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91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쇼클리는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고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미국 통신 거인 AT&T 산하의 벨 연구소에 입사하며 인류 문명사를 바꿀 연구에 착수하게 된다. 그 당시 전자 산업의 최대 과제는 '진공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초기 컴퓨터와 통신 장비에 쓰이던 진공관은 부피가 크고, 엄청난 열을 발산하며, 필라멘트가 쉽게 끊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다. 벨 연구소는 고체 물질인 반도체를 이용해 전류를 증폭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쇼클리를 팀장으로 하는 연구 그룹을 결성했다.
쇼클리는 뛰어난 이론적 직관력을 가졌으나, 실제 실험을 구체화하는 데는 난항을 겪었다. 이 와중에 그의 팀원이었던 이론물리학자 존 바딘(John Bardeen)과 실험물리학자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이 1947년 12월 23일, 게르마늄 결정 표면에 두 개의 금박 바늘을 접촉시켜 전류를 증폭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점접촉 트랜지스터(Point-contact Transistor)'다. 접합 트랜지스터최초의 트랜지스터가 작동하는 순간 쇼클리는 현장에 없었다. 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발명의 순간에서 소외되었다는 사실은 쇼클리의 강한 독점욕과 자존심에 거대한 상처를 남겼다. 벨 연구소가 특허를 출원할 때 쇼클리의 이름이 주 발명자에서 제외되자 그의 분노와 질투는 극에 달했다.
쇼클리는 바딘과 브래튼의 디자인을 능가하는 새로운 구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다짐하며 몇 주 동안 방에 박혀 이론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1948년, 그는 점접촉 방식의 불안정성을 완벽히 보완한 '접합 트랜지스터(Junction Transistor)'의 개념을 정립했다.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샌드위치처럼 접합하여 전자를 제어하는 이 방식은 대량 생산과 상업화에 훨씬 유리한 구조였다. 결국 이 세 사람은 전자공학의 대변혁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노벨상 수상의 기쁨도 잠시, 연구소 내부에서 쇼클리가 보여준 독단적인 태도와 공로 독점 행태로 인해 바딘과 브래튼은 그를 떠났고, 연구팀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쇼클리가 한 가장 위대한 선택 중 하나는 반도체의 기본 재료를 기존의 게르마늄(Germanium)에서 실리콘(Silicon)으로 과감히 전환한 것이다. 실리콘은 게르마늄에 비해 열에 강하고 지구상에 흔하게 존재하여 고성능 집적회로를 만들기에 최적의 물질이었다. 이 선택으로 인해 그가 세운 연구소 주변 지역은 훗날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과학자로서는 유능했던 쇼클리는 경영자나 리더로서는 최악의 인물이었다. 그의 성격은 편집증적이었으며, 직원들을 극도로 불신했다. 연구소 내부의 모든 발언을 녹음하게 하거나, 직원들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강요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결정적으로 쇼클리가 상업적 가치가 떨어지는 특수 다이오드(쇼클리 다이오드) 연구에만 집착하고,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의 본격적인 양산 요구를 묵살하면서 젊은 천재들과의 갈등은 폭발했다. 쇼클리의 독선과 폭정을 견디다 못한 8명의 핵심 연구원들은 1957년 집단 사표를 던지고 연구소를 이탈했다. 쇼클리는 이들을 '8명의 배신자(Traitorous Eight)'라고 부르며 저주했다. 투자자 셔먼 페어차일드의 자금을 지원받은 이들은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하고 세계 최초로 상업용 실리콘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IC)를 대량 생산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훗날 수많은 반도체 벤처기업들이 뻗어나오는 거대한 모체가 되었다. 페어차일드에서 나온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오늘날 세계 반도체의 제왕인 인텔(Intel)을 창립했으며, 그 외의 인물들도 AMD, 내셔널 세미컨덕터 등 기라성 같은 기업들을 세우며 실리콘밸리의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했다.윌리엄 쇼클리는 경영 실패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말년에는 인종 간 지능 차이를 주장하는 우생학에 깊이 심취하디도 했다. 1989년 그가 사망했을 때, 그의 독선적인 성격을 견디지 못한 자녀들은 언론의 부고 기사를 보고서야 사망 소식을 접했을 만큼 그의 개인적 삶은 황량했다.그가 정립한 접합 트랜지스터의 물리적 이론과 실리콘이라는 물질의 선택은 현대 반도체 공학의 굳건한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쇼클리가 비즈니스적으로 완벽하게 실패하고 그의 밑에 있던 인재들을 폭정으로 내쫓았기 때문에, 천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실리콘밸리라는 전무후무한 기술 생태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쇼클리는 현대 반도체 기술을 잉태한 '반도체의 아버지'이자,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파괴적 분열을 통해 혁신을 확산시킨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할아버지'라고 진단할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