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출신 이븐 리얼리티스 CEO “하드웨어 중심지는 중국”…AI 스마트안경 유니콘 부상
이미지 확대보기중국 선전의 스마트안경 스타트업 이븐 리얼리티스가 ‘차세대 애플’ 후보로 자신을 지목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애플 출신의 이 스타트업 창업자는 소비자 전자제품의 미래를 만들려면 실리콘밸리보다 선전이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AI) 웨어러블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무게중심이 미국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중국 제조·공급망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취지다.
8일(이하 현지시각) CNBC에 따르면 윌 왕 이븐 리얼리티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래의 소비자 전자제품을 만들고, 어쩌면 다음 애플을 만들고자 한다면 하드웨어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며 “그곳은 바로 선전”이라고 말했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스마트안경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 6일 메이퇀과 텐센트 등이 참여한 투자 라운드에서 1억5000만달러(약 2265억원)를 조달했고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5100억원)를 인정받았다. 창업 3년 만에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오른 셈이다.
◇ 애플 출신 창업자, 선전 택했다
왕 CEO는 세계 최대 전자업체 애플에서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애플워치와 아이폰의 개발·양산 업무에 관여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경험을 갖고 있지만 소비자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성장 거점으로는 선전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선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선전에는 스마트폰, 드론, 전기차, 가전, 로봇, 광학 부품, 디스플레이, 배터리, 정밀기계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제품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고 다시 양산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
왕 CEO는 “선전은 기계·전기·광학 엔지니어를 두텁게 보유하고 있으며 하드웨어 창업자에게 필요한 공급망도 가까이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안경처럼 디자인, 렌즈, 디스플레이, 배터리, 반도체, 소프트웨어가 모두 맞물리는 제품에는 이런 생태계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 “실리콘밸리, 하드웨어 창업자 덜 보상”
왕 CEO는 실리콘밸리의 변화도 지적했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더 이상 하드웨어 창업자를 예전만큼 보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인재와 자본은 AI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에이전트, 클라우드 서비스 쪽으로 집중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드웨어는 개발 주기가 길고, 양산 리스크가 크며, 공급망 문제가 뒤따른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빠른 확장과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에서는 소비자 전자제품 스타트업과 관련 인재가 점점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난다고 왕 CEO는 진단했다.
이는 과거 실리콘밸리의 상징이었던 애플과 다른 모습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기업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 애플워치 같은 소비자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왕 CEO는 이런 형태의 차세대 소비자 전자기업이 다시 나오려면 소프트웨어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하고 제조·공급망 중심지에 가까워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 메타가 장악한 AI 안경 시장 겨냥
이븐 리얼리티스가 겨냥하는 시장은 AI 스마트안경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은 메타 플랫폼스다. 메타는 레이밴과 협업한 스마트안경을 통해 카메라, 음성비서, AI 기능을 결합한 웨어러블 기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븐 리얼리티스의 접근은 다르다. 이 회사가 지난해 말 출시한 이븐 G2 스마트안경은 카메라나 녹화 장치를 탑재하지 않았다. 대신 안경 렌즈 안쪽의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 알림, 길 안내, 실시간 번역 등을 보여준다. 이븐 R1이라는 반지를 함께 제공해 디스플레이 조작도 가능하게 했다.
카메라를 빼는 전략은 개인정보 보호와 착용감, 일상성을 겨냥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스마트안경은 얼굴에 착용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카메라가 달릴 경우 주변인의 사생활 침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녹화 기능보다 디스플레이와 AI 보조 기능에 초점을 맞춰 메타 제품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AI 웨어러블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인지, 보조기기로 남을 것인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시간 번역, 회의 보조, 내비게이션, 메시지 확인, 건강 모니터링 같은 기능이 자연스러운 사용 경험으로 구현되면 스마트안경은 차세대 개인 컴퓨팅 기기로 부상할 수 있다.
◇ 미국 사용자가 절반 이상
중국 기업이지만 이븐 리얼리티스의 핵심 시장은 중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CNBC에 따르면 이븐 리얼리티스 사용자 중 절반 이상은 미국에 있다.
이는 선전 기반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미국 소비자를 직접 겨냥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중국 제조 생태계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미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를 키우는 방식이다.
왕 CEO는 이번 투자 라운드에서 중국계 투자자들이 주도한 이유에 대해 “그들이 훨씬 빠르게 움직였고, 우리와 더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다음 투자 라운드에서는 해외 확장을 지원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글로벌 투자자를 겨냥하겠다고 밝혔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지금까지 CDH인베스트먼트, 모놀리스매니지먼트, CVC캐피털, 유니콘캐피털파트너스, 사이언힐캐피털 등 중국계 또는 중국 연계 투자자들의 자금을 받아왔다. 이번에 메이퇀과 텐센트가 가세하면서 중국 빅테크의 지원도 확보했다.
◇ ‘다음 애플’ 논쟁의 의미
왕 CEO의 “다음 애플” 발언은 단순한 자신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이다. AI 시대의 차세대 소비자 기기가 어디서 나올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대표 기기가 스마트폰일지, 안경일지, 이어폰일지, 반지나 다른 웨어러블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메타는 카메라와 AI 비서를 결합한 스마트안경을 밀고 있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통해 공간컴퓨팅을 시도했지만, 대중적 소비자 기기로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중국 스타트업들은 더 가볍고 일상적인 스마트안경으로 틈새를 노리고 있다.
이븐 리얼리티스가 실제로 차세대 애플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왕 CEO의 주장은 한 가지 흐름을 분명히 보여준다. AI 하드웨어 경쟁에서 승부처는 더 이상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인재만이 아니라 제품을 빠르게 설계하고 양산할 수 있는 제조 생태계라는 점이다.
◇ AI 웨어러블의 시험대
이븐 리얼리티스는 이제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증명해야 한다. 10억달러 기업가치는 기대를 반영한 숫자다. 실제로는 제품 판매 확대, 사용자 유지율, 글로벌 유통망, 소프트웨어 생태계, 개인정보 보호 신뢰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스마트안경 시장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기대를 모았다가 대중화에 실패했다. 구글글래스는 사생활 침해 논란과 제한적 사용성 때문에 확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AI 기술 발전으로 다시 기회가 열렸지만 소비자가 매일 쓰고 싶을 만큼 가볍고 자연스러운 기기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카메라 없는 스마트안경, 선전 공급망, 글로벌 사용자 기반, 중국 빅테크 투자라는 조합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 단계는 이 가능성을 실제 판매와 반복 사용, 글로벌 브랜드 신뢰로 바꾸는 것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