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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보다 경력직이 신입 일자리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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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보다 경력직이 신입 일자리 밀어낸다

쿼츠 “신입 채용난은 AI 대체만으로 설명 안 돼”…경험 많은 구직자가 초급 일자리까지 흡수
AI 확산보다 경력직의 하향 지원이 신입 구직난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AI 확산보다 경력직의 하향 지원이 신입 구직난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챗GPT

인공지능(AI)이 신입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경험 많은 근로자들이 신입용 일자리까지 차지하면서 청년 구직난이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경제매체 쿼츠는 최근 대졸 구직자들이 일자리 감소의 원인으로 AI를 지목하고 있지만 신입 채용난의 작동 방식은 로봇이 신입사원을 대체하는 모습보다 숙련 근로자가 더 낮은 단계의 일자리로 내려오는 현상에 가깝다고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I가 보고서 초안을 쓰고, 코드를 작성하고, 광고 시안을 만드는 등 과거 신입사원이 배우면서 맡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설명은 직관적이다. 그러나 쿼츠는 이 설명만으로는 현재의 초급 일자리 위축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구인구직 플랫폼인 글래스도어의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에런 테라자스는 최근의 화이트칼라 노동시장 위기에 대해 “AI가 신규 졸업자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기보다 경험이 더 많은 근로자들이 신규 졸업자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신입 일자리 감소, 전체 시장 위축과 같은 속도


신입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다만 쿼츠는 신입 일자리만 유독 사라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구인 플랫폼 인디드의 데이터 분석 조직 하이어링랩에 따르면 2024년 8월부터 2025년 8월까지 미국의 초급 일자리 공고는 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채용시장도 7% 줄었다. 경력 수준별 공고 감소가 거의 같은 속도로 나타난 것이다.

하이어링랩의 앨리슨 슈리바스타바는 “신규 졸업자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초급 일자리만 특별히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며 “전체 채용시장이 줄어들면서 지원할 수 있는 자리가 전반적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도 비슷한 결론을 내놨다. 챗GPT 출시 이후 미국 경제의 직업 구성 변화는 초기 인터넷 시대와 비교해 약간 빠른 수준에 그쳤고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업군의 근로자 비중도 전체 노동력의 약 18%로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일대 연구진은 AI가 현재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불안이 널리 퍼져 있지만 데이터상으로는 아직 상당 부분 추정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 스탠퍼드 연구는 22~25세 고용 감소 포착


다만 AI의 영향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가 이끈 연구진은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22~25세 근로자 고용이 상대적으로 16% 줄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직종의 고령·숙련 근로자에게서는 이같은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직종 자체의 고용은 계속 늘었고 경험 많은 근로자들은 그 안에서 입지를 넓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I가 일자리 전체를 없애고 있다기보다 같은 일자리 안에서 젊은 초년생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채용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 기술업계, 중간 경력보다 고연차 선호


경력 요구 조건도 높아지고 있다. 하이어링랩에 따르면 미국 기술업계 채용공고 가운데 5년 이상 경력을 요구하는 비중은 2022년 2분기 37%에서 2025년 2분기 42%로 높아졌다.

반면 2~4년 경력을 요구하는 중간 단계 공고 비중은 같은 기간 46%에서 40%로 낮아졌다. 1년 이하 경력자에게 열린 초급 공고 비중은 약 18%로 거의 그대로였다.

표면적으로는 초급 공고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경쟁 구도는 달라졌다.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은 교육과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신입보다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숙련 인력을 선호한다. 시간당 비용이 더 높더라도 적응 기간이 짧고 채용 실패 위험이 낮다는 판단이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 흐름이 초급 일자리의 실제 진입 장벽을 높인다는 점이다. 채용공고 수는 그대로여도 그 자리에 5년 경력자가 지원하면 22세 신규 졸업자의 합격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 이직 임금 프리미엄 하락도 하향 지원 부추겨


임금 지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임금상승 추적지표에 따르면 이직자 임금 프리미엄은 지난해 12월 4.3%에서 올해 5월 3.7%로 낮아졌다.

직장을 옮겨도 기존 직장에 남은 근로자보다 임금 상승 폭이 크지 않다면 구직자들은 수평 이동이나 기대보다 낮은 직급의 일자리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공고 통계만으로는 신입이 체감하는 어려움을 포착하기 어렵다. 초급 일자리 공고가 살아 있어도 실제 면접과 채용 과정에서는 더 많은 경력을 가진 지원자들이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숙련 근로자가 신입용 일자리로 내려오면 채용시장의 ‘바닥’ 자체가 재설정된다. 경력, 인맥, 추천인, 실무 성과를 갖춘 지원자와 막 졸업한 22세 구직자가 같은 자리에서 경쟁하게 되는 구조다.

◇ 첫 직장 실패가 10년 경력까지 영향


초기 경력 형성 실패는 장기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버닝글래스연구소와 스트라다연구소는 대학 졸업자의 52%가 졸업 후 1년 안에 학력 수준보다 낮은 일자리에 취업하는 과소고용 상태에 놓인다고 분석했다.

더 심각한 점은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졸업 직후 과소고용 상태로 출발한 사람은 10년 뒤에도 같은 상태에 머물 확률이 7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쿼츠는 첫 일자리가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이후 경력 궤적 전체를 좌우한다고 지적했다. 신입 일자리 부족이 단기 취업난을 넘어 장기적인 임금과 경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