비용 부담도 키웠다. 블룸버그는 에어인디아가 네트워크를 정비하고 확장 계획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주주인 타타그룹이 기록적인 손실을 줄이도록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어인디아가 실제로 일부 인도 일정을 늦출 경우 그 공백은 빠르게 성장하려는 걸프 항공사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
◇ 걸프 항공사, 장거리 노선 경쟁력 강화
에티하드와 사우디아가 조기 인도 슬롯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는 장거리 노선 경쟁이 있다.
보잉 787 드림라이너와 에어버스 A350 같은 최신 광동체 항공기는 연료 효율이 높고 장거리 운항에 적합하다. 중동 항공사들은 유럽, 아시아, 북미를 잇는 허브 경쟁에서 최신 기재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관광·항공 산업을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키우고 있다. 사우디아와 신생 항공사 리야드에어를 앞세워 중동 항공 허브 경쟁에서 두바이와 도하, 아부다비를 추격하려 한다.
에티하드도 노선 회복과 성장 전략을 다시 강화하는 중이다. 안토노알도 네베스 에티하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다른 항공사들이 주문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면서 일부 보잉·에어버스 항공기의 인도 시점을 앞당겨 확보했다고 말한 바 있다.
◇ 항공기 부족, 제조사 협상력 키웠다
항공기 인도난은 전 세계 항공업계의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고 있다.
보잉과 에어버스는 팬데믹 이후 공급망 차질, 엔진·부품 부족, 품질 관리 문제, 숙련 인력 부족 등으로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반면 여행 수요는 빠르게 회복됐고, 항공사들은 노후 기재 교체와 신규 노선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기 기종의 주문 대기 기간은 2030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신규 주문보다 기존 주문자의 인도 슬롯을 넘겨받는 방식이 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됐다.
에어인디아도 과거 비슷한 기회를 활용한 적이 있다. 에어인디아는 중국 항공사들을 위해 제작됐던 보잉 737 맥스 50대 이상을 확보했고, 러시아 아에로플로트에 인도될 예정이던 에어버스 A350도 도입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에어인디아의 인도 슬롯이 다른 항공사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인도 항공시장의 고속 성장과 걸프 항공사의 장거리 허브 경쟁, 보잉·에어버스의 공급 제약이 맞물리면서 항공기 인도 순번을 둘러싼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